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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인터뷰]지하경제 움켜쥔 백운찬 관세청장

  • 2013.06.25(화) 08:57

"비정상·거짓말 바로잡는 일, 기업부담 전혀 없어"
"외환조사 기법 관세청 못 따라와…역외탈세 두고 봐라"
"해외 관세관 확대, 中企 통관·관세조사 완화 추진"

#0. 시작은 부드럽게

 

지난 20일 오후 3시 30분, 서울 논현동 서울본부세관 7층에 위치한 관세청장 집무실. 다섯 명의 남자가 앉아있다. 인터뷰 주인공인 백운찬 관세청장과 조용만 비즈니스워치 편집국장이 이야기를 나눈다. 취재기자와 사진기자는 각각 노트북과 카메라를 매만지고, 윤이근 관세청 대변인은 뒷자리에 앉아 인터뷰 내용을 듣는다.

 

인터뷰 시작 전 가벼운 이야기가 오간다. 그는 평소 직원들을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초면이든 구면이든 서슴없이 인사를 나눈다. 주변 사람들을 살갑게 챙기는 말 한마디가 인상적이다. 취재기자의 근황과 부인의 안부를 두루 묻더니, 임신 소식을 전하자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부인이 임신 3개월이면 한창 입덧이 심할 시기일텐데, 고생이 많겠습니다. 무조건 잘 챙겨주세요. 남편의 역할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진기자의 카메라 기종에도 관심을 보인다. 한동안 취미로 사진을 찍었는데, 최근에는 카메라 만질 시간이 거의 없단다. 훗날 은퇴 후에는 카메라를 메고 '출사(출장사진)'를 찍으러 다니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사진기자에게도 차 한잔의 여유를 건넨다.

 

제1의 취미인 국선도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상당한 내공을 자랑하는 그는 건강 관리의 비결이 국선도에 있다고 소개한다. 지난 4월 국선도협회에서 받은 감사패도 슬며시 보여준다.  

 

"심신을 단련하기 위해 국선도 만큼 좋은 운동이 없습니다. 서서 하는 운동은 골프, 앉아서 하는 게임은 마작이 제일 재미있다고 하는데, 국선도는 다 갖춘 종목입니다. 골프보다 훨씬 재미있습니다. 꼭 한번 배워보세요."

 


[백운찬 관세청장이 역외탈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1. 저평가 관세청 극복

 

지난 3월18일 취임한 백운찬 관세청장은 25일로 100일을 맞았다. 날짜에 크게 의미를 두고 싶어하진 않지만, 그간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들을 수 있었다. 특히 그는 관세청 직원들의 고생을 적극적으로 알리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직원들의 능력에도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처음에는 청장도 바뀌고 지하경제 양성화로 인해 일이 많아졌다고 불만을 토로하던 직원들도 점차 신뢰를 쌓아가며 조직 분위기는 활기를 찾고 있다.

 

-관세청이 하는 일이 꽤 많은데, 덜 알려진 느낌입니다.  

 

한해 세금의 1/3을 관세청이 걷습니다. 올해 총국세 징수목표 210조원 중 66조5000억원(31.6%)을 관세청이 담당하고, 마약사범도 90% 이상은 관세청이 잡아냅니다. 고생에 비해 알려진 게 많지 않은데, 직원 사기를 위해 적극적으로 알릴 계획입니다. 얼마전 검찰이 마약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관세청이 같이 했다고 냈어요. 직원들도 좋다고 합니다.

 

-조세피난처를 통한 역외탈세 문제도 관세청이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던데.

 

조세피난처에 해외 계좌를 개설한 것만으로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요. 세금 징수와 연관시키긴 상당히 어렵습니다. 신고를 하지 않은 것은 불법이지만, 과세 자체는 굉장히 까다롭죠.

 

관세청은 불법적으로 조세피난처에 나간 것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어요. 불법외환거래에 대해 수사권이 있는데, 그 기법은 다른 사정당국도 못 따라옵니다. 역외탈세 문제는 관세청이 상당히 열심히 하고 있으니, 두고 보세요.

 

-역외탈세 조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뉴스타파에서 공개한 명단 중에는 어느 정도 가치 있는 게 있고, 일부는 그렇지 않은 것도 있어요. 관세청은 불법외환거래 측면에서 봅니다. 수출입 가격을 조작했는지도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기업이 수출 신고를 100만달러로 했는데, 국내에 10만달러만 들어왔다면 일단 의심스럽겠죠. 조세피난처 계좌를 가진 기업이라면 나머지 90만달러에 대해 꼭 살펴봐야죠.

 

#2. 세수 부족 해결책

 

지난 18일 과세당국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올해 세금징수 현황을 보고했다. 국세청은 4월까지 전년보다 8조7000억원 감소한 70조5000억원을 걷었고, 관세청은 5월말 현재 26조7632억원을 걷어 최근 3년 평균보다 4660억원 부족하다고 밝혔다.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이나 금융위기를 뛰어 넘는 세수 부족 우려가 나오는 만큼, 과세당국의 역할도 더욱 중요해졌다. 다만 세수가 아무리 급해도 원칙에 어긋나는 무리한 조사는 절대 하지 않는다고 약속했다.  

