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 인공지능(AI) 붐을 일으킨 챗GPT의 개발사 오픈AI에서 벌어진 혼란이 수습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오픈AI의 창업자이자 대표인 샘 올트먼이 해고됐다가 다시 복귀하는 '반전의 반전' 드라마가 펼쳐졌는데요. AI 업계의 큰 축인 이 회사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올트먼 대표 해임부터 복귀까지
지난 18일(한국 기준) 오픈AI 이사회는 올트먼 대표가 회사를 떠난다고 오픈AI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 공지문에는 올트먼 대표의 해임 사유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빠졌는데요. 단지 "올트먼 대표가 이사회와의 소통이 일관되지 않고 정직하지 않았다"고 했을 뿐입니다.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챗GPT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 한 순간 내쳐진 것이니까요.
이틀 뒤인 20일 마이크로소프트(MS)가 깜짝 발표를 했습니다. MS에서 새 AI 연구팀을 이끌 책임자로 올트먼을 채용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MS는 올해 1월 오픈AI에 130억달러(약 16조8662억원)를 투자한 곳입니다. 그러는 동안 오픈AI 이사회는 인터넷 방송 스트리밍 회사인 트위치 대표를 맡았던 에밋 시어를 새 대표로 영입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21일 700명 이상의 오픈AI 직원들은 이사회가 물러나지 않으면 회사를 그만 두고 올트먼과 함께 MS에서 일하겠다는 서한에 서명했습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오픈AI의 임직원 수는 770명인데 임직원의 90% 이상이 이 서한에 동의한 셈입니다.
회사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맞닥뜨리자 에밋 시어는 22일 MS와 논의를 거쳐 올트먼을 다시 오픈AI의 대표로 돌아오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오픈AI에 새 이사회가 꾸려지면서 사건은 닷새만에 일단락됐습니다.
오픈AI는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일단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알기 위해선 오픈AI의 특이한 지배구조를 알아야 합니다.
오픈AI는 비영리법인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엔 2019년에 세워진 영리법인 '오픈AI 글로벌'이 있습니다. 이 영리법인을 통해 자금을 받아 비영리행위를 합니다. 마치 '소리 없는 아우성',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처럼 모순되게 들립니다.
오픈AI의 '비영리행위'는 AI의 상위 단계인 일반인공지능(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AGI는 사람처럼 범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AI인데요. 스스로 상황을 판단해 결정을 내린다는 뜻이지요. 그림을 그리는 것만 가능한 AI '달리(Dall-E)', 자연어를 처리할 수 있는 챗GPT처럼 특정한 역할만 하는 지금의 AI를 뛰어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발전된 AI인 AGI를 개발하기 위해선 더 많은 돈과 인재가 필요한 법입니다. 이를 위해 영리법인을 둔 것인데 이사회와 올트먼 사이에는 시각차가 컸던 모양입니다. 올트먼 대표는 능력이 뛰어난 AGI 개발을 위해 더 많은 자원을 끌어오고 싶어 했고 이사회는 이게 탐탁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뛰어난 AGI보다 착한 AGI를 꿈꿨다고 할까요. 'AI는 인간을 해치지 않는다'는 윤리 원칙에 충실하지 못한 제품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죠.
AGI는 영화 내에서도 이미 구현된 개념입니다.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스카이넷'이 그 예입니다. 스카이넷은 핵미사일을 통해 세상을 멸망에 이르도록 했죠. 스카이넷은 AGI의 '절망편'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 사건 뒤엔 '철학적 논쟁'이 있다
전문가들도 이번 일이 AI 기술 발전과 윤리가 충돌해 발생한 일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올트먼 대표는 오픈AI의 대표를 맡기 전 레딧, 에어비앤비 등 지금은 글로벌 기업이 된 스타트업을 투자해 큰 돈을 벌었던 투자자입니다. 누구보다 경쟁사보다 빨리 좋은 제품을 선보여 AI 시장에서 지배적 위치를 선점해야 한다는 중요성을 알았을 것입니다.
반면 이사회는 AI 제품 개발과 발표가 너무 빨라 이를 견제하기 위해 올트먼 대표를 해임했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올트먼 대표와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는 것이지요.
지난해 11월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챗GPT(GPT-3 적용) 발표 이후 오픈AI는 1년도 지나지 않아 새 AI 모델인 GPT-4를 출시했습니다. 오픈AI는 얼마 지나지 않아 GPT-4를 잇는 차세대 모델인 GPT-5 개발 계획도 발표했습니다.
최병호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소 교수는 "3~5년 사이에 일어날 일들이 지금 너무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며 "이 사건으로 인해 구글, 메타와 같은 AI 개발 기업들이 안전 때문에 포기했던 부분들을 내려놓고 속도 경쟁에만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애초에 오픈AI가 정말로 비영리활동을 하고 싶었다면 투자자 경력을 가진 사람이 아닌 인류 공헌에 관한 철학을 가진 사람이 대표로 왔어야 했다"며 "이제 오픈AI의 이사회가 바뀌면서 올트먼 대표를 멈추게 할 브레이크마저 사라졌다"고 비판했습니다.
전창배 국제인공지능윤리협회 이사장은 "이번 오픈AI 사건은 정부와 기업, 학계 등 우리 사회 전반이 집단 지성을 모아 AI 기술 개발과 윤리 사이의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한 중요한 시사점"이라며 "AI 윤리 가이드라인 등의 장치를 통해 AI 기술과 윤리가 어떻게 조화롭게 발전할 수 있을지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