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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도 스마트폰 찬스, 물어물어 길찾다 두손든 사연

  • 2020.10.01(목) 09:00

[디지털, 따뜻하게]극과극 비교 체험기②
지도앱 없이 버스타기 어려워, 결국 택시
디지털 촘촘하게 일상으로, 벗어나면 난감

 

제주 국제공항 [사진=비즈니스워치]

'디지털 정보격차' 문제를 취재하며 [디지털, 따뜻하게] 연재 기사를 쓰고 있는 비즈니스워치 기자들은 과연 디지털을 활용하지 못하면 얼마나 불이익을 받을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두명의 기자가 직접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떠났습니다.

한명(김동훈)은 스마트폰 등의 디지털 기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이른바 '디지털 프리(Digital Free·디지털 활용하지 않기)'로 겁없이 도전했습니다. 다른 한명(이유미)은 평소처럼 스마트폰을 한손에 들고 산뜻한 발걸음으로 제주도를 돌아다녔습니다.

제주 여정의 첫번째 관문 김포공항에서의 항공권 구매부터 렌트카 및 숙박 예약, 음식 주문 등을 이들 기자가 디지털 유무 상태에서 비교체험 해봤습니다. 이 기간 동안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준수했습니다.

◇목적지까지 가기..문제는 모바일이 아냐

모바일 지도 없이 목적지 가기
좌충우돌의 연속…"갈 수가 없다"

제주에서 둘째날입니다. 첫번째 일정은 숙소에서 제주시 애월읍에 위치한 관광지 '9.81파크'까지 버스를 타고 가보는 것이었습니다.

9.81파크는 최근 들어 유명해진 곳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5년 전쯤 구한 제주 여행책에는 9.81파크에 대한 내용이 없었습니다. 그 책도 6쇄나 찍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으나 최신 정보를 담아내진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매년 책을 살 수도 없는 노릇이죠. 인쇄물은 발행 즉시 고물이 되지만 디지털 정보는 매우 자주 업데이트됩니다.

9.81파크는 제주 시내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습니다. 별로 멀지 않은 곳이라 물어물어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호텔 로비에서 현지인에게 버스 타는 법을 물었습니다.

"9.81파크 어딘지 아세요? 버스 타고 가려고 하는데요."

'다다다닥' 검색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현지인에게 길을 물어보면 십중팔구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을 합니다. 그리고 답을 해줍니다. 의도치 않게 디지털의 도움을 받아버렸습니다. 그만큼 디지털이 일상에 깊숙히 스며든 것입니다.

"말씀하신 곳이 애월읍인데 버스 노선은 여러 개 있어요. 그런데 정확한 승차장 정보를 잘 몰라요. 저도 검색해야 찾을 수 있어서..."

한참 지나 답변이 왔습니다. 정오쯤에 출발하는 호텔 셔틀버스가 있다고 합니다. 정오 출발이라니. 미리 정해 놓은 도착 예정시간(오전 11시30분)을 훌쩍 넘어버리는 것이라 셔틀버스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도를 구해볼까 생각했습니다. 가격을 알아보니 너무 비싸네요. 택시를 타고 가는 게 오히려 저렴했습니다. 특정 지역 한곳을 찾아가기 위해 제주 전역이 나오는 지도를 구하는 것은 미련한 짓 같았습니다.

"1층에서 나간 뒤 오른쪽으로 가면 빵집이 보이고 그 건물 길을 건너면 100미터 정도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요. 버스는 251, 252, 253, 254, 282번 다섯대. 국학원에서 내려서 걸어가면 됩니다. 환승은 없고. 한라병원 앞 정류장에서 타시면, 시간은 59분. 내려서 목적지까지 도보로 30분..."

버스와 도보를 이용하면 총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설명을 듣는데만 7분 가량이 흘렀습니다. 스마트폰 지도앱을 활용했다면 검색 결과를 보며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했을텐데요. 현지인이 아무리 구체적으로 설명해줘도 검색 결과의 풍부하고 정확한 내용을 따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텔을 나와 오른쪽, 빵집, 100미터, 병원, 251번...

들었던 내용을 행여 잊을까 계속 중얼거리며 정류장으로 걸어갔습니다. 참고로 뇌는 37세부터 본격 퇴화한다는데, 제가 딱 그 나이 무렵입니다. 

스마트폰 없이 버스를 타면 이렇게 정류장 정보를 일어서서 확인하는 불편을 감수해야한다. [사진=비즈니스워치]

내리는 장소를 까먹었네! 아, 국? 뭐였지. 나중에 버스에 타서 다시 확인해야겠다.

아니나다를까, 불과 몇분 만에 들은 정보 중 하나를 잊어버렸습니다.