 

-관세청 소관 세수 실적은 국세청에 비해 어느 정도 선방했는데.

 

세수 여건이 어렵지만 목표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알릴 것은 빨리 알리기 위해 5월말 기준으로 보고했어요.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해 세금을 덜 걷겠다고 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세금을 못 걷는다고 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닙니다. 정부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 합니다.

 

-기업들이 관세심사나 조사에 대해 부담스러워할 수 있겠습니다.

 

관세심사는 국세청 정기 세무조사와 유사한 개념이고, 관세조사는 불법 혐의가 확인됐을 때 보는 것인데 해당 기업이 많지 않아요. 주로 가격 조작문제에 대해 보는데 수출신고를 고가로 한다거나, 수입신고를 저가로 하는 경우, 밀수를 한다든지 등에 대해 조사합니다. 1년에 200개 기업 정도가 조사를 받습니다.

 

관세 분야는 내국세에 비해 과세 체계가 정형화됐기 때문에 거짓말을 할 소지가 적어요. 기업이 종업원 수를 부풀리거나, 원가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내국세를 피하는 사례가 있어요. 관세는 수입 신고에서 빠져나올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성실하게 신고하면 됩니다.

 

-디아지오코리아와의 관세 소송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과세금액만 4000억원이 넘는데, 대형 불복에 대응하는 관세청 직원들의 실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관세는 불복 건수가 적은 반면, 소송에서 이길 확률이 높아요. 국세와 달리 세금을 빼먹을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죠. 대형 불복은 조세심판원장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관세공무원들은 다른 부처에 비해 특히 유능하고, 제복을 입기 때문에 도덕성에서도 높은 수준입니다. 소송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3. 지하경제 양성화의 본뜻

 

새 정부는 지하경제 양성화를 과세당국의 핵심 과제로 삼고 있다. 관세청은 조세피난처와의 불법 외환거래를 통한 자본유출과 역외탈세 혐의가 있는 수출입 기업을 일제히 조사하고 있다. 법무부와 검찰, 국세청, 금융정보분석원(FIU) 등 관계기관과의 공조도 강화하고 있다. 조세 형평성을 해치는 부분은 철저하게 걸러내고, 경영이 어려운 기업은 관세행정 차원에서 지원해주는 원칙을 고수한다. 지하경제 양성화가 단지 기업을 죽이는 1차원적 행정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기업들이 위축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화시켜 조세 정의를 실현하자는 것이지, 기업들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제약하지 않아요. 모든 기업에 일률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빠진 부분이나 거짓말한 부분은 바르게 잡아줘야 합니다. 조세형평성이 자리를 잡으면 성실하게 세금을 내는 개인이나 기업은 혜택을 보게 됩니다.

 

물론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키지 않아야 합니다. 관세청도 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의 관세조사 부담을 덜기 위해 연간 수출입신고 실적이 30억원 이하인 성실 중소 수출입기업은 관세조사 대상에서 제외합니다. 사정이 어려운 중소기업은 납기도 연장해줍니다. 기업의 정상적인 활동은 최대한 지원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계속 볼멘 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뭘까요.

 

지하경제 양성화로 힘들다고 얘기하는 것은 스스로 잘못한 게 많은 기업일 겁니다. 세금은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인데, 그게 있어야 나라가 움직이고 사회보장을 통해 국가를 운영합니다. 세금을 빼앗긴다는 사고가 있어선 안됩니다.

 

부정적 여론이 나오는 것은 세금쟁이들이 잘못한 것이기도 하죠. 징세행정에서 오해를 받은 건데, 해외에 출장을 나가보면 기업들이 중요하다는 점을 실감합니다. 기업은 일자리 창출의 원천이고, 국가에 기여하는 바도 큽니다. 잘하고 있는 기업들은 더 잘 하게 해줘야죠.  

 


[해외 관세관 확충 계획을 전하는 백운찬 관세청장]
 

#4. 기업을 향한 메시지

 

관세청이 기업을 상대로 하는 서비스도 상당히 종류가 많다. 해외 현지에 관세관을 파견해 기업들의 통관 애로사항을 해결해주고, 성실신고 기업에 대한 인증(AEO)을 통해 세관 절차를 간소화한다. 최근에는 일자리 창출기업에 대해 관세 조사를 유예하는 등 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특히 그는 관세관을 늘리는 부분은 크게 강조해달라며, 굳은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해외에선 기업들이 관세관을 자주 찾던데요. 기업을 향한 지원이 그만큼 중요해 보입니다.

 

해외에 나가있는 기업들은 소득에 대한 세금도 문제지만, 현지 당국에서 통관을 시켜주지 않으면 납기를 못 맞추는 등 어려움이 많아요. 지금 해외 주재 관세관이 6개 국가(EU, 미국, 일본, 중국, 태국, 베트남)에 9명 밖에 없어요. 인도와 러시아, 브라질 등은 수출량이 상당한데, 현지 기업들은 관세관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죠.  

