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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려고 먹는가? 더 먹으려고 싸우는가?

  • 2015.05.04(월) 10:47

모든 동물은 개체보존 본능에 따라 먹잇감을 찾는데 온 힘을 기울인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에게도 먹는 것은 생존의 필수조건이다. 아무리 고귀한 신념과 이상이 있더라도, 먹지 않고는 살 수가 없어 뜻을 펼칠 도리가 없다.

인간사회에서 식사 예절을 강조해온 까닭은 먹을 때의 마음가짐이 인격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그래서 속담에도 "먹을 때에는 개도 때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특히 성장기 청소년들이 구김살 없이 밥 먹게 하는 일은 나라의 미래를 위하여 아주 중요하다.

이 세상 어떤 동물도 먹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들짐승이든 날짐승이든 모든 동물은 먹이를 구하려 움직인다. `동물의 왕국` 같은 다큐멘터리를 보면 야생 포식자(predator)들은 대부분 먹지 못하고 생명을 잃는다. 사자도 늑대도 북극곰도 먹잇감을 찾지 못하거나, 사냥 능력이 떨어져 굶어 죽는다. 이들에게 먹는 것은 알파와 오메가다.

대부분 동물은 배가 부르기만 하면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지만,  인간은 아무리 배가 불러도 남보다 더 많이 쌓아 놓으려는 욕심을 부리다 비극을 잉태하게 된다. 부가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지구촌에서 배고픈 사람들이 그리 많은 까닭이다.

인간은 혼자 욕심을 채우기도 하지만 남들과 나누기도 한다. 다른 동물들은 제 배가 부르면 남의 배가 고프건 말건 개의치 않지만, 인간은 이웃과 공동체를 배려하기도 하고 반대로 의지하기도 하며 더불어 산다. 인류가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꾸준히 발전할 수 있었던 동력이다.

어른이건 아이들이건 먹는 즐거움은 다른 무엇에 비하여 작지 않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깨끗하고, 값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마시며 환담을 나누는 일은 삶의 보람이다. 이웃이나 친척을 만나서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얼굴만 쳐다보다가 그냥 헤어지면 얼마나 허전하고 섭섭한 일인가?

우리나라가 3만 불에 육박하는 국민소득을 자랑하면서 무상급식 문제로 곳곳에서 백가쟁명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잠시 생각해보자. 하루 급식비가 4.000원이라면, 월 8만원으로 방학을 제외한 10개월 동안 연 80만 원가량이다. 1인당 국민소득의 약 2.4%, 급식대상 청소년이 전체 인구의 1/6이라고 가정하면 국민소득의 0.4% 정도다.

이 0.4%는 나라의 기둥이 될 청소년들의 우정을 기르고 인격을 도야시키는데 쓰는 국가백년대계를 위한 투자다. 급우들과 왁자지껄 떠들기도 하며 밥 먹는 시간은 꿈이 커가고 쌓여가는 순간들이다. 평생 동안 만날 소중한 친구들과 밥을 먹으며 이것저것 떠드는 것이 인성을 기르는 길이다. 우정과 배려를 기르는 일이 참된 공부다.

우리나라에서 그 정도의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은 시스템이 무엇인가 잘못 작동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세금을 내야 할 만큼 내지 않거나, 국가재정이 낭비되고 있다는 하나의 반증이다. 학교급식 논쟁에 앞서 세금이 공정하게 걷히는지 그리고 재정이 새는 곳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오히려 급식의 질을 높이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하지 않을까? 모든 아이들이 반드시 먹어야 할 밥을 두고 어른들끼리 사회적, 이념적 잣대까지 들이대며 싸우는 모습은 그들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근시안적이고 아이들에 대한 무책임한 자세가 아닌지 뒤돌아봐야 한다.

오늘날 우리 청소년들은, 교육망국 즉 거짓된 교육평준화 기치 아래, 학업성취도 보다는 서열을 조장하는 교육제도로 말미암아 경쟁 심리에 멍들고 있다. 나라의 기둥이 될 청소년들에게 적어도 밥 먹을 때만이라도 스스럼없게 하고, 신나게 뛰놀게 해야 한다. 청소년들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자라나야 나라의 미래가 밝아진다.

쓸데없는 먼지를 일으키며 좌충우돌하는 그 어른들은 싸우려고 먹는 것일까? 아니면 더 먹으려고 싸우는 것일까? 하여간 어린이들만은 쭈뼛쭈뼛하지 않고 신나게 밥 먹으러 학교에 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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