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이 미국 현지에 제철소 건설을 본격 검토 중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최신 조지아주 공장 가동에 따라 증가하는 수요를 충족하고,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으로 인한 관세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전략적 행보로 풀이된다. 이를 통해 현대차·기아의 현지 공장과의 공급망 연계를 강화하고 글로벌 시장 경쟁력을 더욱 확고히 하겠다는 구상으로 읽힌다.
8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미국 현지에 자동차 강판 제품 등을 생산하는 제철소 건설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의 공장이 있는 미국 조지아주 등 몇몇 주 정부 측과 접촉해 인프라 등 투자 여건에 관한 논의도 진행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이에 대해 현대제철 측은 그간 해외 신규 건설 투자 검토를 해온 것은 사실이나 아직 구체적인 투자 계획이 확정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현대제철은 이날 공시에서 "지속가능한 성장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미국서 물건 팔려면 미국에 공장 지어라"
그러나 최근 서강현 현대제철 사장의 발언을 살펴보면 해외로 거점을 확대하겠다는 메시지가 읽힌다.
지난 6일 서 사장은 신년사를 통해 "무역 블록화, 공급망 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글로벌 사업 거점을 확보해야 한다"며 "수출 경쟁력 강화와 현지 판매체제 구축이 필수적인 과제로 부각됐다"고 짚은 바 있다.
또 지난해 3월 주주총회에서 "글로벌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 생산 거점도 검토하고 있다"며 "어떤 지역에 투자해 무역장벽을 극복할 수 있을지 세밀한 검토를 해나가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규 제철소 추진이 아직 검토 단계여서 연간 생산량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생산 규모를 고려하면 업계는 연산 수백만톤 규모로 추정 중이다. 투자금도 많게는 10조원대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 취임 후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에 관한 자동차 업계의 우려가 큰 상황이어서 현대차그룹이 무역 장벽 돌파구 마련 차원에서 과감한 대미 투자를 단행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현대제철이 미국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뭘까.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에 상품을 팔고자 하는 외국 기업은 미국 땅에서 생산하라는 메시지를 수차례 강조해왔다.
업계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 후 강화될 미국의 보호무역에 주목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무역 장벽 돌파구 마련 차원에서 과감한 대미 투자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시장의 분위기다.
지금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량은 쿼터제에 묶여 있다. 또 트럼프 당선인이 예고한 멕시코와 캐나다산 철강 제품에 25%, 한국산 등 전 세계 대상 10~20% 보편 관세를 매길 경우 미국산 외 제품은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앞서 트럼프 1기 행정부는 2018년 당시 한국산 철강재에 대한 관세 부과 대신 쿼터제를 도입했는데, 2기 행정부에서는 이 물량마저 더 줄어들 공산이 크다. 구체적으로 철강재 54개 품목, 263만톤에 대해서만 25%의 관세를 면제하는 대신 이를 넘어가는 물량은 수출할 수 없다는 게 핵심이다.
현대제철 해외 첫 제철소, 미국에 들어설까
현대제철이 미국 현지 제철소 계획을 확정한다면 해외에서 쇳물을 뽑는 첫 제철소를 짓게 된다.
그동안 현대제철은 미국, 인도, 중국, 멕시코 등 현지 법인을 통해 국산 철강 제품을 단순 조립하거나 2차 가공하는 스틸서비스센터 형태로만 운영해왔다.
현재도 현대제철은 현대차와 기아 공장이 위치한 앨러배마와 조지아에 차량용 강판공장을 갖고 있지만 이는 기존에 생산된 제품을 차량용 강판으로 잘라 공급하는 곳이다. 향후 미국 에 제철소가 신규 건설된다면 실제 철강 제품을 생산하는 제강 작업이 이뤄지게 된다.
또 쇳물 생산은 기존의 고로가 아닌 전기로(EAF) 방식이 유력하다. 전기로는 말 그대로 전류를 사용해 고온의 열을 내서 고철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 설비다. 전기로 방식이 거론되는 데는 현재 전 세계적인 탄소 중립 기조를 고려해서다.
세계 철강업계는 고온의 열을 화석연료가 아닌 재생에너지 전력을 사용한 전기로로 대체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채택 중이다. 글로벌에너지모니터(GEM)가 2023년 발간한 ‘세계 철강 생산 현황에 관한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발표된 신규 제철소 건설 계획의 93%가 저탄소 철강 생산을 위한 전기로인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