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특징 가운데 하나는 '증권맨' 출신이 많다는 것이다. 옛 대우증권 사장인 홍성국 의원을 비롯해 전(前) 한국카카오은행 공동대표인 이용우 의원, 연임에 성공한 증권업협회 노조위원장 출신의 김병욱 의원이 주인공이다. 증권 업계에선 이들이 증시에 대한 전문성이 높은 만큼 증권거래세와 공매도 등 관련 규제 완화와 육성책을 추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본시장의 산적한 숙원 사업들을 짚어보고 자본시장이 한단계 레벨업 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커피 한잔을 마실 때 부가가치세를 내는 것처럼 주식을 거래할 때에도 증권거래세란 세금을 낸다. 우리나라의 조세 기본원칙은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가 있다'인데 주식을 팔 때 내는 거래세는 이익이 나건 손실이 나건 상관이 없다.
주가가 하락해 투자 수익이 마이너스(-)가 되어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인데 투자자들이 좋아할 리 없다. 증시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증권사들 역시 반기지 않는다.
증권사들은 거래세를 아예 폐지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선 증권거래세가 없다는 점에서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21대 국회에서의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가 증권거래세 폐지다.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두개 당은 모두 증권거래세의 단계적 폐지를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하지만 쉬운 문제가 아니다. 거래세가 폐지되면 정부 입장에선 매년 안정적으로 거둬들이는 수조원 규모의 국세 수입을 포기해야 한다. 거래세 인하로 줄어드는 세수를 양도소득세 대주주 요건 완화로 메꾸는 방안이 부상하고 있는데 자칫 투자 심리 위축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 거래세 인하했으나 여전히 높아
증권거래세는 지난 1963년에 도입됐다가 1971년 폐지, 이후 1978년에 부활했다. 지난해 초부터 증권 업계를 중심으로 폐지해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됐으나 당국은 폐지 대신 인하를 결정했다. 이에 따라 작년 5월 증권거래세(코스피와 코스닥)는 0.3%에서 0.25%로 0.05%포인트(P) 인하됐다.
그럼에도 거래세율은 다른 주요 국가보다 여전히 높다. 주변 국가인 중국이나 홍콩, 태국의 거래세율은 0.1%, 대만은 0.15%, 싱가포르는 0.2% 수준이다. 미국과 일본, 독일 등은 거래세가 없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거래세는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증권 업계는 증시 활성화와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 거래세를 단계적 인하가 아닌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거래세를 폐지하면 시장 유동성이 커지고 차익거래나 프로그램 매매 등 외국인과 기관의 시스템 트레이닝이 활성화되면서 활력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거래세를 줄이는 것이 증시 활성화와 상관 관계가 없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실제로 증권거래세를 인하한 지난해 6월 이전과 이후의 월별 거래량은 유의적인 차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증시 거래량은 올 들어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글로벌 증시 급변동으로 개인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매월 큰 폭으로 확대되긴 했으나 거래세율 인하 직후(6월)부터는 한동안 감소세를 이어갔다.
오히려 거래세를 인하하거나 폐지하면 자본시장 투기 세력이 증가하면서 시장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거래소 노조는 지난해 8월 성명서를 통해 "증권거래세 폐지는 우리 자본시장을 대형 금융자본과 외국인의 놀이터로 만들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라며 "최근에는 외국계 헤지펀드가 코스닥에서 고빈도매매로 막대한 부당이익을 챙겼음도 밝혀졌는데 거래세가 폐지되면 이런 행태에 고삐가 풀릴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 거래세 폐지 반대급부로 양도소득세 확대안
거래세를 폐지한다면 매년 증시로부터 거둬들이는 안정적인 국세 수입을 포기해야 하는 등 세수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증권거래세를 통한 세수는 4조4733억원이다. 전체 세수 293조원 가운데 1.52%를 차지한다.
세목별로 보면 종합부동산세(2조원), 주세(3조원), 농특세(3조원)보다 거래세로 거둬들이는 수입이 많다. 거래세수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매년 4조원 가량을 유지했고, 2018년에는 거래대금 급증에 힘입어 6조원대로 확대되기도 했다.
정부가 거래세라는 안정적 세수를 포기한다면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양도소득세를 확대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거래세 인하로 줄어드는 세수를 양도세 대주주 요건을 대폭 완화해 메꾼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과세 체계에선 손익에 관계없이 모든 주식 거래에 세금을 징수하는 증권거래세를 소득세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대주주에 한해 양도차익에 세금을 부과하는 주식 양도소득세를 병행하고 있다.
주식 양도소득세는 1991년 비상장주식 대주주를 시작으로 1999년에는 코스피, 2005년에는 코스닥, 2013년에는 코넥스 시장까지 과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주식 양도차익은 대주주에 대해서만 과세하고 있으며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네차례에 걸쳐 대주주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현재는 개인 대주주가 아닌 투자자는 주식을 처분해도 양도세를 내지 않지만 2017년에 나온 관련 법령 개정안에 따라 내년부터 달라질 전망이다.
즉 2021년 4월 기준으로 주식보유액(평가액)이 직계존비속 포함 3억원 이상이면 '대주주'로 간주되어 양도세를 내야 한다. 가뜩이나 대주주 요건이 완화되고 있는데 거래세를 줄이고 양도소득세를 늘리기 위해 대주주 범위가 더욱 넓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거래세와 양도세 상호보완 체계 마련해야"
거래세를 인하 및 폐지하고 양도소득세를 강화하면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우선 거래세를 폐지하면 부담이 없어져 고빈도 매매의 확대 등 단기적 투자가 확대되는 경향이 강해질 수 있다.
아울러 외국인 투자자에 대해 양도소득세 과세가 불가능하고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높은 비중을 감안할 때 국내 투자자가 높은 양도소득세를 부담하지 않으면 국내 세수입이 큰 폭으로 감소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에 전문가들은 증권거래세와 양도소득세의 상호 보완체계를 마련해 단기투자를 통제하는 동시에 시장 안정화와 세수 확보에 기여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구기동 신구대 교수는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보고서를 통해 "증권거래세가 양도소득세의 보완 수단으로 증권거래의 투기화를 통제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외국인 투자자의 양도소득세 비과세에 따른 조세 형평성이 저해되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라며 "국내 자본시장 구조에서 증권거래세 폐지와 양도소득세 전환은 득보다 실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제 금융환경의 변화에 민감한 국내시장의 안정화와 장기투자의 정착을 위해 양도소득세와 증권거래세를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옛 대우증권 사장 출신으로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비즈니스워치와 인터뷰에서 장기 투자를 유도하면서 시장 안정성을 추구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홍 의원은 "궁극적으로는 증권거래세 인하 또는 폐지가 맞다고 생각하지만 양도차익 과세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거래세 폐지를 추진하면 단기매매가 조장될 수 있어 시장이 의도하지 않은 부분이 문제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