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14일 연인들이 달콤한 사탕을 주고받는 날에 장현국 당시 위메이드 대표는 홀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사탕이 아니라 사표를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미팅, 언론 인터뷰도 당일 취소해야 할 정도로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사임의 배경으로 장 대표의 사법 리스크, 박관호 의장의 경영일선 복귀에 대한 의지론 등 해석이 분분했다. 2014년부터 10년이나 대표이사직을 맡으며 블록체인·게임 사업을 키워 회사의 명성을 크게 높인 인물의 퇴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장 대표는 '위믹스의 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게임과 블록체인 시장에서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다.
10개월이 흘러 서울 강남구 액션스퀘어 사무실에서 장 대표를 만났다. 그는 이제 액션스퀘어 대표가 됐다. 장 대표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액션스퀘어 주식을 사들여 현재 지분율 10.11%로 2대주주다. 앞으로 장 대표의 지분율은 더 높아져 최대주주 지위에 오를 수 있다. 이 회사 지분 9.42%를 매수할 수 있는 계약을 액션스퀘어의 현 최대주주 '링크드'와 체결하면서다.
"지난 10개월은 고통스러웠다"
장 대표는 고통스러웠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모든 것을 걸고 했던 일이고, 회사였는데 하루아침에 비자발적으로 그만하게 됐으니 매우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무책임하다, 먹튀(먹고 튀었다)라는 비난과 비판을 많이 듣는다"며 "이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있었고, 지금도 미안하다. 그동안 제시한 많은 약속과 비전을 결과적으로 지키지 못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3월14일) 이후부터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어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그가 선택한 길은 위메이드에서 이루지 못한 일의 연속이었다. 장 대표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국 잘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며 "돌아보면 블록체인과 게임의 결합은 어떤 사람보다 잘했던 것 같고, 그것이 된다는 믿음도 다른 사람보다 컸다"고 했다. 그로선 스타트업 창업도 선택가능한 옵션으로 뒀으나,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서 꼭 필요한 '속도전'을 고려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길이었다. 장 대표는 "상장사 5곳 정도와 인수하는 방안 등을 놓고 검토했는데, 민용재 링크드 대표가 저의 비전과 전략에 대해 가장 공감하고 동의해줬다"고 말했다.
이런 번민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월급쟁이 사장'이 아니라 '오너'에 가까운 위치다. 링크드와 계약에 따르면 약 1년 뒤 장 대표는 액션스퀘어 최대주주에 오를 전망이다. 장 대표는 "위메이드에서 열심히 일하고 성과도 났지만 비자발적 퇴사를 하게 되면서 너무 허무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만들지 말자고 다짐했다"며 말을 줄였다. 액션스퀘어 투자에 장 대표 개인자금 50억원 가량을 넣었고, 나머지 200억원 규모의 우호 지분도 확보했다. 중견 게임사 웹젠도 장 대표의 시도에 동참했다.
장 대표는 위메이드에서 벌였던 블록체인·게임 관련 사업이 성공적이었다고 자부했다. 그는 "미르4 글로벌, 나이트크로우와 같은 블록체인 게임이 글로벌 시장에서 두번이나 성공했다"며 "블록체인 게임의 성공을 상상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두번이나 보여줬다. 그런데 이것이 성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불신이 저를 창업의 길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2월 코인 상장·3월 게임 출시"
장 대표는 액션스퀘어에 대해서는 "굉장히 어려운 게임사이자 변화가 필요한 회사"라며 "기존 게임사업을 지속가능하게 흑자를 내는 게 숙제이지만, 그것만 한다고 회사 규모가 크게 성장할 수는 없으니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야 한다"고 했다. 액션스퀘어는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손실이 67억원이었다.
이에 따라 위메이드에서 가상자산 위믹스 생태계를 구축하고 블록체인 기반 게임을 선보여 글로벌 흥행까지 했던 사업 로드맵이 액션스퀘어에서 거의 그대로 재현될 전망이다. 위메이드 역시 블록체인 게임 사업을 벌이면서,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있었던 회사의 덩치를 급격히 키웠다.