 

관세관 1명이 나가면 1억원 정도 비용이 들지만, 기업들은 그 이상을 얻게 됩니다. 세관 공무원들은 외국에서도 서로 잘 통하기 때문에 현지 기업의 부담을 더는데 유리합니다. 관세관 확충이 시급하다고 보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어요.

 

-관세행정 차원에서 일자리 창출 기업에도 관심이 많던데. 

 

현재 기업들은 4~7년 주기로 정기 관세조사를 실시하는데,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은 1년간 조사를 유예합니다. 4559개 기업이 대상인데, 이 가운데 10%만 참여해도 4700여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보고 있어요.

 

-기업을 향한 또 다른 혜택이 있다면.

 

세관에서 믿을 수 있는 기업이라고 보증해 통관을 편하게 해주는 AEO(Authorized Economic Operator) 제도가 있어요. 현재 5개 국가와 체결했는데, 앞으로 6개국과 체결을 추진 중입니다. 기업들이 더 많은 혜택을 받도록 대상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중소기업이 자유무역협정(FTA)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원산지 확인서를 전자화하고, 기업의 전사적자원관리시스템(ERP)과 관세청의 원산지관리시스템(FTA-PASS)을 연계하는 모델을 구축하고 있어요. 시스템이 가동되면 기업들의 FTA무역비용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을 겁니다.

 

#5. 공항 면세에 대한 생각

 

최근 관세청의 공항 면세정책에 대해서도 국민들의 관심이 뜨겁다. 국제공항 입국장 면세점 설치 문제는 정부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지난 12일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정홍원 국무총리는 입국장 면세점에 대해 "상당히 수긍할 점이 많이 있다"고 했지만,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국내 소비자와의 형평성 문제를 거론하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1996년 이후 한번도 바뀌지 않은 해외 여행 면세액 한도(400달러) 역시 상향해야 한다는 의견이 끊이지 않는다. 1인당 국민소득은 96년 1만2000달러에서 지난해 2만2000달러로 높아졌다. 미국의 면세 한도는 800달러, 독일은 530달러, 일본은 2100달러 수준이고,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멕시코는 우리나라보다 다소 낮다. 백운찬 관세청장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지만, 최대한 신중하게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국제공항에 입국장 면세점을 설치하는 방안은 어떻게 풀어갈 계획입니까.

 

입국장 면세점은 해외에서 국민 불편을 해소하고 해외 면세품 구입에 의한 외화 유출을 억제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소비지국 과세 원칙에 맞지 않고 일반 수입물품과의 과세 불평등 현상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세관 검사를 강화해야 하기 때문에 입국장 혼잡 문제와 인천공항 서비스 경쟁력 저하 가능성이 있어요. 면세 제도의 취지와 각계 의견을 검토해 볼 계획입니다.

 

-해외 여행객 면세 한도를 올려야 한다는 지적에는.

 

해외여행 면세액 한도 400달러 외에 술 1병, 담배 1보루, 향수 60ml까지 1000달러 정도가 면세되고 있어요.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는 계층에게 끼치는 영향과 내수경기, 외국 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판단해볼 생각입니다.

 

#6. 人間 백운찬

 

1956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진주고와 동아대 법대를 졸업했다. 해군 장교 출신이며, 행정고시 24회로 공직에 발을 들였다. 초기에는 국세청 일선세무서에서 근무하다가 재무부 세제실,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를 두루 거쳤다.

 

2006년 이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에서 근로장려세제추진기획단 부단장, 부동산실무기획단 부단장, 관세정책관, 재산소비세정책관 등 요직을 두루 섭렵했고, 2010년 국무총리 조세심판원장에 이어 2011년부터 지난 3월까지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으로 조세정책을 진두 지휘했다.

 

금융실명제와 현금영수증, 근로장려세제(EITC) 등 굵직한 정책을 입안했고, 긴급할당관세와 수출입물품 품목분류(HSK) 개편, 부동산 세제 완화, 노후차 교체 세제지원,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 과세, 금융소득 과세 정상화 방안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놨다.

 

항상 활기찬 에너지와 시원한 일처리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깔끔한 머리스타일은 부인 송은혜씨(54)의 작품이다. 20년 넘게 집에서 직접 머리를 만져주고 있다.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직원들을 가족처럼 살갑게 챙기는 것도 유명하다. 기재부 세제실장 시절 결재받으러 온 후배들에게 담배 냄새가 나면 혼쭐을 내기도 했다. 자칫 오해를 살 수도 있지만, 후배들의 건강을 생각하는 선배의 마음이 더 컸다.

 

#7. 인터뷰를 마치고

 

집무실 밖에는 대여섯명의 간부들이 결재를 위해 대기중이다. 서울세관뿐만 아니라 대전 관세청 본청에서 온 직원들도 눈에 띈다. 잠시 배웅에 나선 백 청장은 밀린 결재를 처리하기 위해 다시 집무실로 들어섰다. [대담 : 조용만 편집국장, 정리: 임명규 기자, 사진: 이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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