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가 엑스엘게임즈가 개발하고 카카오게임즈가 배급하는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게임 '아키에이지 워'에 저작권 침해 및 부정경쟁행위소송을 제기했다. 아이템 강화, 클래스 등 게임 시스템과 사용자 인터페이스(UI) 등이 자사 히트작인 모바일 MMORPG '리니지2M'과 유사하다는 이유다.
그래픽 또는 사운드의 도용 문제와 달리 게임의 구조, 규칙, 플레이 방식 등은 저작권을 가진 독창적인 창작물로 인정받기가 어렵다. 법원은 허드슨의 '봄버맨'과 넥슨의 '크레이지아케이드', 아이피플스의 '부루마불'과 넷마블의 '모두의마블' 간 소송에서는 아이디어가 비슷하다고 해서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기존 장르에서도 적용된 규칙이나 요소, 즉 '장르의 유사성'으로 본 것이다.
카카오게임즈도 비슷한 입장이다. 카카오게임즈는 7일 입장문을 내고 "엔씨소프트의 주장은 동종 장르의 게임에 일반적으로 사용되어 온 게임 내 요소 및 배치 방법에 대한 것으로 관련 법률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흐름은 살짝 달라졌다. 법원에서도 점차 게임의 규칙을 기존 게임과 구별되는, 창조적 개성을 가진 하나의 저작물로 보는 판례가 나오고 있다. 엔씨소프트가 이번 소송을 준비하면서 주목한 부분이다.
대표적인 판결은 '팜히어로 사가' 사건이다. 2019년 '팜히어로 사가' 제작사 킹닷컴 리미티드가 '포레스트매니아' 국내 배급사를 대상으로 저작권 침해 금지 소송에서 승소한 사례다. 두 게임은 똑같은 그림을 3개 이상 연결하는 '3매치 게임'이다. 팜히어로사가는 농작물, 포레스트매니아는 동물을 내세워 캐릭터는 달랐으나 시스템이 유사해 표절 논란을 겪었다.
대법원은 판결문(2017다212095)에서 "주요한 구성요소들의 선택과 배열 및 유기적인 조합에 따른 창작방식을 그대로 포함하고 있다"면서 "피고 게임물은 원고 게임물에서 캐릭터만 달라진 느낌을 주고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팜히어로사가의 히어로 모드, 전투 레벨, 알 모으기 규칙, 특수 칸 규칙 등 구성요소의 전개 및 표현방식이 비슷해 두 게임이 실질적으로 유사하다고 봤다.
지난해는 웹젠이 유주게임즈코리아의 MMORPG '블랙엔젤'이 자사 히트작 '뮤'를 침해했다며 저작권 침해 소송을 걸어 1심에서 승소하기도 했다. 당시 유주게임즈코리아는 '뮤'에서 나온 스킬 이펙트, 탈 것, 캐릭터 등은 흔한 소재이므로 보호 대상이 되는 게임물이 아니며, MMORPG에서 보편화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규칙을 차용했다고 주장했다.
서울지방법원은 판결문(2019가합585730)에서는 뮤의 스킬 이펙트 및 탈 것 등 주요 구성요소의 선택과 배열 및 조합을 보호해야 할 저작물로 판단했다. 블랙엔젤의 시나리오가 뮤와 다르고 주인공캐릭터가 일부 추가됐지만 독자적인 차이점을 느끼기 어렵다고도 판단했다.
얄궂게도 웹젠은 같은 해 자사 MMORPG 'R2M'이 엔씨의 '리니지M'을 모방했다며 저작권 침해 소송을 당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를 모방했는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리니지의 콘텐츠와 시스템을 고스란히 따라했다는 주장이다. 해당 소송은 아직 1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일부 판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게임 시스템을 표절했다는 주장을 관철하기는 쉽지 않다. 몇몇 콘텐츠가 비슷한 것만으로는 유사성을 입증하기 어렵고 전체적인 구조가 비슷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경환 법무법인 민후 변호사는 "킹닷컴 소송은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면서 "한두 개의 콘텐츠가 비슷하거나 MMORPG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으로는 입증하기 어렵고 다수의 구성 요소에서 유사성이 발견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준모 법무법인 다빈치 변호사는 "법원에서는 저작권을 광범위하게 인정해주면 특정 종류의 게임에 대해 한 게임사에 독점권을 주는 꼴이 되므로, 복사하듯이 베낀 게 아니라면 인정받기 쉽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전례가 있다고 해도 저작권 소송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