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증권가는 KB증권에서 업계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탄생하자 '두꺼운 유리천장(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막는 보이지 않는 벽)이 뚫렸다'며 환호했다.
하지만 불과 한 달 새 IBK투자증권에서 남성 지원자를 선발하기 위해 여성 지원자를 떨어뜨린 채용 비리가 터지면서 이런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IBK투자증권의 채용 비리 사태지만 한 회사에 국한된 문제라기보다 증권업계에 만연한 남성 선호 현상의 단면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 관습적인 '여성 차별'정책에 채용비리도 가능
29일 검찰은 IBK투자증권이 2016~2017년 대졸 신입 직원 공개채용 과정에서 외부에서 청탁받은 지원자 6명의 전형별 평가 등급을 올리고 이 가운데 3명을 최종합격시킨 혐의로 관련 전 본부장을 구속기소하고 전직 부사장과 인사팀장 등 3명을 불구속기소 했다. 이들은 여성 지원자의 면접 평가 등급을 깎아 부당하게 불합격시킨 혐의도 받고 있다.
2016년 IBK투자증권 공채 지원자 중 남성 135명(61.6%), 여성 84명(38.4%)이었다. 하지만 최종 합격자 13명 중 여성은 2명(15.4%)에 불과했다. 2017년도 마찬가지다. 남성 135명(55.1%), 여성 110명(44.9%)이 각각 지원했지만 최종 합격자 9명 가운데 여성은 1명(11.1%)에 그쳤다.
지난해 터진 은행권 채용 비리에 나타난 여성 차별채용이 IBK투자증권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남성 지원자의 점수를 올리거나, 여성 지원자 점수를 낮춰 합격 여부를 달리했다. 2016~2017년 2년 동안 IBK투자증권에서 20명의 여성 지원자가 조작에 따라 합격권에서 불합격으로 밀려났다.
영업직에는 남성이 적합하다며 관습처럼 여성 차별 채용을 이어온 결과 지난해 9월 말 기준 IBK투자증권 전체 임직원 615명 중 여성은 231명으로 38%에 불과했다. 지점 창구 직군이 대부분 여성인 것을 감안하면 주요 직군의 여성 비율은 터무니없이 낮아진다.
◇ 증권가 여직원 비율 39%…본사 영업은 남성 위주
다른 증권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9월 말 분기 보고서를 제출한 증권사 중 직원 수 500명 이상 기업을 집계해 본 결과, 메리츠종금증권은 전체 직원 1429명 중 여성은 377명(26%)에 불과했다. 전체의 30%에도 못 미쳤다.
전체 직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DB금융투자과 하이투자증권이 각각 32%였고, 현대차증권과 하나금융투자도 33~34%에 머물렀다. 이밖에도 신한금융투자, 교보증권, 유안타증권, SK증권, KB증권이 40% 미만으로 집계됐다.
다른 증권사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NH투자증권, 한화투자증권, 삼성증권, 신영증권 등이 40~41%에 머물렀다.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 키움증권만이 40% 중후반대를 유지했지만 업계 평균은 39%에 머물렀다.
리테일이나 관리지원부서는 확연한 차이는 없었지만 본사 영업의 경우 남성이 몇배 이상 많았다. 메리츠종금증권 본사영업부문에서 여직원 비율은 16%로 미미했다. 한화투자증권과 신한금융투자도 각각 18%, 21%에 그쳤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브로커리지 업무나 투자은행(IB) 등 증권사의 핵심 업무는 대부분 영업이나 공격적 투자를 해야 해서 업무 특성상 남성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분위기를 설명했다.
지원자도 남성 지원자가 많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성비 불균형이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같은 금융권이라도 증권은 은행보다 절대적으로 여성 지원자 수가 적고, 직군별로 채용하다 보니 본사 영업에는 남성 지원자 쏠림 현상이 생겨 남성을 많이 뽑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