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RS17 도입은 보험업계 패러다임을 바꾸는 작업입니다.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과 지금 하는 일 모두를 새로운 제도에 맞춰 바꿔야 합니다."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이 2년 뒤로 다가온 지금 보험사들은 체질개선에 한창이다. 대표적인 것이 새 제도 도입에 맞춘 결산시스템 개선 작업이다. 회사 내 자금 흐름을 새로운 기준에 맞춰 정확히 잡아낼 수 있는 분석 틀이 필요하다.
지난달 31일 하나생명은 3년여 작업 끝에 IFRS17 결산시스템 구축을 마무리했다고 발표했다. 작업을 주도한 인물은 이의창 하나생명 IFRS17 팀장. 이의창 팀장을 만나 IFRS17 시스템 구축이 갖는 의미와 향후 과제를 물었다.
그는 IFRS 시스템 구축을 '계산기를 만드는 작업'에 비유했다. 계산기를 만들었으니 앞으로는 계산기를 어떻게 쓰는 게 중요하다. 회사 내 업무를 새 제도에 맞춰 고치고 그 안에서 성과를 내는 것이 앞으로 과제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팀장은 계리사와 회계사 등 7명으로 구성된 하나생명 IFRS17 추진팀을 이끌고 있다. 옛 알리안츠생명(현 ABL생명)과 미래에셋생명을 거쳐 2014년 하나생명에 합류했다. 보험계리사인 그는 보험업계에 올해로 14년째다.
IFRS17이 가져오게 될 큰 변화
하나생명이 IFRS17 추진팀을 결성한 건 2017년이다. 2017년은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가 IFRS17을 공표한 해다. IFRS17은 2022년부터 적용될 예정이지만 공표 당시 IASB가 발표한 시행시점은 2021년이었다. 새 제도가 가져올 변화에 보험업계는 혼란에 휩싸였다.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을 위해 일정 규모의 준비금을 갖고 있어야 한다. 준비금은 통상 부채로 인식된다. 현행 IFRS4 체제 하에서는 재무제표에 부채를 계상할 때 보험계약 당시 원가가 기준이 된다. 수시로 바뀌는 금리 등과 같은 변수는 부채 산출 과정에서 고려되지 않는다.
하지만 IFRS17이 도입되면 부채를 현재 가치로 계속 재산정해야 한다. 미래 보험료와 보험금을 예상한 뒤 여기에 현행 이자율을 적용해 미래 부채 규모를 산출하는 식이다. 업계에선 원가가 아닌 시가를 적용한다고 표현한다. 문제는 이럴 경우 부채 규모가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매출 기준도 달라진다. 지금은 보험료 수입을 모두 매출로 인식하지만 IFRS17 체제에서는 저축요소가 매출에서 빠진다. 보험료를 받아도 나중에 보험금으로 빠져 나갈 돈이기 때문이다. 보험사 입장에선 매출 규모가 작아져 손익 변동이 커질 게 불보듯 뻔하다.
이 팀장은 "IFRS17 도입은 보험업계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기준이 생기면 그에 맞는 업무 프로세스를 갖춰야 하는 법. 내부적으로 새로운 결산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생명이 2017년 IFRS17 추진팀을 결성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결산시스템 도입은 패러다임을 바꾸는 작업"
시스템은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IFRS' 뒤에 붙는 숫자는 제도가 공표된 연도의 끝자리를 따 붙였다. 현행 IFRS4는 2004년 공표돼 4가 붙었고 IFRS17은 2017년에 발표돼 17이 따라오는 식이다. 13년 간 유지돼 온 업계 관성을 뜯어 고치는 작업이다.
투입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1년치 순익에 가까운 자금을 시스템 구축에 쏟아부어야 했다. 지난해 하나생명의 당기순익은 237억원. 회사 입장에선 큰 부담이 됐지만 피할 수 없기에 효율성을 최대로 끌어올려 제대로 하는 게 중요했다.
보험사 입장에서 중요한 업무 틀을 갖추는 데 이 팀장의 이력은 제격이었다. 그는 14년간 보험업계에 있으면서 계리와 회계, 재무 업무 등에 주력해 왔다. 알리안츠생명(현 ABL생명)에서 일하면서 외국에서 진행되는 IFRS17 도입 움직임을 미리 접한 것도 이점이다.
"IFRS17 도입은 보험업계 패러다임을 바꾸는 작업입니다.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보험업계가 그간 물량 위주 영업을 해왔다면 앞으로는 가치에 중점을 둬야 할 것이고요. 지금 하는 일 모두를 새 제도에 맞게 재편해야 합니다."
이 팀장의 목표는 하나생명에 꼭 맞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보험개발원과 여타 중소형 생보사 등과 함께 공동 작업을 추진하는 방법도 잠시 고려했다. 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맞춤형 시스템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독자적인 시스템 구축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IFRS17 시스템은 통상 부채현금흐름산출시스템, 부채결산시스템, 재무회계시스템, 통합정보시스템 등으로 구성된다. 하나생명은 이중 부채현금흐름산출시스템과 부채결산시스템을 같은 솔루션으로 구현해 냈는데, 시스템 운영 인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통상 사업을 추진하면 주사업자와 계약을 맺고 주사업자는 하위 사업자와 사업을 진행한다. 이 경우 주사업자가 리스크를 떠안기 때문에 투입해야 하는 비용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하나생명은 개별 사업자와 각각 계약을 체결했다. 사업을 경제적으로 추진한다는 취지다.
조직 내부적으로는 작은 약속들을 많이 만들어 커뮤니케이션 효과를 극대화했다. 메일 하나를 받아도 서로 약속한 폴더 안에 넣어놓고 누구나 지침과 숫자, 현황 등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복잡한 업무를 최대한 단순화하기 위한' 시도다.
"보험상품도 달라진다"
시스템 구축은 3년만에 마무리됐다. 지난달 31일 하나생명은 시스템 구축 완료 보고회를 열고 작업 마무리 소식을 알렸다. IFRS17 도입에 앞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는 메시지다. 앞으로는 새로운 틀에 맞춰 업무를 바꾸는 과제가 남았다.
"시스템 구축을 완료한 것은 계산기를 만들어낸 겁니다. 이젠 회사 내용물을 바꾸는 작업을 추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상품 수익성 분석의 기준이 달라집니다. 사업비를 관리하는 체계도 바뀌게 될 거고요. IFRS17 제도 하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기준점을 찾아야 하는 것이죠."
앞으로 작업 결과에 따라 IFRS17 추진팀의 유지 여부도 결정된다. 그는 "이번에 새롭게 구축한 시스템이 몇 가지가 되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가 중요할 것"이라며 "계리·리스크·상품·재무 등 각 분야를 잘 운영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험 가입자들은 어떤 변화를 느끼게 될까. IFRS17 제도 하에서 보험사가 공급하는 상품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매출 확대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저축성 보험과 연금 보험 등 종류는 적어지는 반면 수익 확보에 기여할 수 있는 보장성 보험은 주류가 될 수 있다.
"예전에는 매출과 순익을 올릴 수 있는 큰 규모의 상품을 주로 판매했죠. 하지만 제도와 환경이 바뀌면서 각각의 상품이 갖는 리스크 자체가 달라지게 됩니다. 회사마다 사정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얘기하긴 어렵지만 상당한 변화가 이뤄질 것은 확실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