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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관행된 백신 입찰 '담합'...제살 깎아먹기

  • 2023.07.26(수) 06:00

제약업계, 공정경쟁 등 의약품 거래질서 확립 필요
정부도 공정경쟁 유도 및 입찰 과정 감시해야

제약바이오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도마 위에 오르는 두 가지가 있다. 불법 리베이트와 담합이다. 수십년째 지속되고 있는 제약바이오 업계의 불법 행위들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의약품 입찰 담합 행위가 적발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일 32개 제약사 및 도매상이 국가백신예방접종(NIP) 입찰에서 사전에 낙찰예정자를 정하는 담합행위를 적발하고 총 40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들 기업은 지난 2013년 2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독감, 간염, 결핵, 자궁경부암 백신 등 NIP 입찰 담합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입찰 담합을 통해 낙찰된 백신 가액은 총 7000억원에 달한다. 

앞서 지난 2019년에는 한 의약품유통회사(도매상)가 다른 유통회사와 군부대 및 보건소 백신 입찰에서 담합 행위를 했다가 해당 기업 대표가 구속기소됐다. 지난 2011년에도 녹십자, 동아제약, 베르나바이오텍코리아, 보령바이오파마, CJ, CJ제일제당, SK케미칼, LG생명과학, 한국백신 등 총 9곳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인플루엔자 백신 NIP 입찰 담합을 했다가 적발돼 시정명령을 받은 바 있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의약품 관련 담합은 백신 입찰뿐만 아니라 경쟁 약물의 출시를 막기 위해서도 이뤄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아스트라제네카와 알보젠이 경쟁 약물인 제네릭(복제의약품)을 출시하지 않기로 담합했다가 적발돼 시정명령과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전립선암과 유방암 치료에 사용하는 '졸라덱스'라는 오리지널 의약품을 국내외 시장에서 판매 중이었는데, 졸라덱스의 제네릭을 개발 중이던 알보젠이 제네릭을 출시하지 않도록 사전에 담합한 사건이다.

제네릭이 출시되면 오리지널 약가가 30% 인하되기 때문에 이를 방어하기 위해 아스트라제네카는 알보젠이 제네릭을 출시하지 않는 대신 자사의 졸라덱스 외 2개 의약품에 대한 독점유통권을 부여하기로 합의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담합으로 높은 약가를 유지해 수익을 보전하게 됐지만 그 부담은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전가된 셈이다.

특히 NIP는 매년 정부가 입찰을 통해 백신을 구입해 조달하는데 담합 행위가 수십년간 반복되면서 고착화됐다. NIP는 과거 '제3자 단가계약방식(민간조달방식)'에서 '정부총량구매방식'으로 조달방식을 변경했다. 

국가예방접종사업(NIP)의 '정부총량구매방식' 업무 시스템 체계도. /이미지=질병관리청

제3자 단가계약방식은 지역 보건소에서 사용하는 백신 5~10%만 정부가 조달하고 나머지 90~95% 의료기관용 백신은 시장 자율에 맡겼다. 당시에는 의약품유통회사들끼리 의료기관별로 나눠서 낙찰되도록 백신 입찰가를 담합했다. A병원은 B유통사, C병원은 D유통사가 낙찰되도록 B와 D 유통사가 서로 들러리가 돼 입찰가를 밀어주기는 방식이다.

하지만 제3자 단가계약방식에서 백신 수급 불안정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서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달청을 통해 정부가 100% 백신 물량을 입찰로 구매하고 보건소와 의료기관에 공급하는 '정부총량구매방식'으로 변경했다. '정부총량구매방식'은 자궁경부암 백신(서바릭스, 가다실)의 경우 2016년부터, 폐렴구균 백신(신플로릭스, 프리베나)은 2019년부터 도입됐다.

하지만 정부총량구매방식도 백신총판(제약사)이 자신들보다 높은 가격으로 투찰하도록 유통업체들을 들러리로 세우면서 백신 입찰 담합은 계속되고 있다.

백신 입찰 담합을 뿌리뽑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약바이오 기업들과 유통업체들이 자체적으로 공정경쟁을 통해 의약품 거래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NIP는 국민들의 세금으로 마련된 국비로 국민들의 건강을 지키는 사업인 만큼, 불공정 행위는 결국 국민들에게 불법 기업으로 낙인찍히는 등 제살 깎아먹는 행위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와 함께 NIP는 국가가 입찰을 통해 백신을 구입하는 만큼 담합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철저한 관리감독과 제도적인 장치 마련도 필요하다. 현재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제27조에 따라 담합행위를 한 부정당업자의 입찰 참가자격을 6개월간 제한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과거 조달청이 백신 입찰 담합을 했던 제약사의 6개월간 입찰 참가자격 제한 처분을 내렸지만, 법원은 조달청의 처분을 재량 일탈 및 남용으로 위법하다고 판시한 바 있다. 또 정부가 100% 입찰을 통해 백신을 구입하는 현 조달방식에서는 담합 기업에 대해 입찰 참가자격을 제한할 경우 백신수급이 불안정해지거나 특정 기업이 단독 투찰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결국 현 제도상으로는 담합행위 적발시 과징금 부과 외에 실질적으로 기업들을 처벌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에서 백신 제조생산 및 판매하는 제약사들은 몇 곳 안돼 담합 행위를 하는 기업들이 정해져 있다. 정부도 백신 기업들의 공정경쟁을 유도하고 입찰 과정을 철처히 감시해 국민의 혈세가 새나가지 않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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