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니가 TV와 함께 대표적 부진 사업으로 꼽히는 PC 분야를 떼어낼 계획이다. 태블릿PC에 밀려 쇠퇴하고 있는 PC 사업을 정리하고 신성장 동력인 모바일 등에 올인해 회생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로써 소니의 프리미엄 브랜드 '바이오(VAIO)'는 18년 만에 소니 품을 떠나게 된다.
◇소니, PC사업 日 투자사에 매각키로
5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소니는 PC 사업을 투자회사 '일본산업파트너스'에 매각키로 하고 최종 검토에 들어갔다. 일본산업파트너스가 새로운 회사를 설립한 뒤 소니로부터 PC 사업을 양도받는 형태로 양사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매각 금액은 3억9100만달러~4억8900만달러(한화 4213억~5269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새로 설립될 회사는 소니 바이오 브랜드의 컴퓨터 판매와 애프터 서비스(AS) 등을 다룬다. 소니는 PC사업 매각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일부 출자도 고려하고 있다. 새 회사는 우선 일본 시장에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소니 바이오 브랜드가 이미 진출한 미국 시장에서 사업을 계속할지 검토하고 있으나 그외 대부분 국가에선 철수할 방침이다.
현재 소니 PC 사업부에는 약 100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매각이 결정되면 이곳 경영진을 포함한 대부분 인력은 새 회사로 이동하고 일부는 소니에 남는다. 일본 나가노현에 있는 소니 PC 사업 거점은 연구개발(R&D)과 생산을 계속 담당한다.
소니는 지난 1996년에 바이오 브랜드로 PC 사업에 진출했다. 기존에는 TV와 비디오 같은 가전제품을 다뤘으나 컴퓨터·노트북 같은 정보기술(IT) 영역으로 손을 뻗친 것이다. 하지만 태블릿PC 보급으로 PC 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소니도 타격을 받고 있다. 소니 바이오PC는 한 때 연간 출하량이 870만대에 달했으나 지난 해에는 580만대에 그칠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소니는 세계 PC 시장에서 9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1~9월 사이 출하량 기준 점유율은 1.9%에 불과하다.
소니는 PC 사업의 성적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으나 적자를 기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니가 PC 사업을 매각할 경우 재무재표상 2013회계연도(2013년4월~2014년3월) 연간 실적은 2년 만에 적자로 돌아설 전망이다. PC사업 매각으로 재고 및 시설 관련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원래 소니는 2013회계연도에 300억엔의 영업이익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전년동기보다 30% 줄어든 것이나 주력인 TV와 카메라 사업 등이 전반적으로 부진한 상황에서 흑자를 내놓는 것이라 그나마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소니는 이번 PC사업 매각 협상이 불발될 경우 스마트폰을 다루는 자회사 소니모바일커뮤니케이션즈로 PC 사업을 이관할 계획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동시에 다루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전략이다.
◇소니 회생 원동력 '바이오'..지금은 대표적 적자 사업
소니가 PC 사업에 최초로 진출한 것은 지난 1982년이다. 당시 기대만큼 재미를 못보자 철수했다. 절치부심하던 소니가 다시 시장에 뛰어든 것은 지난 14년 후인 1996년이다. 신임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이 주도했다. 1995년에 취임한 노부유키 회장은 앞으로 인터넷 시대가 올 것을 예측하고 취임 이듬해 프리미엄 브랜드 바이오를 시장에 내놓았다.
혁신적인 디자인의 바이오 컴퓨터와 노트북은 세계 69개국에 판매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소니는 노부유키 회장이 취임하기 전만해도 연간 3000억엔의 적자를 기록하며 비틀댔으나 바이오 PC와 '베가' TV 등이 연달아 성공하면서 1998년 2000억엔이 넘는 대규모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PC 산업이 태블릿PC에 밀려 쇠퇴하면서 소니 바이오도 좀처럼 힘을 내지 못했다. 저가 태블릿이 쏟아지면서 PC 산업 자체가 사양길에 접어 들었다. IDC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PC 출하대수는 전년대비 10% 줄어든 3억1445만대다. 이는 고점인 2011년부터 2년 연속 하락세이다.
TV와 함께 소니의 효자 사업으로 꼽히던 PC가 추락하면서 세계 전자제품 시장을 주무르던 소니도 가라 앉고 있다. 소니는 TV 사업으로만 최근까지 9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소니는 경영난이 계속되자 지난 2012년 4월 '젊은 피' 히라이 가즈오(55세)를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하고 과감한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히라이 CEO는 취임 직후 1만명 가량 감원하는 등 대대적인 개혁에 나섰으나 유독 PC에는 손을 대지 못했다. PC 사업은 전임 노부유키 회장의 역작인데다 고객층도 워낙 두터워 쉽게 칼날을 들이댈 수 없었던 것이다.
이번에 소니가 PC 사업을 매각하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대주주인 미국 헤지펀드 써드포인트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써드포인트는 PC와 TV 사업의 구조조정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소니를 압박했다. 앞서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지난달 27일 소니의 등급을 투기등급으로 강등하면서 TV와 PC 사업의 부진한 수익성을 문제삼은 것도 히라이 사장을 움직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