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과의 합병을 앞둔 삼성물산이 합병 성패를 가르는 주총 전까지 공개하지 않았던 2조원대 해외 수주 소식을 뒤늦게 알렸다. 공교롭게도 삼성물산 주가가 합병반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 아래로 떨어진 시점이다.
삼성물산은 '카타르 퍼실리티 D(Facility D IWPP) 프로젝트'의 특수목적법인(SPC) '움 알 하울 파워(Umm Al Houl Power)'로부터 복합발전 부분의 EPC(설계-구매-시공)에 대한 최종 낙찰통지서(LOA, Letter of Award)를 받았다고 28일 밝혔다.
퍼실리티 D 프로젝트는 카타르 수전력공사(Kahramaa)가 발주한 사업으로, 카타르 수도 도하 남쪽 15km 지점에 2500MW급 복합발전소와 하루 평균 1억3000만 갤론의 물을 생산할 수 있는 130 MIGD급 규모의 담수공장을 짓는 공사다.
삼성물산은 일본 미쯔비시 상사를 디벨로퍼로 하는 이번 사업에서 복합발전소의 시공을 담당하며, 담수시설 EPC는 일본 히타치 조선(HITACHI ZOSEN)이 맡는다. EPC 총 공사 금액은 24억6536만달러로, 이 중 삼성물산 계약분은 17억9244만달러(2조875억원)이다.
이는 삼성물산 건설부문 작년 매출(14조8740억원)의 14%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 사업의 계약기간은 지난 5월13일부터 37개월 뒤인 2018년 6월23일까지다.
그런데 삼성물산이 밝힌 이번 사업의 계약기간 개시 시점이 제일모직과의 합병 추진 발표(5월26일) 전이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삼성물산이 합병에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초대형 사업의 수주 사실을 뒤늦게 공개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 등 합병에 반대해온 측에서는 삼성물산 자산가치와 사업역량 등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돼 있고, 이 때문에 제일모직과 1대 0.35로 정해진 합병비율도 낮게 평가됐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 삼성물산은 합병이 절실한 이유와 발표된 합병비율이 정당하다는 근거로 주력인 건설업의 실적 악화와 성장성 한계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이 같은 상황을 볼 때 이번 카타르 수주 건은 합병 전 이미 사실상 계약이 이뤄진 상태였지만, 합병 논리에 불리한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삼성물산 측이 공개를 꺼려온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카타르 퍼실리티 D(Facility D IWPP) 프로젝트' 조감도(자료: 삼성물산) |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건설사에게 해외에서의 대형 수주는 당연히 주가에 긍정적 요인"이라며 "수주는 일반적으로 건설사들에게는 호재지만 합병을 추진하던 삼성물산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재료였던 만큼 당시 수주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일각에서는 삼성물산이 합병 발표를 앞두고 주요 사업 진행상황을 공개하지 않은 것을 두고 "'수시공시의무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공정공시제도상 주요사업에 해당하는 대형 프로젝트 수주를 즉시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은 이에 대해 "계약 시작 시점으로 기재된 5월13일은 제한착수지시서(LNTP, Limited Notice To Proceed)를 받은 시점"이라며 "이는 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기초 공사 착공이 가능한 시점일 뿐이지 공시 의무가 발생한, 계약 확정 시점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전날 밤 발주처로부터 LOA를 받아 수주 사실을 공개한 것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점이 공교롭다는 지적이다. 이날 코스피 시장에서 삼성물산 주식은 5만7000원에 장을 마쳐,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가격인 5만7234원 이하로 떨어졌다. 합병 반대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경우 그만큼 삼성물산의 합병 비용은 증가한다.
삼성물산은 지난 17일 주총에서 합병안이 확정된 뒤 지지부진했던 주택사업도 확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상반기 공급은 300여가구에 그쳤지만 8월부터 서울 8곳에서 총 1만994가구(일반분양 3091가구)의 아파트를 공급한다는 계획을 최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