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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ETF 오래 살아남을 것…왜?"

  • 2013.06.07(금) 16:56

[마켓&피플]배재규 삼성자산운용 ETF 본부장
인덱스펀드에 기반 "자기극대화 지속 가능"
`주주가 펀드`인 뱅가드펀드 최후 생존 확신

지난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은 열돌을 맞았다. 10년의 성과는 화려했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에 진입했고 주식형펀드 위상을 감히 넘보고 있다. 약세장에서도 홀로 빛을 발한 게 바로 ETF였다.

그러나 ETF가 한국에 저절로 굴러들어온 것은 아니다. ETF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불모지에서 싹이 트고 꽃이 만개하기까지 누군가는 무던히 애를 써야했다. "그 사람이 바로 나요!"라고 자신있게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배재규 삼성자산운용 ETF본부장이다.

사실 ETF하면 '배재규'라는 이름이 떠오를 정도로 그는 업계에서 유명할대로 유명하다. 포털사이트에 배재규를 치면 인터뷰가 수십개 뜰 정도.  ETF 전도사부터 개척자까지 따라다니는 수식어도 각양각색이다.

인터뷰를 앞둔 기자는 뭔가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겠다고 잔뜩 벼르고 갔다. 그러나 최근 근황을 채 묻기도 전 이야기 보따리를 쉴새 없이 풀며 ETF와 그 주변 얘기로 가득했다. 기자가 한방 먹은 셈이다. 그렇게 두시간여가 쏜살같이 흘렀다.

ETF의 시작은 인덱스펀드에 대한 믿음

배 전무는 지난 3월 전무로 승진했다. 그러면서 ETF본부와 함께 인덱스펀드도 가져왔다. 그가 총괄하는 자금만 13조원에 이른다.

 

배 전무는 ETF에서 한 우물을 팠고 ETF로 유명해졌지만 ETF의 시작은 사실 인덱스펀드에 대한 믿음에서부터였다. 인덱스펀드는 주식이 아닌 지수를 따라가는 투자기법을 활용한다. 종목교체 부담을 버리고 시장 평균수익률을 따라가는 거다. 종목을 담을 때보다 수익이 제한될 수 있지만 깨질 위험도 덜하니 속은 편하다.

이처럼 시장수익률을 방어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바로 패시브(Passive) 전략이다. 이런 패시브 전략은 금융위기 이후 액티브(Active) 전략이 내세우는 종목 선택이 쉽지 않아지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 주목받았다. 대표적인 패시브전략 상품이 바로 인덱스펀드와 ETF다.

배 전무가 처음 삼성자산운용에 발을 들였을 때 맡은 보직은 코스닥팀장이었다. 전형적인 액티브 펀드 운용이다. 나름 실력을 인정받은 그였지만 "종목 싸움과 마켓타이밍 잡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편입비율을 늘리고 줄이는 것조차 버거웠다. 정말 쉽지 않더라."

그러던 차에 존 보글의 '뮤추얼펀드의 상식(Common Sense on Mutual Fund)'이란 책을 만났다. 배 전무가 인덱스펀드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계기를 말할 때 나오는 단골메뉴다. 당시 최고경영자였던 황영기 전 사장으로부터 이 책을 소개받은 후 배 전무는 인덱스펀드가 결국 이기겠다는 확신이 들었고 마침 당시 나온 것이 ETF였다. 배 전무는 ETF를 도입하게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뱅가드펀드 예찬론자..마지막 살아남을 운용사


"존 보글의 책을 여러번 읽다보면 펀드가 아닌 철학이 담겨 있더라." 뱅가드 펀드를 세운 존 보글은 인덱스펀드 창시자로 유명하다. 그는 프린스턴대 졸업논문으로 인덱스 펀드에 대해 썼고 졸업 후 이를 사업으로 연결시켜 설립한 게 뱅가드자산운용이다.

 

1976년 존 보글이 인덱스펀드를 출범시킬 당시에도 뮤추얼펀드는 전부 액티브 펀드였다. 당시 투자자들은 시장 흐름을 쫓으면 수익률을 크게 올릴 수 없다며 이를 비웃었지만 결국 피델피 마젤란펀드를 재치고 세계 제1의 펀드로 등극한다.

