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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뱅킹 시대의 '우날로그식' 인사

  • 2017.09.10(일) 09:12


시가총액으로는 556조원과 68조원인데, 직원수로는 약 2만명과 6만명.

페이스북과 한국의 메이저 은행들을 비교해본 수치다. 가장 잘나가는 ICT기업 페이스북이 2004년 설립이래 13년만에 이뤄낸 가치다. 뿌리가 100년 이상된, 한국에서 잘 나가는 은행(지주) 네 곳, 즉 신한지주 KB금융 하나금융지주 우리은행을 합해도 시가총액은 페이스북의 8분의 1정도다. 인력은 한국 은행들이 3배 정도 많다.

인력은 상반기말 기준이고 시가총액은 지난주 초 수준이다. 수치는 시시각각 변하기 마련인데, 페이스북을 은행에 가져다 붙인 것은 지금 금융이 '디지털'을 향해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과 정도의 문제일 뿐 금융과 디지털은 갈수록 가까워지고 언젠가는 뗄 수 없는 한덩어리 처럼 될 것이다.

국내에서도 이런 흐름의 기미가 보이고 있다. 케이뱅크가 국내 1호 인터넷전문은행으로 지난 4월 문을 열었고 7월에는 카카오뱅크가 가세했다. 편리한 접근, 톡톡튀는 아이디어 상품으로 시작하자마자 돌풍을 일으켰다. 기존 은행들은 비상이 걸렸고 서둘러 모바일 앱을 개선하고 대출금리를 낮추고 있다.

지난주에는 SK텔레콤과 하나금융그룹의 핀테크 합작법인 '핀크'(Finnq)가 인공지능 챗봇을 내세워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챗봇은 사용자의 재무 상태를 파악해 적절히 조언해주는 생활금융 플랫폼을 지향한다. 국내 1위 이동통신사업자와 자산 규모 1위 은행이 결합해 만든 새 서비스가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관심이다.

디지털 환경의 변화와 함께 소비자들 성향은 나날이 달라지고 금융 현실은 무섭게 변하고 있는데, 이를 내다보고 컨트롤 해야 할 핵심 수뇌부의 관심은 정작 딴 곳에 있다. 지금 금융권 초미의 관심사는 은행장(지주 회장)들의 '자리 보존' 여부다. 이룩한 실적과 관계없이, 남은 임기와 관계없이, 주주가 누구냐와 관계없이 '새 기준', '새 인맥'과 맞는지를 따져보고 있다.

한 지방은행 지주회사 회장을 뽑는 일정이 '낙하산' 논란에 휩싸이며 한동안 삐걱거렸다. 창사이래 최고의 실적을 낸 금융지주 회장도 연임을 앞두고 뭔가 쫒기는 분위기다. 새 금감원장과 구원(仇怨)이 있다는 금융지주 수장은 몸을 잔뜩 사리고 있다. 정부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은행에선 임기와 관련없이 불안하다.

한국 금융의 좌표가 어디쯤인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잖아도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 대국에 속하지만 금융시장 경쟁력 면에선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결과가 IMD나 WEF 등 국제기구 조사를 통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한국의 금융시장 성숙도가 우간다 보다 못하다는 조롱까지 받고 있다. '우날로그'(우간다+아날로그)식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디지털 금융을 선도할 수 없다.

새정부 들어 '금융홀대론'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금융홀대론을 부정하고 나름대로 금융발전을 위한다고 해명하기도 했지만 금융의 시대적 흐름을 이해하고 규제를 정비하고 길을 터주는 일은, 그의 우선 순위상 뒤편에 밀려있다. 현 시점에서 금융홀대론을 해소하는 방법은 금융권의 인사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는 것이다. 여기에 디지털 금융에 대한 식견이 포함돼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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