장 대표는 "2월에 신규 코인을 상장할 계획"이라며 "가능한 많은 글로벌 거래소에 상장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위믹스는 상장폐지를 겪기도 했는데, 이같은 일을 다시 밟지않겠다는 각오도 있다. 장 대표는 "위믹스는 결국 대부분 거래소에서 재상장됐다"며 "위메이드에서 2018년부터 블록체인 사업을 하면서 성공한 것도 있고, 실패한 것도 있는데 이는 총체적 경험으로 남았다. 이러한 실수, 고난, 고초는 피와 살이 됐으니 반복하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블록체인 게임을 비롯한 사업 파트너와 협업도 속도감 있게 전개할 방침이다. 장 대표는 "여러 회사와의 MOU(업무협약) 체결 소식이 조만간 계속해서 나올 것"이라며 "국내외 다양한 비상장, 상장사 곳곳과 논의를 나누고 있다"고 전했다. 블록체인 게임은 오는 3월 출시가 목표다. 그는 "MMORPG, 캐주얼 등 장르도 특정한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검토중"이라며 "첫번째 게임을 무엇으로 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액션스퀘어의 게임 사업은 어떤 방향성으로 전개될까. 장 대표는 "블록체인 게임 사업을 한다고 해서, 액션스퀘어가 게임 개발을 안 한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렇다고 탑다운(위에서 아래로) 방식으로 게임 사업을 확장하라고 지시하는 방식은 구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개발자들이 만들고 싶어하는 것을 하도록 하고, 그들이 거기에 인생을 걸 때 재미있는 게임이 나올 수 있는 것"이라며 "제가 하고 싶다고, 지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에 회사 안팎의 게임 개발 제안을 열어두고 볼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시대, 옥석 가리기 진행될 것"
풀어야할 숙제도 있다. 장 대표는 위믹스와 관련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와 관련한 구체적 답변은 곤란하다고 했다. 그는 "검찰의 불구속 기소로 더이상 조사를 받는 상황은 아니지만, 이에 대응하는 것은 사법적 절차 안에서 하는 게 맞다"며 "관련 절차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으려 한다고 했다.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일은 하지 않았기에 '쫄지 않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장 대표는 "저는 성격상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며 "유명한 코인 프로젝트들도 했던 'MM(시세조종)'을 위메이드는 하지 않았는데, 제가 그런 것은 위험하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무도 모르게 몰래 무언가 해도 핸드폰만 조사하면 다 나오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며 "그게 제 스타일"이라고 했다.
이같은 사업 리스크를 제거하면, 시장 환경은 점차 개선될 것이란 기대가 있다. 장 대표는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미국에 친크립토(가상자산) 성향의 트럼프 대통령이 들어서는데, 그는 실행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가상자산 시장에 훈풍이 부는 것은 당연하고, 이는 국내 시장에도 영향을 미쳐 과거와 완전이 다른 양상이 전개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렇게 되면 가상자산이 제도권으로 들어오면서 '옥석 가리기'가 급격히 진행될 것으로 봤다. 아무런 실체도 없이 가격만 급등락하는 스캠성 코인은 확 사라질 것이란 얘기다.
장 대표는 "블록체인 게임 플랫폼으로 시장에서 1위를 하고, 업계 표준을 만들고 싶다"며 "올해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면 좋겠지만, 안 되어도 될 때까지 할 것"이라고 했다. 더 나아가 블록체인과 결합하는 사업의 실체를 게임 바깥으로도 확장할 구상이다.
그는 "블록체인과 결합하는 모델은 현재는 게임이 가장 적합하지만 티켓이나 팬덤, 커뮤니티 등의 분야로 확장하는 것도 계획에 있다"고 했다.
장 대표는 "전기차, 로켓 사업을 하는 일론 머스크는 과거에 말도 안 되는 사업을 벌인다고 사기꾼 소리를 들었다"며 "저는 우주의 비밀 같은 사업을 벌인 것도 아니고 미르4와 나이트 크로우 등 성공 사례도 2번이나 보여줬는데 믿음을 얻지 못했다. 물론 모두가 이런 사업을 하면 제가 성공하기 힘들다. 오히려 기회라 생각하고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