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주택시장에 불이 붙는 모습이 나타나자 과열을 식힐 부동산 안정 대책이 시급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새 정부 기대감에 일시적으로 매수심리가 자극을 받은 것도 배경이지만, 넘치도록 풀려있는 유동성이 주택시장 투자자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상황을 그냥 둬서는 이후 부작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목소리다. 하지만 과열 안정 대책이 경기에 주는 부담도 최소화 해야한다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고민이다.
◇ 조정대상지역으로 '과열-침체' 양단 관리
문재인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우선적 대증요법으로는 일단 작년 말 박근혜 정부가 내놨던 '11.3 시장안정 대책'의 후속조치가 가능하다. 임시방편이었던 '조정대상지역'을 당시 계획대로 법제화하는 동시에, 최근 상황을 감안해 범위를 넓히거나 효력을 강화하는 방안 등이 가장 먼저 추진될 수 있다.
정부는 강남권 중심으로 주택 시장 과열된 모습을 보였던 작년 하반기 11.3 대책을 통해 조정대상지역을 지정했다. 대상 지역에서 단기 전매차익을 노린 수요자들의 청약 참여를 막는 ▲전매제한 강화 ▲1순위 청약자격 제한 ▲재당첨 금지 등을 시행하는 게 핵심이다.
'청약과열 → 고분양가 → 집값불안'으로 이어지는 시장 불안의 연쇄고리 끊겠다는 의도였다. 국토교통부는 당시 서울 전지역과 경기·부산 일부 지역, 세종특별시 등을 47개 시·군·구를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이는 주택법 상에 규정된 제도가 아니라는 점 때문에 법제화가 필요했다. 청약과열이 가장 극심했던 부산에 전매제한이 불가능하다는 점 등이 한계였다.
국토부는 조정대상지역 법정 지역 제도화를 추진했다. 지난 3월말 이원욱 의원(더불어민주당) 대표발의로 이와 관련한 주택법 개정안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올려졌다. 이 과정에서 조정대상지역은 '과열'뿐만 아니라 '침체'까지 관리할 수 있도록 기능 범위를 확대했다.
조정대상지역 기준에 '주택 분양 등이 과열되어 있거나 과열될 우려가 있는 지역'뿐만 아니라 '주택의 분양·매매 등이 위축되어 있거나 위축될 우려가 있는 지역'도 포함한 것이다. 애초에는 시장 안정만 식히는 '준(準)투기과열지구' 성격이었지만 안정권 밖 시장 위축 지역도 관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주거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과열지역에는 전매제한 강화 등의 안정책을, 반대로 침체 지역에는 주택 공급을 조절하거나 수요를 지원하는 제도를 즉각적으로 가동할 수 있다. 현재 분양 보증 전담기관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미분양 관리지역', '고분양가 관리지역' 등을 내규로 정해 시장 수급을 보완하고 있는 것도 주택법 체계 안에 자리잡게 된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일괄적 규제를 가하는 데 따른 경기 위축을 피해야하고 지역별 시장 온도 차이 등을 고려한다면 '조정대상지역'를 활용하는 활용한 '핀셋 대책'이 새 정부 첫 대응으로 적당한 수위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조정대상지역의 효력이 약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과열의 진원지인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의 경우 11.3 대책 후 일시적 관망이 있었지만 재차 집값 상승세가 가파르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일부 지역은 규제 수위가 높은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할 필요도 있다는 주장이다.
▲ 서울 서초구 일대 주택가.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 'LTV·DTI' 금융규제 차등 강화 가능성
가계부채 관리 연장선 상에서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주택담보대출과 관련한 금융규제를 어느 정도까지 높일 것이냐가 관건이다. LTV는 집값을 기준으로 매긴 대출한도 비율, DTI는 갚아야 할 원리금과 소득을 비교한 대출한도 비율이다.
박근혜 정부는 2014년 8월 LTV 비율(은행 기준)을 50~60%에서 70%로, DTI는 50~60%에서 60%로 완화했다. 완화된 규정은 오는 7월말 종료되는데 새 정부가 이를 어떻게 조정하느냐가 관심인 셈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7일 인사청문회에서 "LTV·DTI에 대해 내정자 신분으로 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가계부채와 부동산 과열 문제뿐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도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서면 질의 답변서에서도 "가계부채 증가 추이와 규제 환원 시 경제적 파급 영향 등을 관계 기관과 함께 충분히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내놨다. 일괄적인 대출규제 환원에 신중을 기하겠다는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관련기사 ☞ LTV·DTI 일괄 강화 '신중 모드'…미세 조정할까
이에 따라 대출 기준을 일괄적으로 환원하기보다는 지역이나 차주(대출자) 특성 별로 다르게 적용하는 방안도 예상된다. 일괄적인 기준 강화가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것이 고려된 선택이다. 서울과 세종, 부산 등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미분양이 늘어나고 집값도 약세를 보이는 등 시장도 지역별 차별화 모습을 보인다는 점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택업계에서는 대출 특성에 따라 LTV를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은 최근 현행 LTV 70% 수준을 유지하되 생애최초 주택구입자나 신혼부부의 LTV는 최고 85%까지로 완화하고, 서민용 주택에 대해서도 가산 LTV를 두는 방안을 제언했다. 제시된 비율이 높은 측면이 있지만 차등화만큼은 고려될 수 있는 사안이라는 게 안팎의 해석이다.
▲ 서울 성동구 일대 부동산 중개업소 앞 거리.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 '보유세 인상' 여부도 관심
중장기적 주택시장 관리 측면에서 보유세를 조정하는 세제 개편 카드를 새 정부가 꺼낼지도 관심사다. 김 후보자는 "종합부동산세를 강화할 것이냐"는 질문에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아직 검토하고 있지는 않다. 공약에서도 빠져 있고 '보유세·거래세를 균형 있게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문제를 포함해 신중하게 봐야 할 사안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초기 대책에서 어느 정도 세제 측면의 방향성이 제시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대선 전 당론으로 보유세 인상에 대한 입장이 확고했고, 김 후보자도 "부동산 투기를 용납할 수 없다는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강조했다는 점에서다.
일단 정부는 좀 더 시장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후보자도 "부동산 시장의 이상 과열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며 "내주부터 관계 부처 현장 점검을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아직 경제부처 인선이 마무리되지 못한 것도 배경이다.
주택당국도 실무 선에서 시장을 관찰하면서 대응책 수위를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토부 한 관계자는 "지난 주까지 주택시장 이상과열에 대한 지적이 많았지만 어제 오늘 서울 강남권부터 다시 관망세가 나타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며 "현장 상황과 가격·거래량 지표 등을 통해 시장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