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와 휴대폰에서 한국 기업에 밀리며 고전하던 일본 소니는 지난해 '젊은 피'를 등용해 대반전을 꾀한다. 지난 2005년부터 '소니 제국'을 이끌어 온 하워드 스트링어(69) 최고경영자(CEO)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대신 히라이 가즈오(54) 부사장을 CEO에 앉혔다. 스트링어는 소니 최초의 외국인 CEO였다. 소니는 개혁 차원에서 파란 눈의 이방인에게 경영을 맡겼으나 여의치 않자 내부로 시선을 돌린 것이다.
그렇게 물색한 CEO가 히라이였다. 그는 1990년대 초 가정용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PS)`으로 게임 사업을 소니의 주력으로 육성시킨 인물이다. 스트링어는 회사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젊은 임원들을 적극 영입했는데 히라이 등 4명의 젊은 피를 전자 사업을 회복시킬 `4인방`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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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이 CEO가 이끄는 소니가 하나둘씩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히라이 CEO의 주특기인 게임 사업이 상승 분위기를 주도하는 모습이라 부활의 신호탄이 될 지 관심이 모인다.
1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소니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지난 15일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PS4를 첫날 100만대 이상 팔았다고 밝혔다. 이는 역대 기록 중 최고다. 지금의 게임 환경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 모바일로 바뀌는 상황에서도 전통의 콘솔형 게임기 판매가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이라 주목된다.
소니에서 PS 사업을 맡고 있는 앤드류 하우스 최고경영자(CEO)는 "북미에서 판매가 여전히 강하다"라고 말할 정도로 PS4는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회사측은 유럽보다 콘솔형 게임기 수요가 적은 미국에서 판매 호조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고무된 상태다. 소니측은 PS4가 내년 3월말까지 총 500만대 판매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증권사인 로버트W 베어드앤코는 올 4분기 동안 북미 시장에서 PS4가 250만~300만대 팔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소니는 경쟁사인 MS의 엑스박스 신형 '원(One)' 출시일(22일) 보다 앞당겨 제품을 내놨다. 이번 주에 엑스박스 원이 나오면 두 회사간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PS4와 엑스박스 원은 그래픽 성능과 온라인 플레이 기능 등이 한층 강화돼 게이머들에게 관심을 받아왔다. 제품 가격은 미국 출고가 기준으로 PS4가 399달러(한화 42만원)다. 이는 엑스박스 원(499달러)보다 100달러 저렴하다.
소니의 PS4가 흥행 성공 조짐을 보이면서 회사 전체 분위기도 상승세를 탈 지 관심이 모인다. 히라이 사장은 지난해 CEO 자리에 오르면서 하드웨어와 콘텐츠를 결합시키기 위해 공을 들여왔다. 애플의 `아이폰· 아이패드-아이튠즈` 조합처럼 플레이스테이션 등 게임기나 모바일 기기를 콘텐츠에 접목시킨다는 전략이었다. PS4가 연말 크리스마스 쇼핑 시즌을 앞두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면서 실적 개선에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소니는 게임기 외에도 스마트폰이나 고화질 TV 분야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명함을 내밀지 못했던 소니는 최근 LTE 스마트폰을 무기로 반격에 나서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소니는 지난 2분기 세계 LTE 휴대전화 시장에서 점유율 6.2%로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기존 고화질(HD)TV보다 화질이 4배 이상 선명한 4K TV 시장은 이미 소니가 선도하고 있다. 소니는 보급형 4K TV를 삼성· LG전자보다 앞선 지난 4월에 출시했고, 방송과 영화 장비 분야에선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4K 시장점유율에서 소니는 37.8%를 차지하며 1위를 차지했다.
소니는 히라이 CEO가 취임하면서 침체된 분위기가 살아나고 있다. 소니는 내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최대 가전전시회 ‘CES 2014’에서 최고혁신상을 무려 4개나 점찍어놨다. 이는 각각 하나의 최고혁신상을 수상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보다 많은 것이다. 히라이 CEO는 2014 CES에서 기조연설을 맡기로 해 행사 현장 분위기를 주도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