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통한 '넷제로(탄소중립)' 실현에 사활을 걸고 있는 SK그룹이 작년 환경 문제를 유발했다고 스스로 고백했다. 자체 개발한 사회적가치 측정 산식을 통해 작년 사회적가치 창출 성과를 집계한 결과, 환경 성과에서 3조원에 가까운 손실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SK가 환경 문제 유발자임을 투명하게 인정하고 나선 것은 사회적 가치 측정 표준화를 위한 특단의 조치다. 무형의 사회적가치를 금전적으로 환산할 수 있는 기준을 확립, 이를 기업 가치를 판단하는 객관적 지표로 삼기 위해서는 투명한 절차 공개가 중요하다는 게 SK의 판단이다.
이는 최태원 SK 회장의 지론인 '더블보텀라인(DBL, Double Bottom Line)' 경영의 일환이기도 하다. 최 회장은 경제적가치만을 추구하는 '싱글보텀라인'에서 벗어나 경제적가치(EV·economic value)와 사회적가치(SV·social value)를 동시에 추구하는 더블보텀라인을 경영 철학으로 내세운 바 있다.
작년 사회적가치 환산해보니 '18.4조'
23일 SK그룹은 서울 종로구 서린동 사옥에서 '2021년 SK 사회적가치 화폐화 측정 성과 발표' 언론 설명회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서 SK그룹은 지난해 SK의 전 관계사가 창출한 사회적가치 총액이 전년 대비 7조원가량 증가한 18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SK는 제품개발에서부터 생산, 판매, 인력, 비즈니스 파트너 협력 등 기업활동 전반에 걸쳐 ‘긍정 성과’(+)와 ‘부정 성과’(-)를 함께 측정해 사회적가치를 매긴다.
구체적으로 사회적가치 화폐화 값은 △베이스라인(시장 평균 기준) △화폐화 단위 기준(국제기구·정부·협회 등 발표지표 적용) △기여도 등 세 가지 주요 항목을 적용해 도출한다. 자사 제품·서비스가 전체 시장평균치를 초과한 가치를 창출하면 긍정 성과, 미달하면 부정 성과로 가정한다. 여기에 공신력있는 국제기구 등의 지표수치를 곱한 값으로 사회적가치 총액을 산정한다.
성과 지표는 △임금·세금·배당·이자 등 기업의 경제 활동 과정 중 구성원·이해관계자들에게 경제 자원 이전을 통해 창출되는 '경제간섭 기여성과' △친환경 제품·서비스와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환경적 영향을 통해 창출되는 '환경성과' △기업의 생산과정과 그 결과인 제품·서비스를 통해 창출되는 '사회성과'로 나뉜다.
지표별로 보면 지난해 경제간접 기여성과는 19조3443억원으로 전년(13조1258억원) 대비 47.4% 늘었다. 관계사 실적개선 등에 힘입어 납세와 고용 등이 큰 폭의 증가세를 기록한 덕이다. 아울러 사회 제품·서비스, 노동 분야 증가세가 뚜렷하게 나타나며 사회성과도 전년 대비 47.3% 증가한 1조9036억원으로 집계됐다.
넷제로 외쳤지만…
이에 비해 환경 성과는 다소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SK에 따르면 작년 사회적가치 성과 지표 중 환경성과에서는 2조8919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제품·서비스의 가치는 지속적으로 상승했지만, 공정 측면에서의 가치 손실이 3조6469억원에 달했다.
SK는 전사적으로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넷제로'나 제품 생산에 필요한 전기를 100%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는 'RE100' 선언 등을 통해 탄소 저감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작년까지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는 못한 셈이다.
이날 김광조 SK SV위원회 부사장은 "탄소 배출량 감축을 위한 노력을 지속 추진하고 있지만 공장 증설과 조업률 증가 등의 영향이 커 아직 감축 전환을 위한 변곡점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며 "친환경 제품·서비스를 통해 성과 확대를 꾀하고 있지만 공정 면에서의 부정 성과를 넘기에는 금액이 크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SK는 전반적인 사회적가치 성과 확대를 위해서는 환경 성과의 개선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김 부사장은 "경제 성장과 양질의 일자리 제공 등과 같은 항목은 크게 기여를 하고 있지만, 환경 이슈 부문에서는 아직 '문제 유발자'"라며 "앞으로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고 긍정적인 기여를 늘려 '문제 해결자'로서의 역할을 점차 확대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실행할 전략은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넷제로 달성이 핵심이다. 그는 "향후 2~3년간은 탄소배출 총량을 줄이는데 어려움을 겪겠지만 오는 2024년부터는 감소 추세로 전환돼 이후부터는 로드맵에 따라 넷제로를 실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언급했다.
앞서 SK그룹은 지난해 10월 전기차배터리와 수소 등 친환경 사업에 100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SK㈜와 SK E&S의 수소연료전지 기업 플러그파워 공동투자, SK 에코플랜트의 전기·전자 폐기물 기업 테스 인수 등 친환경 미래사업 분야 투자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객관성 높여 '지속가능' 판단 지표로
SK는 지난 2019년부터 사회적가치 창출 성과를 화폐화해 발표해 왔지만 측정 산식과 데이터를 외부에 투명하게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사회적가치 창출 및 화폐화에 대해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고, 이를 통해 형성된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측정 체계를 더욱 발전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에 대해 최 회장은 "긍정적인 측정 결과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측면도 모두 공개해 투명성을 높이고, 외부와의 소통 과정 등에서 보완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나아가 SK는 사회적가치 측정 시스템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판단하는 지표로 자리 매김하길 기대하고 있다.
김 부사장은 "세계적으로 많은 기관과 단체에서 사회적 가치 측정 체계에 대한 관심을 갖고 적용 시도를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표준화되거나 일반화된 측정 기준은 없다"며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관심을 갖고 측정 기준에 대해 합의를 하면 객관성이 더해져, 화폐 측정 결과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판단하게 해주는 핵심적인 정보로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하지만 표준화에 도달하기까지엔 아직 장벽이 높다. 화폐화 측정 기준이 여전히 모호해서다. 특히 화폐화 값을 도출하는 세 가지 주요 항목 중 '기여도'를 판단하기가 까다롭다. 고객에게 특정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까지 많은 기업들이 관여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가치 비중을 정확히 나누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오준환 SK사회적가치연구원 SV센터장은 "소비자가 제품·서비스를 사용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경우 교환 가치를 평가할 방법이 없어 임의로 나눈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종적으로 사회적 가치에 기여한 중간 사업자에게 사회적 가치를 배분하는 방식이 필요하지만 아직 답을 찾지는 못한 상태"라며 "지금까지는 업종별로 부가가치율, 원가율 등을 반영하고 있는데 좀 더 일반화된 기준을 찾기 위해 역할 기여도 등을 평가하려 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기업의 지배구조를 뜻하는 거버넌스 지표도 화폐화 측정이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거버넌스(G) 지표는 경제간섭 기여·환경·사회와 함께 성과 지표에 포함돼 있지만 측정되고 있지는 않다.
김 부사장은 "거버넌스 지표의 화폐화 측정이 매우 어렵다는 인식을 하고 있지만,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있다"며 "제도 개선과 핵심 지표 관리 등을 통해 체계적으로 거버넌스 수준을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