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 3사가 올 상반기 슈퍼사이클 덕을 제대로 봤다. HD한국조선해양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900% 이상 치솟았다. 삼성중공업도 160% 이상 증가했고, 한화오션은 전년 대비 흑자전환하며 힘찬 반등에 나섰다.
하반기에도 친환경 선박을 중심으로 주요 프로젝트 수주 가능성이 물망에 오르면서 훈풍을 이어갈 전망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조선사들의 가동률은 16년 만에 처음으로 100%를 나란히 웃돌고 있다. 조선 3사 실적 받쳐줄 수주 곳간 두둑해
22일 조선 3사(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이들은 총 7883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964% 증가한 수치다.
HD한국조선해양 성과가 압도적이다. HD한국조선해양의 영업이익은 상선부터 특수선까지 고른 수주를 바탕으로 536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900% 이상 늘었다. 삼성중공업은 해양플랜트 분야에서의 경쟁우위를 바탕으로 전년 대비 160% 증가한 2085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한화오션은 432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전년 대비 흑자전환했다.
매출도 성장세를 지속했다. HD한국조선해양의 상반기 누적 매출은 12조1311억원으로 전년 대비 17.8% 증가했다.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은 각각 4조8798억원과 4조8197억원으로 37.4%와 47.8% 뛰었다.
국내 조선 3사들의 실적 호조는 해운사들의 활발한 선박 발주 수요가 뒷받침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상반기 162억7000만 달러(22조4900억원)를 수주해 연간 목표인 135억 달러(18조6000억원)의 120%를 달성했다. 4년 연속 초과 달성이다.
삼성중공업은 최근 중동 선주로부터 LNG 운반선 4척을 1조4381억원에 수주하면서 총 22척, 49억 달러(6조5385억원)를 따내 올해 수주 목표인 97억 달러(12조9708억원)의 절반 이상을 달성했다. 한화오션은 중동 선주 2곳에서 각각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4척,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4척을 수주했다. 금액으로 따지만 53억 달러(7조861억원)다. 이는 지난해 수주 실적인 32억 달러(4조2784억원)을 넘어선 수치다.
신조선가도 든든한 우군…경쟁자인 중국 압도
신조선가지수마저 조선 3사들에게 든든한 우군이다. 수주량 증가에 더해 수주 선박에 대한 발주 금액 지표인 클락슨 신조선가지수가 매월 상승세를 나타내며 비싼 가격에 배를 지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상반기 기준 신조선가지수는 상승세를 지속하며 매월 신고점을 경신하고 있다. 6월 기준 신조선가지수는 187.23이다. 이는 역대 최고치를 찍었던 2008년 9월(191.6)과 비슷한 수치다.
실제로 국내 조선소가 강점을 보이는 LNG 운반선 가격은 고공행진하고 있다. 국내 조선 3사에 LNG 운반선 수주가 몰리면서 평균 선가가 상승하고 있다. 클락슨 리포트에 따르면 상반기 기준 국내 3대 조선사가 건조할 물량은 252척으로 전 세계 LNG 운반선의 수주 잔량(355척)의 71%에 달하고 있다.
특히 한국 조선사들의 성과는 강력한 경쟁자인 중국과 비교할 때 더 두드러진다. 표준선 환산톤수(CGT)로 집계할 경우 조선 3사의 수주 규모는 클락슨리서치 기준 96만 CGT(18척) 상당으로 중국의 57만 CGT(30척)를 크게 웃돌았다.
절대적 수주 선박 수 면에선 중국이 훨씬 많지만 1척당 환산톤수에서 뒤처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1만9000CGT를 수주하는 동안 한국은 2.8배가량 높은 5만3000CGT를 기록했다. CGT 기준 수주 점유율은 한국이 40%로 1위를 기록했고 중국은 24%선으로 집계됐다.
서재호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신조선가지수는 2008년 역사적 신고가인 191.58에 점진적으로 다가가고 있다"며 "국내 조선사들은 친환경 선박 수요 증가, 선가 상승 등 우호적 영업환경이 지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신조선가지수·수주 물량·상하이컨테이너지수(SCFI)'의 3고(高) 현상으로 조선사들은 한껏 가동률을 높이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상반기 조선 3사의 가동률은 이미 100%를 초과했다. △HD한국조선해양(HD현대중공업·HD현대삼호·HD현대미포 가동률 평균값) 104.5% △삼성중공업 112% △한화오션 100.7%를 기록했다. 가동률이 100%를 초과한 것은 마지막 호황기였던 2008년 이후 약 16년 만이다.
친환경 선박 수요 '굳건'…하반기도 장밋빛 기대
국내 조선 3사들은 하반기에도 쾌속 질주를 예고하고 있다. 친환경 선박을 중심으로 견조한 수요가 당분간 확실시 되기 때문이다. 해운사들은 국제해사기구(IMO)가 설정한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노후 선박을 교체해야 한다. IMO는 탄소집약도지수(CII)를 통해 선박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에 따라 A부터 E까지 등급을 나눈다. E 등급을 받거나 3년 연속 D 등급을 받으면 해당 선박은 개선 계획을 수립하고 재검증을 받을 때까지 운항이 제한된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최근 카타르 국영 에너지 기업인 카타르에너지가 50억 달러(6조8800억원) 규모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발주 계획을 발표했고, 조선 3사와 수주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수주 물량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카타르 물량은 LNG선 표준 선형인 17만4000㎥보다 큰 27만㎥급 규모다. 카타르 항만에 접안 가능한 최대 규모 선박이라는 뜻에서 '큐맥스(Q-Max)'로 명명됐다. 크기에 비례해 건조가격 또한 일반 LNG운반선보다 25% 가량 높게 책정됐다.
LNG 운반선에 더해 한국 조선사들이 강점을 보이고 있는 암모니아 추진선도 급부상 중이다. 암모니아 추진선은 탄소 배출이나 폭발 위험은 전혀 없지만 암모니아의 독성과 물체를 부식시키는 성질을 고려해야 하는 까다로운 선종이다. 선사들은 아직 암모니아 운반선(VLAC)에 대해서 보수적인 태도로 한국 조선업계를 신뢰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지난 2016년 중국 국영 조선소 후동중화조선이 건조한 글래드스톤호가 건조 2년 만에 해상에서 고장 나 멈췄던 이력이 있어 선사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암모니아 수요 증대로 관련 선박 발주량도 늘어날 것으로 보여 암모니아 추진선은 LNG 운반선을 잇는 조선 3사의 '블루오션'으로 꼽힌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이달까지 국내 조선 3사가 수주한 VLAC 계약 건은 전 세계 VLAC 발주량의 80% 이상이다. 이 가운데 HD한국조선해양이 약 60%를 차지했다.
이처럼 뛰어난 친환경 선박 건조 기술 덕분에 조선 3사는 3년 치 이상의 넉넉한 일감을 확보했다. 이들은 고부가가치·친환경 선박 중심의 선별 수주 전략을 지속해 하반기에도 실적 상승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모처럼 찾아온 호황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글로벌 탄소중립 정책에 따라 친환경 선박으로의 교체 수요에 맞춰 수익성을 끌어올리는데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