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안팎의 거센 파도에 흔들리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과 점유율 모두에서 앞서가며 성과급 잭팟까지 터뜨리자 삼성 노동조합은 "깜깜이 제도 개선"을 요구하며 압박에 나섰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규제, 주가 부진까지 겹치면서 삼성은 안팎으로 흔들리고 있다. 업계선 "결국 해법은 인재와 기술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닉 성과급 잭팟…삼성 노조 자극했나
지난 2일 삼성 5개 계열사 노동조합을 아우르는 초기업노조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 노태문 DX부문장 직무대행(사장)에게 '낡은 성과급 제도와 변함없는 회사'라는 제목의 공문을 전달했다. EVA(Economic Value Added·경제적 부가가치) 방식에 기반한 현행 OPI 제도를 두고 "직원 누구도 계산식을 알 수 없는 깜깜이 성과급"이라며 개선을 촉구했다.
노조는 "회사가 성과급 개선 TF를 운영하며 여러 차례 회의를 진행했지만 이후 발표나 성과는 전혀 없다"며 "사기와 신뢰는 이미 바닥에 와 있다. 최소한 변하려는 모습이라도 보여달라"고 압박했다.
현재 삼성전자와 계열사들은 영업이익을 토대로 한 초과이익성과급(OPI·옛 PS)에 EVA를 산정 기준으로 적용한다. EVA는 영업이익에서 자본비용(법인세·투자금 등)을 제외하는 방식으로, 이익 절대치가 커도 비용을 많이 쓰면 수치가 낮아진다.
그러나 구체적 계산식이 공개되지 않으면서 '깜깜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삼성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조도 지난해 7월 창사 이래 첫 총파업을 벌이며 EVA 기반 OPI 제도 개선을 요구한 바 있다.
이번 공문은 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기로 한 노사 합의 직후 나왔다. 하이닉스 노사는 기본급 1000%로 묶여 있던 상한을 없애고 영업이익 10%를 통째로 성과급 재원으로 삼는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올해만 놓고 보면 직원 1인당 1억원 안팎의 성과급이 책정될 전망이다.
업계 내에선 "하이닉스 노사간 합의가 삼성 노조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실적 역전 상황에서 성과급 제도까지 비교가 되는 건 삼성 기업 입장서 부담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내우외환에 흔들리는 삼성의 위상
실적 격차는 뚜렷하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영업이익 23조4673억원을 기록하며 삼성전자를 제치고 사상 첫 영업이익 1위에 올랐다. 올해 상반기에도 영업익 16조6000억원을 올리며 삼성(11조3600억원)을 또다시 앞섰다. 삼성은 전년 동기 대비 33% 감소했다.
반도체(DS) 부문만 떼어놓고 보면 격차는 더 크다. 삼성 DS부문은 상반기 영업이익이 1조5000억원가량에 그쳐 같은 기간 하이닉스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D램 시장 점유율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 1분기 삼성은 30여년 만 처음으로 하이닉스에 1위 자리를 내줬다. 당시 삼성 점유율은 33.7%로 하이닉스보다 2.3%포인트(p) 낮았다. 2분기 들어 격차는 6%p로 벌어졌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2분기 하이닉스 점유율은 38.7%, 삼성은 32.7%로 집계됐다. 하이닉스는 빅테크 고객 대상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 제품 판매를 확대해 매출과 점유율을 동시에 끌어올렸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넘사벽'으로 불리던 삼성의 위치가 빠르게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대외 변수도 만만치 않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 VEU(검증된 최종사용자) 지위를 철회했다. 내년 1월부터 이들 공장은 미국산 첨단 장비를 들여올 때마다 개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증설이나 기술 업그레이드는 사실상 차단돼 중국 생산기지의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
삼성은 R&D 투자에서도 압박을 받고 있다. 지난해 투자액은 전년 대비 71% 급증한 95억달러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 중 증가율 1위였다. 경기 변동성과 수익성 압박 속 '과감한 투자 vs 단기 실적' 사이 줄타기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여기에 주가 부진까지 겹쳤다. 삼성전자 주가는 현재 6만9000원 선에 머물며 예전의 위세를 잃었다. 500만 주주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데다 성과급 갈등까지 겹쳐 경영진은 주주와 직원 모두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삼성의 해법 "인재 육성에 달려"
삼성의 근본 경쟁력에 대한 의문이 커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결국 돌파구는 인재와 기술에서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당장 고액의 성과급 지급은 어렵지만 불투명한 제도 개선을 서두르고 동시에 핵심 인재 유출을 막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성과급은 단순 금전 보상이 아니라 조직 내 공정성과 동기 부여와 직결된다"며 "하이닉스가 직원 1인당 1억원에 달하는 보상을 약속하면서 삼성 직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진 것도 사실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과 연동 체계가 불투명하면 오히려 불신과 갈등을 키울 수 있다"며 "매출·영업이익 등 객관적 지표에 기반한 명확한 개편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다만 "현재 삼성이 맞닥뜨린 국면을 고려했을 때, 당장 성과급을 과도하게 올려달라는 요구는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라며 "물가 상승률이나 매출 및 영업이익 성장률 수준에 맞춰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김 교수는 "삼성전자가 낸드플래시 등에 집중하는 사이 HBM 등 차세대 기술을 이끌 인재들이 경쟁사로 이동했다"며 "과거 인재를 가장 중시하던 삼성이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장기 전략을 세우지 못한 것이 뼈아픈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삼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재"라며 "우수한 인재를 육성하고 보호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