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인더스토리는 매주 토요일, 한 주간 있었던 기업들의 주요 이슈를 깊고, 쉽고, 재미있게 파헤쳐 보는 코너입니다. 인더스트리(산업)에 스토리(이야기)를 입혀 해당 이슈 뒤에 감춰진 이야기들과 기업들의 속내를 살펴봅니다. [편집자]
우려를 기우로 만들다
현대차가 테슬라처럼 직접 배터리 제작에 나섰습니다. 업계에선 언젠가는 이뤄질 일로 봐왔던 것이 현실이 됐다는 분석입니다. 현대차가 전동화에 방점을 찍은 만큼 배터리 생산은 필수 과제였습니다.
사실 지난 4월 현대차그룹이 국내 전기차 분야에 대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혔을 때 배터리 투자에 대한 내용이 없어 의아해 했었습니다. 당시 현대차그룹은 오는 2030년까지 향후 8년간 국내 전기차 분야에 총 24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습니다. 이를 통해 2030년에는 글로벌 전기차 톱 3에 진입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었죠. 하지만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 투자에 대한 언급은 당시 없었습니다.
현대차는 내부적으로 배터리 제작 프로젝트를 세우고 차근히 준비해왔던 것입니다. 배터리 설계는 현대차, 생산은 배터리 업체에 맡기는 형식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그 첫 산물이 최근 나왔습니다. 신형 싼타페 하이브리드 모델에 현대차의 자체 제작 배터리가 탑재됐습니다. 현대차 관계자는 신형 싼타페 미디어프리뷰에서 "신형 싼타페 하이브리드 엔진은 1.6T 하이브리드 엔진을 탑재하고 있고, 배터리는 기술 내재화를 통해 자체 개발한 신규 배터리가 탑재됐다"고 밝혔습니다.
현대차가 자체 배터리를 개발, 탑재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현대차가 추구하고 있는 전동화의 핵심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겁니다.
왜 직접 만들까
현대차가 직접 배터리 제작에 나선 것은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입니다. 통상 배터리는 친환경차 가격의 약 35%를 차지합니다. 그 만큼 완성차 업체에서 직접 배터리를 제작, 생산하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자사 차량 플랫폼에 최적화된 배터리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실제로 현대차뿐 아니라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배터리 직접 제작에 나서는 추세입니다. 폭스바겐의 경우 지난해 배터리 자회사 파워코(PowerCo)를 설립했습니다. 이를 통해 오는 2030년까지 유럽에 240기가와트시(GWh) 규모의 배터리 생산공장 6곳을 세울 예정입니다. 이 배터리를 타브랜드에 공급하겠다는 계획도 밝혔습니다.
토요타는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특허를 가장 많이 보유한 곳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오는 2027년에는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해 10분 1200㎞를 주행하는 전기차를 상용화한다는 목표입니다. 테슬라도 지난 2020년 일찌감치 배터리 자체 개발을 선언하고 지름 46mm, 길이 80mm 원통형 배터리인 4680배터리 개발에 착수, 지난 1월 양산에 성공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는 만큼 배터리 기술력이 향후 완성차 업체들의 성패를 가늠할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며 "이를 외부 배터리 업체들에게 의존하기보다 완성차 업체들이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기술적인 측면에서나 브랜드 이미지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다"고 말했습니다.
조용하고 치밀한 준비
사실 현대차그룹은 배터리 자체 생산을 위한 준비를 치밀하게 준비해왔습니다. 지난해 1월 기존 배터리 개발 관련 조직들을 통합해 '배터리 개발센터'를 출범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배터리 개발센터에서는 배터리의 셀 단위 설계부터 BMS(배터리 관리시스템), 배터리 안정성 등 배터리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와 개발을 진행하는 곳입니다. 현대차그룹은 이곳에 향후 10년간 9조5000억원을 투입키로 했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 SK온과도 합작법인 설립에 나섰습니다. 배터리 직접 생산에 나서기는 했지만 아직은 배터리 전문 업체들에 비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들 업체들과 합작을 통해 기술과 생산 노하우 등을 습득하고 이를 자체 배터리에 적용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입니다.
배터리 기술 관련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도 적극적입니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솔리드파워와 전고체 배터리 요소 및 공정기술 확보에 나섰습니다. 또 미국 솔리드에너지시스템(SES)과는 리튬메탈 배터리 개발을 위해 협업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서울대와 함께 배터리 공동연구센터를 열고 공동 연구에 돌입했습니다. 배터리 기술 확보를 위해 전방위로 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행보로 보면 현대차그룹의 배터리 사업에 대한 궁극적인 목표는 배터리를 직접 제작하고 생산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번 신형 싼타페 하이브리드 모델에 적용된 배터리가 그 시작이고요. 하이브리드 모델에 적용된 배터리 용량은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에 비해 적습니다. 전기차 배터리 생산을 준비하고 있는 현대차에게 이번 신형 싼타페 하이브리드 배터리는 일종의 테스트로 보입니다.
높아지는 '자체 제작' 가능성
현대차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전동화 사업의 양대 축은 반도체와 배터리입니다. 현대차그룹은 다양한 방식으로 반도체에 대한 투자에도 나서고 있습니다. 다만 직접 생산은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반도체 생산 시설 구축에는 막대한 비용이 투입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반도체 설계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반면 배터리는 직접 생산이 가능합니다. 이미 현대모비스가 배터리 셀 패킹 기술 등 배터리 관련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현대차그룹이 배터리 셀 기술만 확보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현대차그룹의 배터리 셀 기술을 활용해 이를 현대모비스가 패킹하고 BMS 등을 장착해 모듈화하면 됩니다. 현대차그룹이 배터리 셀 기술 확보에 전력투구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현재 상용화된 배터리는 물론 리튬메탈 배터리,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도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것도 배터리를 직접 생산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입니다. 다양한 배터리 포트폴리오를 갖춰 이를 현대차그룹의 전기차에 적용,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영역을 더욱 확대하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는 겁니다.
현대차가 지난 6월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처음 언급했던 '자체 제작 배터리'는 이제 현실이 됐습니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생각보다 빨리 전기차용 자체 제작 배터리를 내놓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다시 말해 그동안 현대차그룹이 배터리 관련 준비를 착실히 해왔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하이브리드 배터리로 시작해 전기차 배터리까지 노리는 현대차그룹의 전략.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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