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 군사 충돌 여파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는 등 에너지 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도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길어질 경우 원유 공급 차질이 현실화될 수 있다며, 물가 상승과 시장 변동성이 동시에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9일 아시아 증시 개장과 함께 국제 유가는 급등하며 2022년 7월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군사 작전이 단순한 지역 분쟁을 넘어 전 세계 에너지 공급망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각각 배럴당 116달러를 돌파했다.
미래에셋증권은 리포트를 통해 이번 유가 급등이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보다 더 복합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당시엔 공급 가격과 경로 문제가 핵심이었다면, 지금은 공급 자체가 물리적으로 막히는 동시에 저장 용량도 한계에 다다르는 이중 병목이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2022년 위기와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은 중동 산유국들의 저장 용량 한계"라며 "수출길이 막힌 상태에서 원유가 저장 탱크로 계속 밀려들어 이라크는 약 3~6일, 쿠웨이트는 약 14일, 사우디는 최대 60일 내에 저장 용량이 한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저장고가 가득 차면 유전을 물리적으로 폐쇄하는 강제 생산 중단이 발생할 수 있다"며 "유정의 압력 관리 문제로 인해 전쟁 종료 이후에도 공급 복구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또 2022년에는 러시아산 원유 공급이 줄어들더라도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산유국들이 보유한 하루 300만~400만 배럴 규모의 예비 생산 능력이 시장의 심리적 안전판 역할을 했다. 하지만 현재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이 예비 생산 능력의 상당 부분이 페르시아만 내부에 묶여 있는 상태다. 송유관 등 우회 경로 역시 제한적이다. 현재 중동 산유국들이 보유한 파이프라인 등 우회 수송 능력은 호르무즈 해협 전체 물동량의 약 35% 수준에 불과하다.
키움증권도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지속될 경우 원유 공급 불안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키움증권 리서치센터는 "미국과 이스라엘, 이란 간 군사 충돌 이후 유가가 급등했다"며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가 실제 생산 차질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정상화되기 전까지는 원유 시장 내 공급 불안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당분간 국제유가는 배럴당 90~120달러 구간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키움증권은 유가 방향성이 결국 호르무즈 해협 봉쇄 지속 여부와 중동 지역 군사 긴장의 완화 속도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공급 차질 규모도 중요하지만 시장이 해당 사태가 얼마나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인식하느냐도 유가 변동의 핵심 변수라는 설명이다.
금융시장 변동성도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국내 증시는 월간 두 차례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는 등 극단적인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코스피 지수는 이달 들어 약 15% 급락했고 외국인 자금도 약 10조원가량 이탈한 것으로 추정된다. 키움증권은 "한국 경제가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구조인 만큼 에너지 공급망 교란과 유가 급등이 국내 기업들의 비용 부담을 높이고 증시 펀더멘털에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유가 상승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다시 높일 가능성도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유가가 이미 연초 대비 20% 이상 상승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관세 비용과 에너지 비용 증가분을 소비자 가격에 전가할 경우 물가 상승 압력이 추가로 확대될 수 있다고 봤다. 특히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유럽과 아시아는 직접적인 충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화석연료의 약 98%를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역시 이번 유가 급등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편 이번 위기가 새로운 투자 흐름이 형성되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김 연구원은 "현재 진행 중인 위기는 고통스러운 조정을 동반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전환점이기도 하다"며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과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관련 산업에 대한 투자 기회가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