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해 온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보유 중인 삼성물산 지분 일부에 대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키로 했다.
매수청구권 행사는 합병 반대 입장의 연장선이기도 하지만 보유 주식을 현금화하는 성격도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엘리엇이 삼성물산에서 손을 떼는 출구 전략을 가동한 것인지, 아니면 합병 주주총회 패배 이후 새로운 공격 태세를 갖추는 것인지 관측이 분분하다.
◇ 일부 물량 주식매수청구
엘리엇 측은 6일 "합병안이 불공정하고 불법적이라는 기존 입장의 연장선에서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한 것"이라며 "주주로서의 권리와 투자 지분 보호를 위해 지난달 임시 주총 결과와 관련된 사항을 포함해 모든 가능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엘리엇은 지난달 17일 열린 주총 당일까지 삼성물산 지분 7.12%를 들고 있었다. 다만 이날 엘리엇이 행사한 주식매수청구권 물량이나 주총 이후 삼성물산 주식 매매 현황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주식매수청구권은 주주가 보유한 주식 가운데 합병 발표일 전에 가지고 있던 지분에 대해서만 행사할 수 있다. 엘리엇의 경우 5월26일 이전 매입분만 청구가 가능한 셈이다.
엘리엇은 지난 2월부터 삼성물산 주식 매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때부터 보유한 주식 773만2779주(4.95%)와 함께 6월3일 장내매수를 통해 삼성물산 지분 339만3148주를 추가 취득해 총 1112만5927주(7.12%)를 보유하게 됐다고 공시한 바 있다.
삼성물산 주식매수청구가격은 5만7234원이며 엘리엇이 3일 매수한 지분의 주당 평균 단가는 6만3500원이었다. 이에 따라 엘리엇의 이번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물량은 합병 직전 비교적 저가에 사들인 물량 일부로 추정된다.
◇ 엑시트 플랜보다 장기전 서막
주총 전후만 해도 엘리엇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는 가능성이 희박할 것으로 관측돼 왔다. 주가가 매수청구 가격 이상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청구권 행사가 곧 투자 차익 축소나 손실 확대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청구권 행사 마감일을 앞두고 삼성물산 주가가 매수청구 가격 이하로 떨어지고, 주가가 단기간 회복하리라는 전망이 희박해 지면서 엘리엇 입장에서도 굳이 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헤지펀드로서 합병 반대 의사 고수를 분명히 하는 동시에 투자금도 일부 회수하는 일거양득의 카드"라며 "주가가 매수청구권 이하로 떨어진 상황에서 굳이 주총 전 보유지분을 모두 들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매수청구권 행사가 곧 투자금 회수를 의미하는 만큼 엘리엇의 '출구전략'이 본격화 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합병 발표일 이후 인수한 지분 2.17%의 매입단가가 6만3500원임이라는 점에서, 이번 매수청구를 삼성물산에서 아예 손을 떼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투자자 유치를 위해 시장에서의 명성과 명분을 중시하는 헤지펀드의 속성상 이렇게까지 이슈가 된 투자에서 손실을 보고 패퇴하는 모습을 대놓고 보여주진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향후 대응에 필요한 지분만큼만 남겨놓고 소송이나 주주로서의 요구 등 다양한 공격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폴 싱어 엘리엇 매니지먼트 회장 |
◇ 엘리엇..다음 수순은?
이와 관련 엘리엇은 최근 삼성물산 주주증명서를 재발급 받으면서 재공격의 태세를 갖추는 모양새도 내비쳤다. 엘리엇은 합병 주총 후 주주증명서를 반납한 뒤, 다시 지난달 27일 한국예탁결제원에서 삼성물산 지분 1.0%에 대해 실질주주증명서를 발급 받았다.
상법상 소수주주권 일반규정은 지분 3% 이상을 보유한 주주는 각종 주주대표 소송, 주주제안, 해임청구, 장부 열람 등을 할 수 있지만 삼성물산과 같이 자본금 1000억원 이상 상장사에 대해서는 특례규정으로 지분 1%를 6개월 이상 보유한 주주에게도 같은 권리를 허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 엘리엇이 지난 2월부터 삼성물산 주식을 보유한 것을 감안하면 초기 매집한 지분 1%만 가지고도 이르면 이달 초중순께부터 각종 소송을 제기하거나 자료 요구 등을 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엘리엇은 주총 이후 이번까지 "모든 방법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