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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스토리]'오락가락' 정부에 길 잃은 K-백신

  • 2022.12.09(금) 07:15

정부, 스카이코비원 동절기 추가 접종 재허용
'전폭' 지원 약속했던 정부, 상황 바뀌자 '돌변'
"바이오 강국 되려면 실패보단 응원·지지 필요"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최근 '스카이코비원' 생산 잠정 중단 소식이 제약바이오 업계를 뜨겁게 달궜습니다. 스카이코비원은 SK바이오사이언스가 자체 개발한 국산 1호 코로나19 백신입니다. 미국 노바백스의 '뉴백소비드'와 같이, 유전자재조합기술로 만들어진 바이러스 항원 단백질을 몸속에 투여해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합성항원 방식입니다. 지난 6월 식품의약품안전처 품목허가를 획득했죠. 앞서 보건복지부는 식약처 허가 전인 지난 3월 SK바이오사이언스와 스카이코비원 1000만회분(도즈)의 선구매 계약을 맺은 바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의 발주가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서 SK바이오사이언스가 스카이코비원의 후속 생산을 멈춘 겁니다. 정부는 초도 물량 60만회분을 제외하곤 추가 주문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스카이코비원에 대한 국내 접종 수요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회사 측은 "완제품 생산은 멈췄지만 원액은 계속 생산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백신은 원액을 생산한 뒤 이를 용기(바이알)에 담아 완제품으로 만드는데, 정부가 추가 물량을 요청하면 생산 중인 원액을 완제품으로 만드는 작업을 재개한다는 설명입니다. 참고로 원액은 냉동으로 보관해 완제품보다 유통기한이 길다고 합니다.

스카이코비원의 부진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스카이코비원은 초기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겨냥해 개발된 단가(1가) 백신입니다. 코로나19는 초기 바이러스에서 시작해 델타, 오미크론, 오미크론 하위변이 등으로 변이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 우세종은 오미크론 BA.5 변이입니다. 스카이코비원은 오미크론 변이 계통에 대한 대응력이 약합니다. 반면, 화이자와 모더나 등은 초기 바이러스와 변이 바이러스를 동시에 예방하는 개량(2가) 백신을 내놓고 있습니다. 여기에 오미크론 계통의 약한 치명률, 백신 접종에 대한 국민의 높은 피로도 등도 백신 시장을 위축시키는 요인입니다.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지난 6월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SK바이오사이언스사를 방문해 '스카이코비원' 백신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문제는 정부의 태도입니다. 질병관리청은 지난달 23일 3·4차 접종에 단가 백신의 접종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오미크론 변이에 효과가 높은 개량 백신으로 접종 유형을 단일화해 방역 혼선을 줄이고 면역 효율을 높이겠다는 구상이었습니다. 또 스카이코비원의 선구매 계약과 관련해선 "계약을 취소할 수 없어 계약 기간을 오는 2024년 6월까지로 연장했다"면서 "기존 단가 백신은 활용이 제한적이라 폐기가 불가피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상 스카이코비원을 외면한 것과 마찬가지였죠.

이를 두고 SK바이오사이언스는 물론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당황스럽다는 입장입니다. 지난해 국내 기업에 백신 개발을 권유한 건 정부였습니다. 정부가 화이자나 모더나 등 백신을 조기에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서 국민의 원성이 높던 시기였습니다. 업계 안팎에선 정부가 난국을 수습하고자 국산 백신 개발을 요구,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 것이란 시각이 많습니다. 선구매 계약도 당시 정부가 약속한 국산 백신 개발 지원 방안 중 하나였고요. 국내 기업들은 시장성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사명감으로 백신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자 갑자기 등을 돌린 겁니다.

비판 여론이 일면서 정부는 개량 백신으로 접종 유형을 단일화하겠다는 기존 계획을 번복했습니다. 질병청은 지난 7일 동절기 추가 접종 시 스카이코비원 등 합성항원 방식의 백신을 활용할 수 있다고 권고했습니다. 동절기 추가 접종은 단가 백신의 접종을 제한한 3·4차 접종과는 별개입니다. 이어 하루 만인 8일 3·4차 접종을 없애는 개편안을 다시 내놨습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기초 접종(1·2차)과 동절기 추가 접종 두 종류로 간소화하는 내용입니다. 이에 따르면 동절기 추가 접종엔 개량 백신이 우선적으로 권고되지만, 경우에 따라 스카이코비원 등 합성항원 방식 백신도 맞을 수 있습니다.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에코허브에서 SK바이오사이언스의 한 연구원이 '스카이코비원' 백신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정부의 돌변한 태도로 부침을 겪은 스카이코비원엔 '실패한 백신'이라는 꼬리표까지 따라붙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카이코비원을 실패로 보긴 어렵습니다. 비록 상업화엔 실패하더라도 국내 기업이 백신 개발의 전 과정을 완주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백신 개발에 성공하면서 한국의 감염병 대응 역량은 한층 높아졌습니다. 개발 경험뿐만 아니라 스카이코비원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전염병대비혁신연합(CEPI) 등 국제기구와 쌓은 관계는 새로운 백신을 개발하는 기반이 될 수 있죠. 실제 SK바이오사이언스는 CEPI와 차세대 백신 개발을 위한 협력을 이어갈 전망입니다.

다만, 한 번 각인된 실패한 백신이라는 오명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 중인 후발 기업들에 안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이번 사례를 본 기업들이 또 다른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신약 개발을 주저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감염병 대응 체계를 구축하지 못해 생기는 피해는 국민의 몫입니다. 백신 주권을 확보하지 못하면 정부는 과거처럼 백신을 구걸하게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스카이코비원을 향한 정부의 이중적인 태도와 섣부른 판단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는 이유입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프로젝트에 실패한 직원을 자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실패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세계 제약바이오 산업의 중심지로 꼽히는 미국 보스턴 클러스터 역시 실패를 당연하게 여깁니다. 또 해외 정부는 신약 개발과 관련해 성공불융자제도, 바이오쉴드 프로젝트 등 여러 지원 정책도 펼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한국이 바이오 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실패를 비난하기보단 응원과 지지를 통해 기업이 신약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우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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