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제도로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지금이 저평가를 해소할 변화의 물꼬를 트는 적기이기도 하다."
코리아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바라보는 현장의 목소리는 이렇다. 설립 1년 만에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하 얼라인파트너스) 이창환 대표의 말이다.
골리앗을 쓰러트린 다윗. 대기업의 변화를 이끈 토종 행동주의 펀드로 주목받고 있는 얼라인파트너스는 고작 1.1%의 지분으로 소액주주들을 결집해 우리나라 3대 엔터테인먼트 회사 중 하나인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올해 3월 주주제안으로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와 가까운 인사들로 채워진 이사회에 첫 외부 감사를 선임했고, 9월에는 SM 지배구조 문제의 핵심으로 지목됐던 라이크기획과의 조기 계약종료를 성사시켰다.
라이크기획은 SM 최대주주(18.46%)인 이수만 총괄의 개인회사. SM은 지난 20여년간 이수만 총괄의 프로듀싱 명목으로 라이크기획에 총 매출액의 6%를 매년 인세로 지급해 왔다. 매출액 기준인 만큼 손실이 난 해에도 수백억원의 인세가 지급됐으며 올해 상반기 지급액만 114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SM과 라이크기획의 계약구조가 'SM 주주의 가치를 훼손한다'며 계약 종료를 요구했다. 주위에서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지적했지만 소액주주들과 힘을 합친 얼라인파트너스는 실제 계란으로 바위를 깨트렸다. 앞서 SM의 문제점을 지적해온 기관투자자들이 이루지 못한 성과를 이뤄낸 것이다.
이창환 대표는 "기관투자자들의 도움도 있었지만, SM의 변화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소액주주들의 관심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제도만으로는 코리아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자본시장을 바라보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지금이 바로 변화의 물꼬를 트는 적기이기도 하다"라고 강조했다.
그가 본 변화의 가능성은 무엇일까. 얼라인파트너스 이창환 대표를 직접 만나 우리 증시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황과 전망을 짚어봤다.
행동주의, 먹튀 대명사에서 '기업 가치 높이는 사람들'로
행동주의 펀드라고 하면 부정적인 인식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과거 SK그룹을 공격해 경영권 분쟁으로 주가를 부양시키고 지분을 팔아 8000억원이 넘는 단기차익을 올린 후 떠난 소버린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당시 소버린은 '먹튀의 대명사'로 불렸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 반대, 현대차 계열사 지분 매입 후 고액의 배당금과 자사주 소각 등을 요구했던 엘리엇에 대한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는 이들을 단기차익을 노리고 경영에 개입하거나 취약한 지배구조를 가진 기업의 경영권을 흔들려는 해외에서 온 '기업사냥꾼'이란 인식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국내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이젠 자본시장 참여자라면 대부분 물적분할 후 재상장 문제 또는 합병비율 산정때 시가로만 평가하는 것이 주주들에게 미치는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과거엔 소수 전문가들만 관심을 가져온 디테일한 기업 지배구조 문제까지 대중적 이슈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런 가운데 소위 토종이라 불리는 국내 행동주의 펀드들이 등장했다. 과거 기업사냥꾼 이미지가 강했던 외국계자본과 달리 불공정내부거래, 기업분할, 합병비율 등 개인투자자들이 홀로 접근하기 어려웠던 문제 제기를 통해 주주가치를 높이려는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이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에 도움 될 것이란 공감대가 확산하며 인식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이창환 대표는 "기업 지배구조에 관심이 높아지고, 토종 행동주의 펀드들이 등장하면서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시선도 달라지고 있다"며 "지금이 바로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의 물꼬를 틀 적기"라고 말했다.
이창환 대표는 세계적 사모펀드 KKR(Kohlberg Kravis Roberts) 재직 당시 PE부문 한국담당 상무를 지냈다.
그는 "KKR에서 경영권 인수를 통해 이사회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경험을 쌓아왔고 이러한 경험들이 이전 행동주의 펀드들과는 다른 행보를 가능하게 한다"라며 "우리는 기업과 싸우는 펀드가 아니라 주주로서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하려는 것이고 이는 주주로서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개별규제 보단…시간 걸려도 원칙 세워야
이창환 대표는 코리아디스카운트의 해법으로 가장 먼저 '주주가치 훼손을 막아야 한다'고 꼽았다.
