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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위기시대

  • 2013.12.24(화) 14:54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서로 속이고 속는 혼탁한 모습을 보이던 전국시대 BC359년 진나라 진효공(진시황의 5대조)의 신임을 받은 상앙(商鞅)은 야심찬 개혁안을 마련하였다. 그는 백성들이 신뢰하지 않고, 따르지 않으면 어떠한 개혁도 물거품이 되기 쉽다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상앙은 개혁을 시행하기에 앞서, 남문 앞 저자거리에 3장(丈) 크기의 나무를 세워 놓고 그 것을 북문으로 옮기는 자에게 거금 10금을 주겠다고 방을 붙였다. 서로 믿지 못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코웃음만 치자, 상금을 50금으로 크게 올렸다.
 
밑져도 본전이고 크게 혼날 일이야 있겠냐는 생각을 한 어떤 백성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자마자 그 큰돈을 즉시 상으로 주었다. 나라에서 한 약속은 무엇이든 반드시 지킨다는 모습을 실천으로 보여 주었다. 

그 다음 새 법령을 공표하고 왕족이건 천민이건 예외 없이 지키게 하였다. 백성들이 믿고 따르자 나라는 부강해지고 500년 이상 이어져 온 춘추전국시대를 평정하고, 통일천하를 이룩하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사마천은 사기 상군열전(卷68 商君列傳)에서 조직이나 사회의 발전을 위해 사람들 사이에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 가를 강조하였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특히 윗사람이 아래 사람들한테 한 약속은 지켜야 사람들이 믿고 따른다는 이야기다.

어떤 사회의 경제적 역량이 그대로 경제적 성과로 연결되려면 그 공동체의 신뢰기반이 구축되어야 한다. 신뢰는 사람들로 하여금 합리적 사고와 정직한 행동을 예상하게 하는 도덕적 기반을 뜻한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 존중하고 자발적으로 협력하게 하는 규범의 바탕이기도 하다.
 
신뢰는 시장경제 질서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필수불가결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다. 경제개발 초기단계에서는 구조가 단순하므로 설령 신뢰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그저 일만 하면 극복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성숙단계에 접어들어 경제구조가 복잡해져 신뢰관계가 망가지면 경제순환에 장애를 일으킨다.

신뢰관계가 무너지면 경제활동의 편익(benefit)은 줄어들고 비용(cost)은 늘어나 경쟁력이 저하된다. 서로 믿지 못하면 의사결정 지연과 시행착오에 따른 비용을 지출되는데다 신용조사비용, 보험료, 리스크 프리미엄 등 부대비용을 부담하여야 한다. 금융시장에 신용경색(credit crunch) 상태가 벌어지면 초우량기업을 제외하고는 아무리 금리가 높아도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는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 이에 더하여 신뢰가 부족한 사회에서는 사고와 행동의 반경이 혈연, 지연, 학연 등 자신의 과거 인연에 얽매이게 되어 인재 발굴이 어려워진다. 오염된 사람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청렴하고 유능한 인재들이 중요한 자리에 앉지 못하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 과거 어느 정부에서 훈장을 탔던 일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하던 인사를 보라.

서양에서는 결제능력에 대한 신용(credit)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동양에서는 인간적 신뢰(trust)를 중시하여 왔다. 신용불량은 형편이 좋아지면 곧바로 회복되지만, 사람과 사람사이에 신뢰관계가 망가지면 원상복원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조직이든 사회든 외부요인에 의한 간난신고는 힘을 합쳐 극복할 수 있지만 공동체 내부의 신뢰관계가 무너지면 좀처럼 헤어나기 어렵다는 것이 역사의 경험이다.
 
고대 로마도, 부르봉 왕조도 그리고 근세조선도 그 쇄락의 원인은 사람들 사이에 신뢰가 무너진 데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지금 신뢰의 적자 시대를 살고 있다.

변화의 속도가 빠른 사회에서 성장과 발전을 위하여 경제사회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일이 중요한데, 그 실천방안의 처음과 끝은 바로 신뢰를 확보하는 일이다. 중장기 경제 성장을 이룩하는 일은 사람들 사이에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래서 후꾸야마(F. Fukuyama)는 “국가경영에서 무역적자, 재정적자보다 신뢰의 적자(deficit of trust)가 더 위태롭다”라고 경고하였다.

우리 지금 신용도 신뢰도 상실되어가는 신뢰의 적자 시대에 살고 있는 느낌이다. 신용불량자 양산을 예고하고 있는 가계부채의 해결 방안은 무엇인가? 그리고 대립과 갈등을 공연히 부추겨 적의 적을 만들려는 거짓 보수와 사이비 진보의 몰골사나운 개싸움은 언제나 줄어들까?
 

▲ 상앙(商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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