버스 정류장은 100미터(m) 거리에 있었고 마침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멀리 있어 다음 버스를 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버스가 곧 출발할 움직임입니다. 잡아 타기 위해 뛰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했다면 버스 도착 예정 시간을 파악해 시간에 맞춰 이동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버스에 올라탄 후 내부에 부착된 노선 정보를 확인했습니다.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했죠. 정류장 정보를 안내하는 디스플레이도 버스 내부에 있었지만 제가 가는 곳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는 확인할 수 없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목적지 부근인 것 같아 기사님께 물어보니 환승을 하라고 합니다. 처음 들었던 정보와 달라 당황했습니다. 알고보니 같은 번호의 버스인데도 노선이 제각각이었습니다. 

환승 정류장에 내렸습니다. 아주 외딴 곳이었습니다. 다행히 30분 뒤에 버스가 도착한다고 합니다. 정류장에 설치된 디스플레이 형태의 정보안내기를 통해 알았습니다. 한참 뒤 도착한 버스에 승차하며 목적지에 가는지 기사님께 물어봤습니다. 안 간다고 합니다. 앞서 승차한 버스처럼 같은 번호인데도 다른 노선을 사용했습니다.

더욱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버스는 30분 뒤에 도착한답니다. 이대론 일행을 만나지도 못할 것 같았습니다. 결국 택시를 타기로 했습니다. '디지털 프리'의 취지에 맞게 카카오택시가 아닌 콜택시를 부르기로 했습니다. 막상 전화번호를 몰라 114로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아뿔싸. 휴대폰에 지역번호 없이 114만 누르면 전화번호 안내가 아니라 통신사 고객센터로 연결됩니다.

허둥대는 제가 안쓰러웠던지 옆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한 청년이 친절하게 제주 지역번호를 알려줬습니다.

첫번째 버스에서 내린 뒤 환승 버스를 타는 정류장에서 노선 정보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비즈니스워치]

콜택시 전화번호를 114에 물어봤습니다. 전화번호를 안내받았습니다. 혹시 전화 연결이 잘 안될 경우를 대비해 볼펜을 꺼내 무릎에 메모를 했습니다. 갤럭시노트로 바로 메모를 하면 되는데, 디지털 프리가 걸림돌이었습니다.

콜택시 업체에 전화를 했지만, 이럴 수가. 연결된 콜택시 업체는 제주시내 담당이라 애월 지역 콜택시는 연결이 안 된다고 하네요. 정확한 정보를 찾으려면 정확한 질문을 해야 한다더니. 게다가 경쟁업체 전화번호를 알려줄 수 없다는 게 제주시내 콜택시 업체의 얘기입니다.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있으니 방금 지역번호를 알려준 청년이 카카오택시 앱을 열어보이며 자신이 택시를 불러주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친절할 수가. 세상은 아직 따뜻하구나. 디지털 프리를 체험하고 있는 중인지라 정말 고맙지만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떠나고 또 나타나는 과정이 한참 반복되는 동안 방법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경기도 어디 아주 외딴 곳에서 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향할 때 혼자 버스를 놓쳤던 기억이 떠오르는 장면입니다.

이때 스마트폰을 이용해 먼저 출발한 일행은 버스에서 내린 곳이 워낙 외진 곳이어서 카카오택시도 잡히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디지털 기기가 있어도 결국 '라스트마일'은 사람이 하는 일인 모양이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어쩔 수 없이 디지털 프리를 또 포기하고 카카오택시를 불렀습니다.

이제는 여행책자를 보면서 정보를 찾는 일은 어색한 때가 됐다. [사진=비즈니스워치]
모바일 지도 이용해서 목적지 가기

스마트폰으로 모바일 지도를 볼 수 있다면 9.81파크까지 가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도 앱으로 검색해보니 숙소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목적지 근처 정류장에 내려 약 10분을 걸어가면 됩니다. 버스를 갈아탈 필요도 없었습니다.

지도 앱에 나온 대로 정류장을 찾아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 중간에도 GPS 덕분에 나의 실시간 위치를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어 어디쯤 가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버스 하차하기 전까지 모든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앱에서 알려준대로 22개의 정류장을 지나 '국학원'에서 하차를 했습니다. 주변에는 사람도, 건물도, 표지판도 없었습니다. 자동차 도로와 그 위를 지나가는 차량들, 버스정류장 표지판, 그리고 넓은 풀밭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도 앱에서 안내해주는 길을 따라 걸어가면 되기 때문에, 또 실시간 내 위치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길을 잃을 염려가 없었습니다.

약 3분 정도 걷자 인도는 사라지고 찻길만 있었습니다. 더 이상 사람이 걸어갈 수 있는 길은 없었죠. 3분 정도 걸어도 역시나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무서워졌습니다. 여기서 제가 사라져도 아무도 모릅니다. 그 흔한 CCTV도 없었습니다.

문제는 스마트폰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디지털프리를 체험하는 다른 일행에게 연락을 해 택시를 타고 가는 길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제주 시내에서 9.81파크 가는 길.

▷편리했던 디지털의 역설, '디지털, 새로운 불평등의 시작'
http://www.bizwatch.co.kr/digitaldiv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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