이 대표는 "기업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모든 전제는 '일반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히면 안된다'라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최근 정부가 내놓은 물적분할 관련 대책처럼 모든 문제에 일일이 개별 규제를 만들어 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데다 문제 해결도 쉽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실제 정부는 물적분할 문제가 불거지자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고 분할 목적 등 공시를 강화하는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물적분할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자산양수도 방식을 활용하면 주식매수청구권을 받을 수 없는 데다, 주식매수청구권을 받는다고 해도 매수가격을 시장가격으로 산정하면 기업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주주들의 재산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래서 상법 개정으로 이사가 회사만이 아닌 모든 주주를 위해 일하게끔 하는 '이사의 충실의무'를 도입하고, 이를 지키지 않았을 때 주주들이 쉽게 소송을 할 수 있고, 이사들은 자신들의 결정을 증명해야 하는 책임을 지도록 해야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대표는 "상법 개정은 법을 바꿔야 하는 만큼 시간은 걸리겠지만 결국 회사의 주요 결정을 하는 이사회가 주주가치 훼손을 초래하는 결정을 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소송 판례도 쌓이면서 시장이 안정을 찾을 것"이라며 "원칙이 제대로 서면 코리아디스카운트를 유발하는 대부분 문제도 해결되리라 본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만 이런 기본적인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면, 이사회가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결정을 할 때 대주주를 제외한 나머지 주주들의 표결을 붙여 과반이 넘어야 실행할 수 있도록 하는 MOM(Majority of Minority, 비지배주주의 과반 결의) 제도 등을 보완장치로라도 마련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기업에 잠자는 돈 깨워야
자금을 운용하는 사람으로서 이 대표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부분은 바로 기업에 묶여 있는 돈이다. 그는 국내 기업들이 외국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무 많은 자본을 활용하지 않고 쌓아두고만 있다고 지적했다.
배당을 투자자의 신뢰를 얻는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말하는 이창환 대표는 기업이 배당이나 투자를 통해 풀지 않고 내부에 쌓아두는 돈 역시 코리아디스카운트를 유발하는 요인으로 봤다.
그는 "국내 기업이 배당에 인색한 이유는 배당소득세 등의 이유도 있지만 배당으로 지급하고 나면 사라지는 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기업이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배당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들의 재투자를 통해 우리 자본시장과 새로운 기업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자원이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묶여 있는 돈들은 우리나라에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불러올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인데 현재 우리 스스로가 경제성장의 기회를 져버리고 있는 셈"이라며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코리아디스카운트를 단순히 주식시장의 일이라고 보는 인식의 틀을 깰 필요도 있다"라고 주장했다.
사회적 대타협 필요…어려워도 지금이 적기
이 대표는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사회적 대타협 필요성도 언급했다. 일반주주 입장에서 이사회의 주주이익 보호 의무를 강화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최대주주 입장에서도 필요로 하는 방안을 생각해 봐야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상속세와 배당세 등을 이유로 국내 기업의 대주주들은 주가를 올리고 싶어하지 않거나 오히려 낮추기 위한 행동도 한다"며 "우리는 이런 기업에 절대 투자하지 않지만, 이런 구조적인 문제도 코리아디스카운트를 발생시킨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 추가로 최대주주 주식을 상속받을 경우 할증과세가 붙어 최대 60%의 세율이 적용된다. 일부 공제를 받는다고 해도 현 시세 기준 상속주식의 58.2% 가량을 세금으로 내야한다. 여기에 소득세 최고세율은 45%다.
이 대표는 "최대주주의 자녀들이 가업을 승계하려면 사실상 기업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라며 "좋은 기업들이 해체되고 더이상 존속하지 못하는 사례도 많이 보게 되는데 일반주주를 보호하면서 기업도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상속세를 없애고 차후 실제 주식을 매각할 때 양도소득세를 내도록 하거나, 최소한 상속세율을 양도소득세율 정도로 내리고 배당소득세도 분리과세하도록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대표는 "소위 '부자감세'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앞서 제기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주주의 목소리도 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라며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 충실의무를 도입하는 등 근본적인 개선책들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주주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사회적 대타협이 이뤄져야 하고 이것이 코리아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상법을 고치고, 세법을 고치는 일은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아니다. 적절한 합의점을 찾고 균형을 맞추는 방안 역시 이상적인 생각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이창환 대표는 지금을 놓칠 수 없는 시기로 보고 있다.
이창환 대표는 "지금까지 개인투자자들은 주주임에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지만 과거보다 지금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건들이 만들어졌고 실제 목소리를 낼 사람도 많아졌다"며 "SM의 사례를 통해서도 우리는 이미 소액주주들의 힘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기업가치를 높이는 사람으로서 앞으로도 이 같은 행보를 계속할 것이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와 주주들의 행동이 결국 법과 제도를 바꾸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노력으로 코리아디스카운트가 해소되고 그동안 기업에 잠자던 자금이 시장에 돌게 된다면, 우리 경제가 더 크고 효율적으로 돌아가는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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