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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시들어간다'…설자리 잃는 증권사 애널리스트

  • 2020.07.07(화) 09:00

10년새 3분의 1 줄어…'법인영업 보조' 전락
잇따른 사고로 신뢰추락…상황호전 쉽지않아

한때 수억 원대 몸값을 자랑하며 '증권업계의 꽃'으로 대접받았던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위상이 요즘 말이 아니다. 증권사의 수익 구조 변화 속에 대내외적으로 입지가 좁아질 대로 좁아진 데다 잇따른 사건사고로 신뢰마저 크게 흔들리면서 존재 가치에 대한 의문부호까지 달리고 있다. 

증권가에서 오래 활동한 애널리스트 입장에선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절로 생각날 법하다.

◇ 애널리스트 10년새 3분의 1 줄어…10개 증권사는 '전무'

7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현재 협회에 등록된 57개 증권사의 애널리스트(금융투자분석사) 숫자는 1054명이다. 1500명을 웃돌던 2010년과 비교하면 10년 새 3분의 1이나 줄었다. 증권사별로는 NH투자증권이 119명으로 가장 많고, 신한금융투자 70명, 삼성증권 69명, KB증권 61명, 미래에셋대우 60명, 하나금융투자 51명, 한국투자증권 50명, 유안타증권 45명, 메리츠증권 41명 등이다.

수치상으로 압도적인 NH투자증권의 경우 자산관리(WM)와 상품기획 업무를 담당하는 금융투자분석사까지 모두 포함한 숫자로, 실제 리서치센터에서 근무하는 애널리스트 숫자는 74명이다. 이를 고려하면 전체 증권사 애널리스트 수는 1000명 남짓으로 더 줄어든다. 

중대형 이상 증권사는 아직 적어도 30명 이상의 애널리스트들로 리서치센터를 꾸려 가고 있지만 중소 규모 증권사들은 리서치센터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곳이 많다. 현재 코리아에셋투자증권과 유화증권, 상상인증권 등 28개 증권사는 애널리스트가 채 10명이 안되고, 그중 한국포스증권과 KR투자증권, BNP파리바증권 등 10개 증권사는 아예 애널리스트가 없다.

◇ 수익구조 다변화에 '법인영업 보조' 전락…보고서 질도 하락

애널리스트 감소의 주된 배경으로는 자본시장의 환경 변화와 맞물린 증권사들의 수익 구조 다변화를 꼽을 수 있다. 증권사들의 핵심 수익원이 위탁매매(브로커리지)에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대체투자 등을 중심으로 한 투자은행(IB), 자기매매, WM 등으로 옮겨가면서 브로커리지 수익 창출에 기여도가 높았던 애널리스트들이 점차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증권사 수익에서 브로커리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10년 새 70%대에서 30%대로 쪼그라들었다. 반대로 IB와 자기매매, WM 등의 비중은 크게 늘어 50~60%대에 이른다. 최근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소위 '동학개미운동'이 일어나면서 브로커리지 수익이 일시적으로 늘어났지만 지속 여부는 불확실하다.

돈을 벌지 못하고 쓰기만 하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게 된 애널리스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고유 리서치 업무보다 '법인영업 보조'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과 홈트레이딩시스템(HTS) 등의 대중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한 주식정보 공유 활성화 등으로 가뜩이나 가치가 하락한 애널리스트들의 분석 보고서(리포트)에 대한 관심을 더 떨어뜨리고 있다.

전직 애널리스트 출신의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리서치센터의 주업무가 법인영업 지원이 되면서 애널리스트들은 영업부서에서 요구하는 분야와 종목을 커버하기에 급급한 상황"이라며 "정작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분야나 기업은 뒷전이 되는 경우가 많다"라고 전했다. 

증권사 법인영업부서의 경우 국민연금공단이나 군인공제회, 공무원연금 등 대형 연기금 등이 주요 고객인데, 연기금 특성상 각 분야를 대표하는 기업들에 안정적으로 투자하길 원하는 만큼 애널리스트들도 해당 종목을 중심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이들 연기금은 위탁운용 증권사 선정 시 시가총액 1조원 이상 대표 기업들의 커버리지(분석) 여부 등을 우선적으로 보고 있다. 법인영업부서의 눈칫밥을 먹는 애널리스트 입장에선 자신의 소신을 담은 '매도(Sell)' 리포트는 언감생심이요, 글의 뉘앙스조차 마음대로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증권사 리서치센터들은 리포트 작성을 위한 현장 탐방과 분석 작업, 인쇄·배포 등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 등을 이유로 리포트의 유료화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증시 참여자 간 주식 관련 정보 공유가 활발해지고 리포트의 질과 가치가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유료화가 성공할지에 대해선 증권업계 스스로도 회의적이다.

◇잇따른 '선행매매' 사건으로 신뢰 추락…당분간 호전 어려워

신뢰가 생명인 애널리스트들이 잇달아 불공정 거래 혐의로 조사를 받는 상황도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다. 지난해 한 대형 증권사 리서치센터 소속 애널리스트가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의 1호 조사 대상으로 구속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기업분석 보고서를 배포하기 전에 주식을 미리 사두고 보고서가 나간 뒤 주가가 상승하면 이에 따른 시세차익을 노리는 '선행매매' 혐의다.

얼마 전에는 한 소형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이 특사경으로부터 압수수색을 받았다. 이 센터장은 지난해 자사 애널리스트가 작성한 리포트로 선행매매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연이은 두 사건은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애널리스트들의 입지를 더 위축시키는 모양새다.

당분간 애널리스트들을 둘러싼 환경이 쉽게 호전되긴 어렵다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중론이다. 증권사의 문을 두드리는 대다수 취업준비생과 신입 직원들이 리서치센터를 기피한다는 건 더는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증권사 내에서 리서치센터가 비용 부서로 인식된 지는 이미 오래됐다"며 "잘나가는 IB부서와 비교해 돈도 예전같이 많이 못 벌면서 업무 강도만 높은 리서치센터를 선호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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