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계열화, 문어발식 확장, 콘텐츠 단가 후려치기, 중소기업 아이디어 도용, 시장지위 남용, 언론사 편집권 개입 등이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문제점을 말해줘야 제도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허심탄회하게 말해 달라"
중소 인터넷 기업들이 작심하고 '네이버 횡포'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를 높일 줄 알았으나 기대와 달리 분위기가 달아오르지 않자 새누리당 의원들이 끼어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피해를 입었는지를 "임펙트 있고 생생하게" 말해 달라는 주문까지 나왔다.
의원들 독려에도 이른바 '을(乙)' 업체 발언 수위는 크게 높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규제보다 상생이 낫다"는 주최측 의도와 정반대 목소리가 나오는가 하면 네이버를 옥죄면 구글 등 해외 기업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역차별' 우려까지 나왔다. 논란의 당사자인 네이버측도 조목조목하게 반박하고 나오는데다 경쟁사인 다음도 여기에 동조하자 분위기는 더욱 묘해졌다.
◇ 새누리당 지도부 총출동
지난 23일 한국무선인터넷협회에서 열린 이른바 '네이버 토론회'는 시간이 갈수록 주최측의 원래 의도인 '공룡포털에 대한 집중적인 성토장'으로 방향과는 거리가 멀게 흘러갔다.
[23일 열린 네이버 규제 관련 토론회에서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운데 오른쪽)가 김상헌 NHN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새누리당이 대형 포털의 독과점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 사례를 모으기 위해 마련한 자리. 보수 언론들이 각종 기획기사를 통해 네이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등 멍석을 깔아놓은 상태에서 열린 간담회라는 점에서 주최측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새누리당은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대형 포털을 규제하기 위한 법을 제정하기 위해 온라인 생태계에서 '갑(甲)' 비판을 받고 있는 네이버를 정조준해왔다. 최경환 원내대표와 김기현 정책위의장, 윤상현 수석부대표, 나성린 정책위 부의장 등 새누리당 원내지도부를 포함한 의원 10명이 출동해 행사 자체에 대한 관심도 뜨거웠다. 토론회장은 취재 열기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번 행사명은 '공정과 상생의 인터넷 사업을 위한 현장간담회'다. 말이 간담회이지 사실 네이버를 공공의 적으로 몰아넣고 '돌을 던져라' 식의 난타전 성격이 강했다. 의원들이 중소업체 대표에게 '화끈한' 발언을 유도하거나 네이버를 삼성·현대와 같은 "재벌기업"이라고 표현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정작 중소업체 대표들은 대형포털의 독과점 문제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강제로 규제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을 내놨다. 네이버 탓에 매출이 줄어드는 등 금전적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례도 보고하긴 했으나 의원들이 원하는 정도의 내용은 아니었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9'의 이구범 대표는 지난해 자사 매출이 88억원으로 포털이 시장에 진출한 2009년에 비해 30% 가량 감소했다고 소개하면서도 "공교롭게도 네이버가 진출한 2009년은 부동산 시장 자체가 침체된 시기"라며 말끝을 흐트렸다.
웹소설 서비스 업체 조아라닷컴은 "아직 네이버와 충돌이 많지 않다"는 다소 김 빠지는 지적을 했다. 이 회사 이수희 대표는 "네이버가 지난 1월 웹소설 분야에 진입해 시장 확대에 기여한 면도 있다"며 "아직까지 네이버와 겹치는 것은 없으나 사업이 안정화되면 나중에 타격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남 좋은 일 시키는 꼴"
포털 규제가 오히려 해외 업체에 혜택을 주는 엉뚱한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유머사이트 '웃긴대학'의 이정민 대표는 "네이버를 규제하면 2위 업체인 다음 등이 이득을 봐야 하나 명백하게도 해외 업체 구글이 이득을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신중해야 하며 그 전에 업계가 자율적으로 해결하도록 도와 달라"고 말했다.
스마트폰용 알람 서비스를 개발한 말랑스튜디오의 김영호 대표는 "언론에서 네이버 때문에 피해를 입은 대표 사례로 우리 회사가 거론되나 사실 모바일에선 우리가 네이버보다 빨리 서비스를 시작했기 때문에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네이버가 구글과 애플 등 해외 업체에 비해 늦게 모바일 서비스를 시작했다며 오히려 네이버를 염려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네이버를 향해 비판의 수위를 가장 높인 곳은 '컴닥터119'라는 컴퓨터 수리업체다. 이 회사 이병승 대표는 "한때 직원 100명, 1300개 체인점을 운영했으나 네이버가 짝퉁 검색광고를 하면서 주문이 크게 줄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표에 따르면 이 회사는 한때 국내 대표 컴퓨터 수리점으로 컴닥터119라는 이름의 상표권까지 얻었으나 이와 유사한 이름의 업체들이 네이버에 검색되면서 피해를 입었다. 이 대표는 "네이버측에 대법원 상표법 판례문을 들고 찾아가 왜 우리가 갖고 잇는 상표권을 네이버가 사용하느냐고 물었더니 네이버 법무팀장이 법대로 하라 하더라"라며 울분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은 네이버측 주장과 엇갈렸다.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의 김상헌 대표는 "컴닥터측이 문제를 제기한 2007년 당시에는 네이버가 검색광고를 직접 한 게 아니라 야후의 자회사 오버추어가 입점해 대신 한 것"이라며 "네이버가 자체적으로 검색광고를 시작한 것은 2010년부터라 이 대표가 만난 사람은 오버추어 법무팀장일 것"이라고 해명했다.
◇ 네이버는 조목조목 해명
김 대표는 그동안 네이버에 대한 거센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이슈별로 조목조목하게 반박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수직계열화와 문어발식 확장은 공정한 경쟁이 없는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라면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며 "하지만 검색 분야는 이용자들이 정보 종류에 상관없이 무차별적으로 정보를 원하는 곳이라 검색품질을 유지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구글은 네이버보다 규모가 20배 이상 크고 자본과 인력, 기술 모두에서 앞서 있어 똑같은 위치에서 경쟁하라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네이버가 직접 손을 댄 분야도 부동산과 쇼핑 등 몇 개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쇼핑 중개 수수료를 지금보다 더 낮출 경우 이른바 '파격 할인' 효과가 나타나 함부로 수수료율을 낮출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네이버 경쟁사인 다음도 거들고 나섰다. 이병선 다음 이사는 "우려하는 부분은 건전한 인터넷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포털 사업 모델 자체를 죄악시하는 시각"이라며 "검색을 기본으로 하는 포털이 의미있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선 가격정보 쇼핑, 부동산을 다룰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측에서도 규제에 대해선 신중하게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미래부 윤종록 차관은 "포털 같은 부가 서비스 영역에 규제를 하지 않는 것은 전세계가 마찬가지"라며 "경우에 따라 규제법을 만들 수 있으나 입법의 잣대가 아닌 가이드라인으로 규제를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상생 협력을 해야한다"고 제안했다.
원래 의도와 달리 포털에 대한 옹호하는 발언이 많아지자 주최측은 당혹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한 의원은 "공부가 덜 되어 있지만 부동산 전문업체도 있는데 네이버가 플랫폼만 제공하면 되지 왜 직접하느냐"고 막무가내로 다그치기기도 했다. 이러자 김 대표는 "이용자에게 제대로 된 가치를 준다면 네이버가 직접 할 필요가 굳이 없다"며 물러서지 않고 받아쳤다. 또 다른 의원은 "전에 김 대표를 민원 때문에 만난 적이 있다"는 오해를 살만한 실언을 내뱉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