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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국감 키워드]⑧ 불량 증인

  • 2013.10.31(목) 14:35

위증…'배째라' 자료 제출 거부
국민 우롱,무시 행태…비판 고조

국감이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 여느 해 처럼 올해도 호통국감, 부실국감이라는 비판은 물론 '묻지마' 증인 채택과 증인 채택 뒷거래 의혹 등 정치권을 향한 시선은 따갑다.

 

일부 함량미달 정치인들이 보이는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국민의 대표기관을 무시하는 몇몇 피감기관장들의 불량스러운 태도는 더 심각하다. 뻔히 드러날 거짓말을 대놓고 하는가 하면, 정당한 자료 제출을 '배째라'는 식으로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국회의원을 우습게 보는 것 뿐 아니라 국민을 무시하고 우롱하는 처사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 뻔히 드러날 거짓말…위증

 

"국정감사 '5적(賊)'을 반드시 손보겠다" 민주당이 이렇게 벼르는 5명에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이 포함돼 있다. 국감장에서 한 거짓말, 위증 때문이다.

 

최수현(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8일 국회 정무위 국감에서 동양 사태와 관련한 이른바 '청와대 서별관 회의'에 대해 여러 차례 거짓말을 했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 홍기택 산업은행장과 회동한 사실에 대해 처음에는 "만나지 않았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만나기는 했지만 동양에 관해서는 논의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최 원장은 나아가 "청와대에 동양 사태 보고했느냐"는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안 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산업은행 측이 답변서를 통해 최 원장이 홍기택 행장 등과 동양그룹 문제를 협의한 것으로 확인해줬고, 청와대에서 대책 회의를 한 것까지 드러났다.

 

의원들의 질타에 최 원장은 결국 8월 하순 신제윤 금융위원장까지 참석한 청와대 서별관 회의를 시인했다. 그러면서 "사안이 민감해서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며 스스로 위증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민주당은 최 원장을 위증 혐의로 고발할 예정이다. 

 

지난 20일 국감에 나왔던 유영익(사진) 국사편찬위원장은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위증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유 위원장은 국감에서 "아들이 언어장애가 있고 한국 사회에 적응 못해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 유기홍 의원은 "유 위원장 아들이 다닌 아리랑TV 인사기록카드의 질병 및 장애란은 공란이며 현재 재직 중인 한국콘텐츠진흥원 이력서에는 '영어·한국어 능통'이라고 스스로 적었다"면서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유 위원장은 또 한동대 석좌교수 시절인 2008년 뉴라이트 교과서를 교재로 쓰지 않았다고 발언했으나 거짓말로 드러났다.

 

 

 ◇ 자료 제출·선서 거부…국감 무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자료제출 거부, 불량한 태도 등으로 여야 모두로부터 공분을 샀다. 민주당 의원들은 보훈처의 안보교육 DVD 제작에 국정원 예산이 지원됐다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며 협찬 주체가 누구인지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그러나 박 보훈처장은 "개인정보보호법에 협찬자 본인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협찬자가밝히기를 원치 않는다"며 끝내 제출을 거부했다.

 

국감을 비웃는 얼굴 표정을 자주 지으며 "검토해보겠다" "알아보겠다"로 일관한 박 처장의 불량스러운 태도에 새누리당 소속 김정훈 정무위원회 위원장도 화를 참지 못했다. 김 위원장은 "왜 자꾸 '검토해보겠다'라고만 하느냐, 최선을 다해서 답변을 해야지, 여기가 박 보훈처장이 검토하는 장소냐"라고 공박했다.

▲ 지난 15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경찰청 국정감사 증인선서에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증인선서를 거부하고 자리에 앉아 있다.


국가정보원 여직원 댓글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를 축소·은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증인 선서마저 거부했다. 김 전 청장은 15일 경찰청 국감에서 김기용 전 경찰청장 등 전·현직 경찰 간부들이 기립해 증인선서를 할 때 혼자만 일어나지 않았다.

 

김 전 청장은 "기본적 방어권 차원에서 선서와 증언, 서류제출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해찬 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국민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일갈했고,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 마저 "민의를 대변하는 국감이기 때문에 선서 거부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지만 김 전 청장은 앉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앞서 지난 8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 때도 선서를 거부한 전력이 있다.

◇ 막말·태도 불량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국정감사에서 안세영(사진)이사장은 황당한 답변과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했다. 안 이사장은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시절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탄압하는 민주당을 규탄한다'는 내용에 성명에 서명했냐는 민주당 의원 질문에 "하도 서명한 게 많아 기억이 잘 안 난다"고 답했다가 질책을 받았다.

 

그는 특히 "거기 제 이름이 있나요? 아, 나 미치겠네. 아, 나 진짜 솔직히 말해서…"라고 말해 국회 정무위 소속 의원들의 분노를 샀다. 삼성증권과 한전KPS 사외이사를 현재도 맡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사외이사는 약과이고 연구회 포럼, 외국학자회까지 (참여하고) 있는데 체력적으로 못 견딜 것 같다"고 건성으로 답했다.

 

안 이사장의 답변에 김기식 의원은 "공직자행동윤리강령에 따라 사외이사를 해서는 안된다는 기본 인식도 없는 상태에서 국감을 진행해야 하느냐"고 따졌다. 보다 못한 새누리당 소속 김정훈 위원장은 "답변을 좀 신중하게 하세요. 사석이 아닙니다"라고 지적했고, 같은 당 김재경 의원도 "자중자애하라"고 핀잔을 줬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경남도에 대한 국감에서 민주당 김현 의원의 질문에 웃는 표정으로 "에이, 공약은 했지만 그게 국회에서..."라고  답해 거센 항의를 받았다. 새누리당 소속 김태환 안행위원장이 "홍 지사는 답변을 잘 하라. 웃음을 자제해 달라"고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곽병선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은 정진후 정의당 의원실에 전화를 걸어 정 의원의 전교조 이력을 거론하며 국감 지적 사항을 따져 국회의원 협박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같은 일부 기관장들의 국회 무시 행태, 국민 우롱 태도는 국회가 자초한 측면도 상당하다. 국회 증언감정법 14조(위증 등의 죄)는 위증 사실이 밝혀지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제도적으로 매우 엄중한 처벌을 받지만 위증 증인을 여야가 합의해 고발한 경우는 거의 없다.  여야 타협 과정에서 흐지부지됐기 때문이다.

 

또  김용판 전 청장처럼 증인선서를 아예 거부했을 때는 허위진술을 해도 처벌할 근거가 없다.  현재 법은 선서를 한 증인이 위증했을 때만 처벌하지, 선서를 하지 않은 증인이 거짓말을 한 경우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정이 없다. 국회가 국민의 대표기관으로 스스로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는 위증이나 자료 제출 거부 같은 노골적인 국감 방해, 국회 무시를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지 않으면 '국감 무용론'이 더 설득력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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