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월 소득 700만원 이상의 고소득자에게도 임대키로 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매입임대주택 사업은 LH의 국정감사 때마다 졸속 행정의 전형으로 지적 받는 '단골 메뉴'다.
관련기사 ☞[단독]LH, 골칫덩이 매입임대 '고소득층'에 개방 2016-04-04
매입임대란 말 그대로 공공기관이 기존에 있는 주택을 사들여 주거 취약계층에게 세를 놓는 임대주택을 말한다. 국토교통부 산하 LH나 서울시 산하 SH공사 등이 대표적 사업주체다.
매입임대는 2004년 서민주거복지 확대방안의 일환으로 처음 도입됐다. 도심 내 최저소득 계층의 주거안정을 위해 현재 살고 있는 생활권에서 시중 임대료의 30% 수준에 임대하는 주택으로 계획됐다.
택지를 마련해 임대아파트를 지어 공급하는 건설임대보다 비용도 적게 들고 공급 기간이 빠른 게 장점이다. 이 같은 특징 때문에 최근 전세난 대책으로도 자주 등장했다.
그러나 국토부가 매년 주먹구구식으로 매입 목표물량을 정하고 이를 시행하는 LH 등 공공기관들이 실적 맞추기에만 급급하다보니, 엉터리 매입과 이에 따른 대규모 운영적자, 고소득층 대상 임대라는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
◇ '대형주택' '침수주택' 마구잡이 매입
가장 먼저 사업주체가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목표에 부합하는 임대주택을 매입하고 있느냐가 문제로 지적돼 왔다. 매입 실적을 채우기 위해 중대형이나 입지여건이 불리한 주택, 채광이 부족한 지하주택, 침수주택, 노후주택 등을 가리지 않고 매입한 것에서부터 부실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작년 LH 국감에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이노근 의원은 "LH가 현재 보유 중인 매입임대 중 전용면적 85㎡ 초과 중대형이 1784가구"라며 "이는 매입임대 재고 6만여가구중 2.96%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LH가 2014년 5월에 매입한 울산 남구 한 다가구의 집주인용 최상층 주택은 전용면적이 216㎡이었다. LH는 이를 4억6000만원에 사들여 월 임대료를 43만원으로 매겼다. 2013년 12월 말에 매입한 충북 청주시 다가구는 전용 186㎡, 같은 해 12월 사들인 울산 북구 다가구 빌라는 전용 170㎡였다.
LH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매입임대주택 구매를 위해 총 2조4323억원의 예산을 집행했는데 이중 20%인 약 5000억원이 전용 85㎡ 초과 주택에 쓰였다. 이 의원은 "저소득계층의 주거안정을 추구하는 매입임대주택 사업의 목적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그래픽 = 유상연 기자 prtsy201@ |
국토위 박수현 의원은 재작년 LH 국감에서 "6개월 이상 악성 공실 주택 중 반 이상인 675가구가 반지하 혹은 완전지하 형태"라며 "주거환경이 열악하거나 대상자들이 입주를 꺼려 임대가 안되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LH는 매입임대로 소속 직원이나 그 가족 소유의 집을 사 비리 의혹을 사기도 했다. 직원과 관계된 주택 6채를 사는데 들인 돈이 36억7800만원으로 이 중 일부는 아직 빈 집으로 남아 임대주택 구실을 못하는 상황이다.
◇ '5분의 1은 빈집' 새는 예산만 수천억
LH가 2004년 이후 지금까지 매입한 기존주택은 지난해 말 기준 총 6만6000여가구다. LH는 국토교통부가 목표를 세워 할당한 물량을 해마다 5000~9000여가구씩 사들이고있다. 올해 계획된 매입 물량은 6480가구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6년간 매입임대용 주택을 사들이는 데 들인 예산은 3조467억원으로 집계된다. 작년 역시 6000억원 이상의 돈이 들어갔을 것으로 추산된다. 집계 이전기간까지 합치면 총 5조원 이상의 비용이 매입임대 사업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된다. 1채당 9000만원꼴로 예산이 투입되는 셈이다.
그러나 사놓고도 비워둔 집이 너무 많다. 작년 6월말 기준 총 6만232가구중 일시적이든 장기적이든 세입자를 들이지 못한 상태인 주택이 1만1093가구로, 전체의 18.4%나 된다.
비어있는 매입임대 가운데는 입주자 선정 등 임대절차가 진행중인 6개월 이내의 일시적 공가(공급중 3772가구), 상태가 열악해 개보수중인 주택(개보수 5283가구)도 포함된다. 그러나 6개월 이상 주인을 찾지못한 장기 미임대도 전체의 3.4%에 해당하는 2038가구에 이른다.
▲ 그래픽 = 김용민 기자 |
이 때문에 예산낭비가 심각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LH는 2013년 국감에서는 총 5082억원이, 2014년에는 7000억원이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와 함께 입주자 모집이나 공급방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LH가 올해부터 도시근로자 월 평균소득 150%(3인 기준 722만4997원)에 해당하는 고소득자에까지 매입임대 주택의 문을 열어 준 것은 미임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그러나 매입임대의 근본 취지를 망가뜨려가면서까지 입주자격 제한을 푸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김희선 센추리21코리아 전무는 "매입임대의 경우 공급량 늘리기에만 집중하다보니 불필요한 지역에 주거 수요와 맞지 않는 물량이 확보된 것이 사업 부실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남는 물량을 무턱대고 고소득자에게 내줄 게 아니라 지원이 필요한 계층에 공급할 수 있는 현실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