뱅가드펀드는 사실 최근 증시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뱅가드 매물로 인해 증시가 큰 부침을 겪은 것이다. 특히 글로벌 증시 랠리가 진행됐던 터라 매물은 더 쓰디 썼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뱅가드 매물 출회 배경이다. 뱅가드는 벤치마크(BM) 지수를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에서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로 변경했고 뱅가드펀드가 한국이 포함된 MSCI 이머징 펀드를 팔면서 출회된 것이 뱅가드 매물이다. 한국물의 경우 약 10조원에 달했고 7월초쯤 마무리될 예정이다.

배 전무가 강조한 '뱅가드의 뭔가 다른 점'은 다른 펀드운용사와 달리 주주가 펀드라는 점이다. 주주가 펀드이다보니 운용보수와 함께 주주들이 받아야 할 배당금이 펀드로 일정부분 환원된다. 자기극대화가 지속 가능하다.

그는 "전세계적으로 뱅가드운용에서만 운용되는 구조"라며 "투자가가 주인인 펀드야말로 가장 오래 살아남을 곳"이라고 확신했다. 

주로 패시브 펀드를 운용하는 뱅가드는 이런 구조 덕분에 벤치마크 지수를 과감히 변경할 수 있었다. 뱅가드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배 전무의 논리는 간단하다. "유권자가 왕이듯 투자자가 왕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투자자가 왕이 못된다. 뱅가드는 그게 가능하다."

결국 시장 효율성이 높아질수록 액티브가 패시브에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패시브 사업구조는 뱅가드가 사실상 독보적이다.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그의 말이 참이 될지 거짓이 될지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판명될 것이다.

ETF 부양, 일본은 되고 한국은 안되고


ETF를 도입하면서 그가 겪은 우여곡절은 이미 유명세를 탔다. 그는 ETF를 도입해야겠다고 생각한 후 금융감독당국의 설득작업에 나섰지만 처음엔 쉽지 않았다. 그렇게 무산되는 듯했다. 그러다 한국보다 ETF가 먼저 나온 곳이 바로 일본이었다. 일본이 먼저 ETF를 출시하자 그제서야 한국도 뛰어들었다.

일본은 그간 증시 부양에 나설 때 끊임없이 ETF를 사들였다. 최근 공격적인 양적완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중앙은행이 ETF를 만들어 운용사에 나눠주는 구조다. 배 전무는 "일본은 상업 기반이 키운 게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거래로 보면 우리가 앞선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아쉬움도 있다. 이제껏 한국은 ETF를 통해 증시를 부양한 사례는 없다. 앞으로도 없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뿐 아니라 대만과 홍콩, 중국 등은 ETF를 통한 증시 부양은 일반적이다. 이런 부양은 ETF 시장 풍토를 비옥하게 한다.

홍콩을 예로 들어보자.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조지 소로스는 홍콩 시장을 공략했고 홍콩은 성공적으로 이를 격퇴했다. 당시 시장 방어를 위해 홍콩 정부는 막대한 주식을 사들였고 소로스와의 싸움에 이긴 후 보유주식 처분이 문제였다. 처분하면 그대로 매물이 되 시장을 다시 끌어내리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ETF였다. ETF 보유기간을 제한하면서 매력적인 할인율을 제공한 것이다. 홍콩 ETF 시장은 그 뒤로 급성장했다.

한국에도 비슷한 기회가 있었다. 과거 증시안정기금이 도입됐을 때 배 전무는 ETF 매입을 제안했다. 그러나 ETF 운용사가 제한돼 있다는 이유에서 현실화되지 못했다. 배 전무는 시장조성을 통한 안정보다 형평성이 먼저 앞설 수밖에 없는 한국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래도 한국 ETF는 우뚝 섰고 그 공의 일부는 본인 것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패시브와 인덱시 시장을 파고들고 ETF 도입부터 활성화까지 그의 땀이 배어들지 않은 곳이 없다. 최근 일본 펀드가 워낙 인기를 끌면서 삼성자산운용은 ETF 거래대금 면에서 일본의 노무라자산운용에 1위 자리를 내줬다. 설정액 면에서는 7위를 달리고 있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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