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가 20일(현지시각) 시작됐다. 취임 전부터 세계 경제를 향해 으름장을 놓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등장에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보호무역을 앞세운 경제정책을 예고하면서 수출 위주의 한국 경제도 풍전등화다. 트럼프 대통령 2기 행정부가 우리나라 산업지형에 미칠 영향을 살펴본다.
수출 견인차 역할을 해온 반도체가 '트럼프'라는 대형 암초를 만났다. 전 세계 경제의 핵심 주축이자 전략 자산으로 반도체 산업이 주목받는 가운데 미국은 반도체에 대한 무역 장벽을 높일 채비를 하고 있다. 트럼프라는 존재 자체가 임기 내내 업계 불확실성을 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결국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고대역폭메모리(HBM)과 같은 고부가 가치 창출이 가능한 분야에서 한국 반도체를 우선적으로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경제 '암운' 실낱 희망 '반도체'
21일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액은 6838억 달러를 기록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직전인 2022년 6836억 달러 이후 주춤했지만 다시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 같은 흐름이라면 2025년에는 수출 7000억 달러 달성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견인차는 단연 반도체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은 1419억 달러 규모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했다. 특히 지난해 극심한 내수 침체로 한국 경제가 본격적인 불황의 늪에 빠진 것을 고려하면 국가기간산업인 반도체는 우리나라 경제의 버팀목과 다름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반도체가 우리나라 경제의 주축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넘볼 수 없는 기술 경쟁력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약 25곳의 반도체 기업들이 존재하는데 반도체 수출을 주도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늘 주목받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필수 반도체 산업인 낸드플래시, DRAM 분야에서 세계에서 제일 가는 반도체 기술력을 보유했다"라며 "최근에는 가장 뜨거운 HBM(고대역폭메모리)에 대한 기술도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서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2025년 '반도체'의 후광 옅어지나
우리나라 경제의 주축인 반도체가 올해는 쉽지 않은 한 해를 보낼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두번째 임기가 시작되는 영향이 가장 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임기 시작 이전부터 중국과의 강도 높은 무역분쟁을 예고한 상태다. 이미 막은 올랐다. 미국은 최근 반도체와 같은 핵심 자산에 대한 대 중국 수출 규제를 강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예고한 상황이어서 이같은 규제를 이어나갈 가능성이 높다.
이번 규제가 표면적으로는 미국에서 수출되는 반도체를 국가별로 나눠 규제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깊게 파고들면 우리나라 반도체 업계 역시 여기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우방국' 이기 때문에 이번 규제를 시작으로 미국이 추후 반도체와 같은 핵심 전략 자산 추가 대책을 마련, 글로벌 공급의 통제권을 쥐려고 하면 이를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국가는 중국으로 규모는 1330억 달러에 이른다. 그리고 이 중에서 반도체가 최대 수출 품목이다. 미국의 추가 행보에 따라 반도체의 수출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나아가 미국 뿐만 아니라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첨단 반도체가 사용된 제품의 대중국 수출을 제한할 경우 전 세계 수요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수출 감소로 인해 기업의 실적이 타격을 입는다면 지속적인 경쟁력 확보에도 타격이 있을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돌파구'는 있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 기간 동안 중국과의 마찰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경제계의 관측이다.
특히 미국에 의해 반도체 공급에 차질이 있을 것으로 전망되는 중국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 스스로 반도체 산업에 대한 경쟁력 강화를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다는 얘기다.
여기에 더해 HBM과 같은 고부가 가치 반도체를 제외하고는 점차 타 국가들의 생산능력이 향상되면서 경쟁력이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내 반도체 업계 역시 이같은 현실은 직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연구개발(R&D) 등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하며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준비작업을 마친 상태다.
다만 걸림돌은 있다. 성장을 위한 노력도 하지 못하도록 법이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정치권에서는 한국판 '칩스법' 이라는 반도체특별법이 발의되기는 했지만 현재 국회에 발목이 잡혀있는 상황이다.
반도체특별법은 반도체 기업에 대한 세금부담을 줄여주고 R&D 인력에 대해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를 두는 내용 등이 핵심이다. 여기에서 R&D 인력에 대한 주 52시간 예외 여부를 두고 여야가 의견이 갈리고 있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최상목 대통령 권한 대행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직접 반도체 특례법의 조속한 통과를 주문했지만 여야의 강대강 구도가 이어지며 법 통과를 쉽게 예단하기는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물론 대만 등에서도 반도체 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를 통해 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라며 "지금과 같은 시기에서는 빠른 의사결정으로 업계의 발전을 도모해야 할 시기가 아니냐"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