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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불허' 고려아연·영풍 분쟁, 시작부터 임시주총 파행까지

  • 2025.01.23(목) 21:14

작년 9월 갈등 본격화된 후 반전의 반전 거듭
고려아연 판정승에도 법정분쟁 장기화 불가피

지난해 가을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과 대주주인 영풍과의 경영권 갈등이 본격화한 후 꼬박 반년이 지났다. 

앞서 그간 영풍은 고려아연 배당을 통해 사세를 키운 측면이 강했는데, 2024년 3월 고려아연이 정기 주주총회에서 배당을 축소한다는 결정을 내리자 영풍 측이 이에 반발하면서 경영권 분쟁의 서막이 됐다.

업계에서는 이미 지난해 주총 이전부터 최윤범 회장 취임 이후의 경영행보에 대해 영풍측이 탐탁치 않게 여겨왔던 상황에서 배당 축소가 경영권 분쟁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고려아연은 영풍과의 결별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함께 하던 사업을 중단한데 이어 논현동 영풍빌딩에 있던 본사를 서울 종로구로 옮기며 상징적인 이별을 고했다.  

지난해 6월말 기준 고려아연의 지분구조는 영풍이 25.40%를 보유한 대주주이고 장형진 영풍 고문 측 등의 우호지분을 합해 약 30%가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최윤범 회장 측은 최 회장의 지분 1.84%를 포함해 약 15%가량을 보유했지만, 우군을 확보해 우호지분을 30%에 근접한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서로 우호지분이 비슷한 상황에서 0.1%의 지분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한다. '쩐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탐색전을 먼저 끝낸 것은 영풍 측이었다. 사모펀드 MBK와 손을 잡았다. 심지어 고려아연의 최대주주자리까지 양보하기로 하면서다. 이후 고려아연에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요청해 경영권 확보를 위한 움직임에 착수했다. 임시 주총에서 영풍과 MBK 측이 내건 인사들을 대거 임명시켜 경영권을 가져오는 것이 핵심이다. 관련 안건을 주총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영풍과 MBK는 공개매수에 나서며 본격적인 지분확보에 나섰다. 

최윤범 회장 측도 영풍과 MBK의 공개매수가 종료된 이후 즉각적인 공개매수로 맞대응했다. 하지만 '화력'에서 차이를 보였다. 고려아연은 회사 자금을 바탕으로 공개 매수에 나섰는데, 막대한 자금을 보유하고 있는 사모펀드 자금력에 밀릴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양 측 지분은 영풍과 MBK 측이 38~40% 가량, 고려아연 측이 34~35% 가량을 확보한 것으로 분석된다.

최윤범 회장 측이 첫번째 반전에 나섰다. 추가 지분 확보를 위한 유상증자 카드를 꺼냈다. 증자에 나서면서도 특수관계인이 배정받을 수 있는 비중을 제한하면서 영풍과 MBK의 자금력을 봉쇄했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이 제동을 걸었다. 금감원은 고려아연이 공개매수 직후 공개매수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유상증자를 진행할 경우 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주가가 하락하면서 일반투자자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고려아연 측은 고심 끝에 유상증자를 철회하면서  불발됐다. 

이후 임시주주총회에서 이사 선임 시 '집중투표제'를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별도의 제한이 없던 이사의 수를 19명으로 제한토록 하는 것도 주총 안건으로 올린다. 

집중투표제란 모든 주주가 선임하는 이사의 수당 하나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소액주주 의견이 회사 경영에 반영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도여서 우호지분률이 낮은 최 회장 측에 유리하다.

여기에 더해 이번 주주총회에서 총 21명(최 회장 측 7명, 영풍-MBK측 14명)이 추천됐는데, 집중투표제가 시행된다면 최 회장 측 추천 이사는 이사회 입성 가능성이 높지만, MBK측이 추천한 인사들은 이름을 올리기 힘들 것이란 가능성이 나왔다. 

두번째 반전 카드는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영풍과 MBK 측이 집중투표제 도입과 관련한 주주총회 상정 안건에 대해 의안상정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이 이를 인용하면서 상황은 영풍과 MBK측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임시주총 전날(22일) 최윤범 회장은 세번째 반전카드를 내밀었다. 임시 주주총회 직전인 지난 22일 고려아연은 호주 손자회사인 선메탈코퍼레이션(SMC)이 최윤범 회장 일가와 영풍정밀이 보유하고 있는 ㈜영풍 지분 10.33%(19만226주)를 575억원에 장외거래로 취득했다고 공시했다. 최윤범 회장 측이 SMC에 영풍의 지분을 넘기면서 고려아연→SMC→영풍→고려아연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가 완성됐다.

상법 제369조 3항에 따르면 회사, 모회사 및 자회사 또는 자회사가 다른 회사의 발행주식총수 10%를 초과하는 주식을 보유할 경우 그 다른 회사가 가지고 있는 회사나 모회사의 주식은 의결권이 없다고 명시돼 있다. 순환출자를 통해 특정인이 기업집단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이 조항에 따라 고려아연의 손자회사인 SMC가 영풍의 지분 10%이상을 보유하게 되면서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 25.42% 의결권도 효력을 상실한다는 게 고려아연 측의 논리다. 이 사안은 SMC가 '해외 법인'이면서 '유한회사'라는 점 때문에 해당 법의 적용 여부를 법적으로 따져볼 소지가 있지만, 최 회장 측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받아쳤고, 임시 주총 바로 직전에 이를 터트리면서 영풍과 MBK가 대응할 시간이 부족했다.

이후 23일 열린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는 영풍 측의 의결권이 제한된 체 진행됐지만 시작부터 주주간 의견이 맞서며 파행을 거듭했다. 최윤범 회장의 판정승에도 영풍과 MBK측이 고려아연 측의 마지막 카드는 물론 주총 자체에 대한 법적 공방을 예고한 터라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예상보다 더 장기화 할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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