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배터리 업계 내 화두는 차세대 배터리입니다. 그중에서도 ‘전고체 배터리’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요. 초격차 기술력이 곧 시장 패권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얘기입니다.
글로벌 양극재 업체 유미코어(Umicore)의 마티아스 미드라이히 최고경영자의 발언이 업계 안팎의 이목을 더욱 쏠리게 합니다.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 시점이 이르면 2025년이 될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인데요. 이는 해당 기술 특허를 가장 많이 보유한 일본 토요타가 발표한 ‘2027년’보다 2년 가량 앞당겨진 시점이기도 합니다.
리튬 광산 업체 앨버말의 글렌 메르펠드 최고기술책임자도 2020년대 중반에 전고체 배터리가 출시될 가능성을 언급하고 나섰습니다. 그는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향후 몇 년 내 전고체 배터리를 장착한 차량을 출시할 것”이라고 관측했죠.
각국 대표 기업들이 전고체 배터리 기술개발에 뛰어든 가운데 국내 배터리 3사도 연구개발에 한창인데요. 전고체 배터리가 왜 차세대 배터리로 주목받는지, 기술개발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살펴봤습니다. 삼성SDI 뉴스룸을 참고했어요.
'화재위험' 낮추고 '주행거리' 늘린다
전고체 배터리의 가장 큰 장점은 ‘안전성’입니다. 기존 리튬이온배터리는 전해질로 액체인 유기용매를 사용하는데 때문에 발화 위험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온도 변화에 따라 배터리가 팽창하거나 외부 충격에 의해 불이 붙을 수 있는데요.
전고체 배터리는 불이 붙지 않는 고체를 전해질로 사용하기 때문에 이러한 위험도가 매우 낮습니다. ‘전부 고체’라는 의미서 명칭에 ‘전(全)’이 붙었죠.
열과 압력 등 극한의 외부 조건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때문에 별도 냉각장치나 배터리 관리 시스템 기능을 대폭 줄일 수 있고,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 에너지 밀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차량의 경량화와 주행거리의 향상을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다만 전해질이 액체에서 고체로 바뀌면 이온 전달에선 불리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전고체 개발에 시간이 소요되는 까닭도 이 때문입니다. 현재 각 기업들은 배터리 수명을 늘리는 작업 및 고체 전해질의 가공성 향상 방법 등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고체 전해질 성분에 따라 고분자계·산화물계·황화물계 등 크게 3가지로 구분됩니다.
각각의 특징도 명확한데요. ‘고분자계’는 생산이 쉬운 반면 이온전도도가 낮아 저온 환경일 때 성능이 저하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산화물계’는 비교적 높은 이온전도도를 갖췄지만 고온 열처리 공정이 필요해 대량생산이 쉽지 않고요.
‘황화물계’는 현재 대부분의 기업들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분야입니다. 습기에 예민해 노출되면 가스가 발생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온전도도와 계면 저항 특성이 고른 장점이 탁월하다는 평가입니다.
최대 라이벌은 토요타
현재 기준 전고체 배터리 연구에서 가장 앞서 있는 기업은 일본 토요타 입니다. 1000여개 이상의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데요. 토요타가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처음 뛰어든 때는 1995년 전후입니다. 2008년엔 차세대 배터리 연구소를 출범하며 정부·학계와 함께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대해 공식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당초 토요타는 “2022년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자동차를 내놓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목표를 2027년으로 수정합니다. 이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이 쉽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독일 폭스바겐과 BMW도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진심입니다. 폭스바겐은 미국의 퀀텀스케이프(QuantumScape)와 BMW는 미국의 솔리드파워(Solid Power) 등 전고체 배터리 개발업체와 각각 협력하고 있어요. 특히 폭스바겐은 2018년 퀀텀스케이프에 1억달러를 투자한 데 이어 2020년 2억달러를 추가 투자, 퀀텀스케이프의 지분 20%를 확보하며 적극 나서는 모양새입니다.
중국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칭다오에너지(Qingdao Energy)는 2018년 100메가와트시 규모의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생산 공장을 건설했고, 아이폰 위탁생산 업체인 폭스콘도 전고체 배터리 출시 계획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K-배터리 3사 “2020년대 후반 생산 목표”
한국 배터리 기업들도 연구개발비를 끌어올리며 기술경쟁력 제고에 나서고 있습니다. 삼성SDI는 지난해 3월 국내 최초로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을 착공, 올해 상반기 구축을 완료해 하반기부터 황화물계 제품을 시생산 중입니다.
올해 7월 손미카엘 삼성SDI 부사장이 “하반기 완성차 고객사에 시제품을 공급해 데모 차량에 탑재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죠. 삼성SDI는 전기자동차 실제 장착 테스트를 거쳐 2027년 상용화를 목표로 합니다. 이러한 일정을 기반으로 신규 고객사를 확보, 복수의 완성차 업체와 전고체 배터리 공급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집니다.
SK온은 고분자-산화물 복합계와 황화물계 등 두 종류의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두 종류 모두 2026년에 시제품을 생산하고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요. 현재 대전 배터리연구원에 건설 중인 차세대 배터리 파일럿 플랜트는 내년 중 완공 예정입니다.
최근엔 세계 최고 수준의 신(新) 고체 전해질 개발에 성공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8월31일 SK온과 단국대학교 공동연구팀은 ‘Li-La-Zr-O(리튬-란타넘-지르코늄-산소·LLZO)’ 첨가물질을 조정해 리튬이온전도도를 기존 대비 70% 개선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는데요. 국내외 특허 출원도 완료해 고품질 전고체 배터리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LG에너지솔루션도 2026년 고분자계 전고체 배터리, 2030년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KAIST 및 서울대학교 등과 산학협력을 맺고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요.
전문가들은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가 곧 배터리 산업의 확장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합니다.
정경윤 KIST 에너지저장연구센터장은 “전고체 배터리와 성능이 유사한 리튬이온배터리의 시장이 다소 줄어들 가능성도 있으나 여태껏 새로운 배터리가 나왔다고 해서 나머지 배터리가 사라지게 된 적은 없었다”며 “전고체 배터리 자체 특성에 맞는 응용처에 따라 수요층이 커지면서 산업 전반이 활기를 띄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