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익재단이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는 문제제기에 직면해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달 5대그룹과 만난 자리에서 언급한 이후 급부상한 화두다. 그렇다고 느닷없이 등장한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선 공익재단에 대한 주식보유 규제가 1990년말 도입됐다. 당시에도 대기업 공익재단은 나름의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상속·증여세 부담없이 그룹 경영권을 대물림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았다. 급기야 공익재단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하거나 출연자와 관계된 사람이 해당재단의 운영에 관여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물론 이러한 대안은 많은 논쟁 속에 아직까지 도입되지 않고 있다. 30년째 이어져오고 있는 논란, 대기업 공익재단 문제를 비즈니스워치가 [공익재단워치]를 통해 다시 짚어본다. [편집자]
한국 예술계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특히 음악 영재, 클래식분야에 대한 지원은 첫 손에 꼽힌다.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물론 수많은 음악가들이 금호아시아나의 후원을 받았다.
이런 활동을 주도하고 있는 곳이 바로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다. 과거 금호그룹 창업자인 고 박인천 회장 시절부터 금호가(家)는 음악인 지원에 적극적이었다. 이런 관심들이 모여 1977년 금호문화재단이 설립된다. 재단의 명칭만 바뀌었을뿐 지원활동은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을 놓고 '한국의 메디치가(家)'라는 수식이 붙는 이유다. 실제 고 박성용 회장이나 현재 재단 이사장인 박삼구 회장은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문화예술 지원에 공이 많은 사람에게 수여되는 영예로운 상이다.
하지만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최근 본의 아니게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문화예술 지원이라는 본연의 기능이 아닌 다른 이슈에 휘말려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5대그룹 전문경영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대기업들의 자발적인 개혁의지를 강조하며 "공익재단의 운영실태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삼성 외에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사례를 주목하고 있다.
◇ 계열사 기부금 '절대적'
금호아시아나그룹에는 2개의 공익재단이 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과 죽호학원이다. 앞서 설명한대로 문화재단은 예술계 지원 활동이 주요 목적이다. 죽호학원은 광주에 있는 금호중앙여고와 금호고등학교를 보유한 교육재단이다. 박삼구 회장은 문화재단에서는 이사장직을, 죽호학원에는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이들 재단은 모두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경우 지난 2016년 기부금은 66억6400만원, 죽호학원은 75억3500만원의 기부금을 기록했다. 2015년 기부금은 각각 80억4500만원, 108억5500만원이었다.
예상대로 기부금은 계열사들이 대부분 냈다. 문화재단의 경우 지난해 아시아나항공 18억6000만원, 금호산업 12억1800만원 등 전체 기부금에서 계열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97%에 달했다. 문화재단은 다시 죽호학원에 20억원을 기부했다. 아시아나항공 18억원, 금호산업 12억원 등 죽호학원의 계열사 비중은 100%였다.
주목할 부분은 이들 재단이 주요 계열사들의 주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문화재단은 그룹 지주회사인 금호홀딩스 보통주 6.75%, 우선주 57.14%를 보유하고 있다. 케이에프, 케이에이, 케이알, 케이오주식회사 등은 문화재단이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회사들이다.
죽호학원은 금호홀딩스 우선주 42.9%를 보유중이다. 금호홀딩스 우선주 전부를 문화재단과 죽호학원 나눠가진 상황이다. 죽호학원은 또 케이지, 케이아이주식회사 지분 100%를 가지고 있다.
금호홀딩스는 박삼구 회장이 28.1%, 아들인 박세창 사장이 19.9%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문화재단과 죽호학원, 또 재단이 보유한 '케이' 계열 회사들을 합하면 보통주 62.7%, 우선주 100%를 가지게 된다. 이들 재단이 그룹 지배구조 선상에서 적지않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 흔들린 '존재의 이유'
이들 재단이 단순히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주목을 받는 것은 아니다. 공익재단임에도 불구하고 그룹 오너의 필요에 따라 움직였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 '공익재단이냐, 사익재단이냐'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지점이다.
실제 문화재단의 경우 당초 설립 취지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과거 박삼구 회장과 동생인 박찬구 회장이 벌인 소위 '형제의 난' 시절부터다.
그룹 경영권을 놓고 이들 형제의 갈등이 본격화되던 시점, 문화재단은 보유하고 있던 금호산업 지분을 모두 팔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매입한다.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늘리자 재단 이사장인 박삼구 회장을 대신해 움직인 셈이다.
문화재단이 보유하고 있던 금호석유화학 지분은 2012년 다시 모두 처분된다. 재단은 이 자금으로 금호타이어 유상증자에 참여한다. 박삼구 회장의 금호타이어 지배력 강화 차원으로 해석됐다.
당시 박찬구 회장이 맡고 있던 금호석유화학은 지분매각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재단이 매년 10억원 가량의 배당이 이뤄지는 회사의 지분을 팔아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회사의 유상증자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문화재단이 확보한 금호타이어 지분은 2015년 다시 매각된다. 재단은 금호타이어 지분을 매각하고, 박삼구 회장이 금호산업 인수를 위해 설립한 금호기업 유상증자에 400억원을 투입한다. 금호기업 유상증자에는 죽호학원도 150억원, 재단이 지분 100%를 보유한 '케이' 계열 회사들도 100억원 규모로 참여한다.
박 회장의 자금력이 부족해 CJ 등 거래회사들도 백기사로 동원된 상황이었다. 재단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현재 문화재단과 죽호학원 등이 보유하고 있는 금호홀딩스 지분이다. 금호기업은 금호산업 인수후 금호터미널과 합병을 통해 금호홀딩스로 사명을 변경했다. 최근에는 금호고속까지 합병을 마무리한 상태다.
◇ 높아지는 긴장감
공정위의 공익재단 실태조사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사례가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은 김상조 위원장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금호 재단들의 일련의 거래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온 곳이 바로 경제개혁연대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임명되기 이전까지 경제개혁연대 소장으로 일하며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대한 이슈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경제개혁연대는 대기업들이 공익법인을 악용하고 있다며 금호아시아나를 대표사례로 인용하기도 했고, 재단 이사 등을 배임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재단의 금호홀딩스 우선주 취득과 관련 "시중보다 높은 금리가 적용되는 상환전환우선주이고, 법적인 하자없이 절차를 진행했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김상조 위원장은 최근 공익재단 조사문제에는 자신이 관여하지 않겠다며 선을 그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관측도 많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입장에서는 긴장도가 점점 높아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