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과 조기 대선을 앞둔 2017년 현재 주택시장의 온도는 확연히 다르다. 침체일로에서 과열이 우려되는 상황까지 어느 때보다 고저차가 컸다. 4년여 전에는 '시장 활성화'가 지상과제로 여겨졌지만 가계부채 우려가 커진 요즘은 '안정 유지'가 숙제다. 박근혜 정부 시기 주택시장 흐름과 정책 변화를 짚어보고 19대 대선 주자들의 공약을 토대로 향후 정책 방향을 관측해 본다.[편집자]
"지금은 부동산이 불티나게 팔리던 '한여름'이 아니고 '한겨울'이다. 여름이 다시 오면 옷을 바꿔입으면 되는데, 언제 올지 모른다고 여름옷을 계속 입고 있어서야 되겠나?" 2014년 6월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의 말이다. 이 발언은 박근혜 정부 초반기 주택시장에 대한 인식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경제 수장이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 DTI) 등 부동산 규제를 풀어내겠다는 의지를 대놓고 드러내면서 차가웠던 주택시장은 온도를 높여가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2년 대선을 치르면서부터 부동산 시장의 활성화를 내세우며 세제, 금융, 재건축 등 전 방위적인 부양책을 실시했다.
부동산 시장은 곧 반응했지만 이내 건강한 호조로 보기 어려운 징후들이 나타났다. 서둘러 빚을 내 집을 사는 이들이 많아져 가계부채가 급증한 탓에 금융시장 위험이 커졌다. 전국적으로 주택 공급이 급격히 불어나고 또 강남 재건축과 일부 신규분양 시장에 투자자들이 쏠리면서 시장엔 과열 경고등이 켜진 게 현재 상황이다.
◇ 4년간 집값 6.8%, 전셋값 14.6%↑
21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4년(2013년 3월~2017년 2월) 전국 주택가격은 6.84% 상승했다. 연도별로 2013년 0.31%에 그쳤던 집값 변동률은 2014년 1.71%, 2015년 3.51%까지 점점 높아진 뒤 작년에 다시 0.71%로 낮아졌다. 박 정부 시기 집값이 가장 많이 오른 곳은 21.49%의 상승률을 보인 대구였고, 이어 제주(15.33%), 경북(9.14%) 순이었다.
같은 기간 전국 전세가격은 14.6% 올랐다. 집값 상승폭의 배를 넘는 수준이다. 연도별로는 2013년 4.7%, 2014년 3.4%, 2015년 4.85%, 작년 1.32%의 변동률을 나타냈다. 이 기간 전셋값 변동은 수도권이 21.17%, 지방이 8.85%로 차이가 컸다. 지역별로는 대구 22.51%, 경기 22.33%, 인천 20.58%, 서울 19.89% 순으로 상승률이 높았다.
숫자로만 보면 주택 매매시장은 전세에 비해 비교적 안정세를 보인 듯하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다르다. 지역에 따라 격차가 컸다. 대구 같은 급등지역도 있었지만 전북은 0.52% 하락했고 전남은 0.35%, 대전은 1.76% 상승하는 데 그쳤다.
서울 안을 들여다봐도 강남과 강북권 격차가 컸다. 부동산114 아파트 가격 조사에서 박 정부 4년간 강남구는 26.59%, 서초구는 25.41%, 송파구는 20.4% 등 강남권 집값은 크게 올랐다. 반면 강북 지역 용산구는 3.9%, 종로구는 4.85% 등에 그쳤다. <관련기사 ☞ [포스트]'열탕(熱湯) 강남' 어떻길래>
주택거래 활기는 집값 상승 기대감이 달아올랐던 2015년이 정점이었다. 연간 주택매매거래량은 2014년 100만건을 돌파한 뒤 이듬해 120만건에 육박하면서 국토교통부 집계 이래 가장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 주택거래량은 작년까지 3년 연속으로 100만건을 넘고 있다.
건설사 주택공급 사업도 크게 늘었다. 주택 인허가 실적은 2013년 44만여건에서 2014년 51만5000여건, 2015년 76만5000여건으로 늘어난뒤 작년 72만6000여건까지 2년째 70만건대를 유지하고 있다. 앞서 연간 신규주택 공급량이 70만건을 넘은 것은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 사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던 1990년이 유일했다.
◇ 전반-부양 드라이브, 후반-수요·공급 제어
롤러코스터 같은 시장의 흐름을 이끈 것은 '시장 활성화'를 맨 앞에 세운 정부의 정책 드라이브였다. 박 정부는 부동산 부양으로 경제성장을 꾀했다. 재건축 관련 규제를 거의 모두 풀었고, 민간택지의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사실상 폐지했으며 청약제도도 대폭 완화하는 등 잠자던 수요를 깨워내는 조치들이 잇달았다.
2013년 4월1일이 신호탄이었다. 박 정부 첫 부동산 대책인 '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시장 정상화 종합대책'이 나온 때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폐지, 주택구입자 양도세 한시 면제, 수직 증축 리모델링 허용 등의 내용이 여기에 담겼다. 집값을 띄우기 위해 저렴하게 공급되는 공공주택 분양을 줄이겠다는 것도 목표로 세워졌다.
이듬해에는 최경환 경제팀이 시장에 금융 물꼬를 텄다. 주택담보대출의 걸림돌로 지적되던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한도를 각각 70%, 60%로 상향했다. 공공택지 전매제한 완화와 청약가점제 사실상 폐지(9·1 부동산 대책) 등이 이어졌고, 그해 연말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사실상 폐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유예, 재건축 조합원 다주택 분양 허용 등의 '부동산 3법' 개정이 국회에서 관철됐다. <관련기사 ☞ [2014 부동산 키워드]①규제는 다 푼다>
하지만 박 정부의 부양기조는 2015년 하반기부터 방향을 틀었다. 가계부채가 급증하면서 점차 금융권 신용관리 위험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아파트 분양 물량이 늘어나면서 2~3년 뒤 입주물량이 집중되면 과잉공급으로 시장이 급격히 꺾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때마침 미국이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을 시사하자 정부는 한없이 낮추던 대출 문턱을 다시 높이기 시작했다.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주택담보대출 구조를 종전 변동금리·일시상환 대출에서 고정금리·장기분할 상환 대출로 전환하고, 중도금 등 집단대출을 제어하겠다는 등의 조치가 이뤄졌다. 가계부채 관리 대책이었지만 정부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을 통해 주택 공급 사업을 인허가 단계부터 제어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이어 작년 11월에는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와 과천 등지 분양권 전매를 입주때까지 금지하는 등 전국 37개 지역의 전매를 제한하고 청약자격을 강화하는 내용의 시장 안정대책까지 발표했다. 정권 초와는 정 반대로 수요를 억제해 리스크를 관리한다는 게 박 정부 후반부 대책의 방향이자 현재의 정책 스탠스다.
시장에서는 대선 후 새 정부가 어떻게 주택 정책 방향을 잡을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전 정부의 과도한 부동산 부양책이 재건축 가격급등과 분양시장 과열, 공급과잉 단초로 이어졌지만 기업형 임대(뉴스테이) 도입 등으로 준공공임대 재고가 늘어난 것은 긍정적"이라며 "다음 정부는 가계부채 위험 경감을 통한 시장 안정과 도심재생 등이 주 정책 목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