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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法 시대 열리나] ③태산명동서일필 안 되려면

  • 2015.01.21(수) 11:27

논란이 많긴 하지만 김영란법이 오는 2월 임시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방위사업 비리, ‘땅콩회항’ 사건에서 불거진 대한항공과 국토부의 유착 등이  연달아 터져 ‘관피아 척결’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정 가능성도 높다. 정무위 소속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법이 제정되면 바로 개정 작업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 법을 통과시킨 정무위는 물론이고 상당수 의원들이 입을 비죽거리지만 자기 이름을 걸고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의원들은 거의 없다. “뇌물 못 먹게 하는 법 반대한다는 말이냐“는 반발이 두려워서다.

◇ 본회의 통과 가능성 높지만, 수정될 수 있어

지난 15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이완구 원내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우윤근 원내대표는 이른바 '2+2' 회동을 가졌다. 여야 수뇌부의 회동 합의문에는 "김영란법을 2월 임시국회에서 우선 처리하되 법리상 문제에 대해 충분히 검토한다"는 문장이 들어갔다.  ‘우선 처리’보다 ‘충분히 검토’라는 문구를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 지난 15일 여야 당대표 및 원내대표 회동이 열린 서울 여의도 국회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회의실에서 참석자들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새누리당 이완구(오른쪽부터) 원내대표, 김무성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대위원장, 우윤근 원내대표.

 

먼저 적용대상이 축소될 수 있다. 2012년 8월 국가권익위의 원안에도 순수한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외에 정부 예산 지원을 받는 각종 협회 등을 포함시켰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대상은 점점 늘어났다. 사립학교도 국공립학교와 마찬가지로 공적 교육기능을 수행하다는 이유로 포함됐다. KBS·EBS는 포함시키는데 다른 언론은 배제하는 것이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와 아예 모든 언론을 포괄시켰다. 기자 뿐 아니라 언론사 직원 전체가 포함된다. 이렇게 되면서 언론 논조가 미묘하게 변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무위 야당 간사인 김기식 의원은 ‘범위가 과도하다’는 주장을 일축한다. 김 의원은 15일 기자간담회에서 "국공립 학교의 서무직원도 적용대상인데 정부 재정지원을 받는 사학의 이사장이 포함 안된다면 입법 취지상 일관성 없는 것"이라며 "기념사업회 등 작은 조직도 포함되는데 언론은 이들과 비교가 안될 만큼 공적 기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고위직 제한론에 대해서도 김영란법은 인·허가 관련 부정청탁을 금지하고 있는데 적용을 고위직으로 제한하면 실제 인·허가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법을 빠져나간다는 반론이 있다.

본인 외에 가족 규정을 민법에 근거하는 점 역시 논란거리다. 남보다 못한 형제도 많은데 형제의 배우자나 처남이 무슨 명목으로 누구에게 금품을 받는 지 알 수도 없고, 당사자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금품 수수도 횡행할 수 있다는 우려다.

◇ 산 넘어 산, 손도 못댄 이해충돌

어쨌든 부정청탁, 금품수수는 분야는 법안이라도 만들었지만 이해충돌 분야는 성안도 못했다. 공직자의 직무범위에 가족이 종사하고 있으면 특별한 청탁에 관여하지 않아도 이해충돌이 자동 발생한다. 복지부 공무원 가족이 병의원 원장인 경우, 교육부 공무원 가족이 사립학교 직원인 경우가 대표적 예다. 특정업무는 대리인에게 맡기는 방안 등이 논의되지만 공직자 가족의 직업선택을 제한하는 역효과가 따를 수 있다. 위헌 논란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까닭에 참여정부 당시 도입된 ‘접대비 실명제’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많다. 지난 2004년 과도한 접대비로 인한 폐해를 없애기 위해 건 당 50만 원 이상 접대비 지출은 이름과 장소, 목적 등을 밝히는 '접대비 실명제'를 시행한 적이 있다.

‘쪼개기 결제’ ‘현금 결제 우대’ 등의 신풍속도가 뒤따랐지만 접대비 자체가 줄어드는 효과도 나타났다. 결국 논란 끝에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인 2009년 소비 침체와 탈법을 부추긴다는 비판 속에 이 법안은 5년을 수명으로 폐지됐다. 하지만 공공기관은 물론 사기업에서도 법인 카드 사용 장소와 시간을 제한하는 ‘클린카드’가 보편화되는 등 접대비실명제가 긍정적 유산을 남겼다는 견해도 많다.

▲ 지난해 7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안(일명 김영란법)' 제정에 관한 공청회에서 진술인들이 발언하고 있다.


◇ ‘접대비 실명제’ 전철 안 밟으려면

접대비 실명제에 대해 대체로 재계와 자영업자 및 보수진영은 반대, 시민단체와 진보진영은 찬성으로 의견이 갈라졌었다. 반대 측은 도입 시점 보다 시행 이후에 “현실성이 떨어지고 부작용이 많다”고 목소리를 높였었다. 김영란법을 둘러싼 흐름도 유사한 지점이 많아 보인다.

김영란법을 오래 취재해 온 한 기자는 “국회가 묵혀놓은 지는 한참이지만 들여다본 지는 그리 오래됐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여론에 떠밀려 일사천리로 가고 있는데 후유증에 대한 면밀한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새누리당 관계자는 “무턱대고 법안 적용 범위를 늘리는 것에 대해 오히려 법안 반대자들이 속으로 웃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고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의원은 “검찰과 경찰, 나아가 정부에 엄청난 무기를 쥐어주는 것일 수 있다. 우리 당 의원들이 얼마나 이 지점에 대해 깊이 생각해봤는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어쨌든 의율 범위와 강도를 떠나 이같은 법안 자체는 필요하다는 데는 정치권과 사회전반의 공감대가 이미 형성되어있다. 공감대를 실체화하는 것은 국회와 정부의 몫이다. 김영란법이 접대비 실명제처럼 태산명동서일필로 단명에 그치냐, 한국사회를 획기적으로 투명하게 바꾸는 법안이 되느냐 여부는 향후 한 달에 달려있다.


**[김영란法 시대 열리나] 기획 시리즈는 외부 전문가와의 협업(co-work)을 지향한다는 편집방향에 맞춰 외부 기고를 통해 작성됐습니다. 본 기사는 '의제와 전략그룹 더모아'의 윤태곤 이사(taegonyoun@gmail.com)가 취재 및 작성을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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