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시공·입주지연 등의 문제가 해소되고, 소비자의 선택권이 강화되며 모델하우스 설치비 절감 등으로 결국 소비자 부담이 한층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분양권 전매를 원천적으로 차단, 전매차익을 노리는 주택 투기행위를 방지하고 실수요자 위주로 주택을 공급할 수 있게 된다." (2004년 2월 3일. '주택 후분양 활성화방안' 문답풀이)
참여정부 시절 주택 후분양 활성화 방안이 발표되면서 후분양제 도입 효과를 당시 건설교통부는 문답풀이 보도자료를 통해 이같이 설명했다. 하지만 이 후분양제는 시행하지도 못한채 이명박 정부로 넘어가면서 폐지됐다.
최근 정부가 공공부문 후분양제와 민간부문에 제한적이나마 후분양제를 도입하기로 한 이유는 이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후분양제 필요성을 강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소비자의 선택권에 있다. 100만원짜리 건조기를 사거나 혹은 3000만원짜리 자동차를 살 때 소비자들은 완제품을 눈으로 확인하고 구입여부를 결정한다.
▲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 평면도가 나온 팜플릿을 펼쳐 보이고 있다/이명근 사진기자 |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유독 수억원에 달하는 집을 구입할때는 예외였다. 업체에서 나눠주는 팜플릿의 평면도를 보거나 임시로 만든 모델하우스에서 집의 구조나 마감재 등을 보고 집 구입여부(분양)를 결정한다. 이것이 선분양제다.
반대로 후분양을 하게 되면 집을 지은 후 완성된 집을 본 후에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의 선택권을 강화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부실시공을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동탄2신도시 부영아파트 부실시공 논란으로 후분양제 필요성 또한 부상했다.
지난해 국토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이 "3000만원짜리 승용차를 구입할 때도 꼼꼼히 확인하고 구입하는 데 주택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계약부터 해야 한다"며 "이런 선분양제 때문에 많은 주택 수요자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분양권 거래로 인한 시장 과열과 투기 유발도 후분양제 도입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해 8.2대책 이후 분양권 전매가 금지됐지만 암암리에 분양권 전매가 이뤄지면서 정부의 제도를 무력화하고 시장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토부는 최근 수도권 청약과열단지를 중심으로 SNS 등을 통해 다수의 분양권 불법전매가 이뤄진다는 사실을 포착해 관련 사항을 수사의뢰하기도 했다.
이는 선분양제 혹은 주택공급 시스템의 자금조달 구조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수분양자는 분양 당첨후 계약금 10%를 내면 이후 각 20%씩 세차례 중도금을 납입하고 입주시점에 나머지 30% 수준의 잔금을 내게 된다.
건설사는 수분양자가 낸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집을 짓는다. 건설사 입장에선 제품 값을 2~3년 미리 당겨받아 그 돈으로 집을 짓고 사업자금으로 쓴다. 전문가들은 이런 시스템 자체도 기형적이라고 지적한다.
이자 한 푼 들이지 않고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셈이니 기업 입장에선 이만큼 좋은 제도가 없다. 정부가 부실시공에 대한 페널티 성격으로 선분양을 제한키로 한 점 역시 이를 방증한다.
조달에 대한 비용과 리스크가 없으니 분양가를 낮출수 있는 유인이 생긴다는 점에선 수분양자도 나쁘지 않다. 수분양자는 고가의 주택구입에 필요한 자금을 2년 반의 여유를 두고 마련할 수 있다.
게다가 8.2대책 전까지는 집값의 최고 70%(LTV·주택담보인정비율)까지 대출을 해줬기 때문에 사실상 계약금 10%만 내면 은행 돈으로 싸게(때로는 무이자로) 주택을 구입할 수 있었다. 사실상 누이(건설사) 좋고 매부(수분양자) 좋은 식이다.
문제는 이런 선분양 제도가 투기 혹은 가수요를 유발하고 시장을 혼탁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택 구입을 거주보다 투자수단으로 생각하는 수요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나 지금의 문재인 정부가 후분양제를 하고 싶은 진짜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연구실장은 "분양 후 입주까지 2년반 동안 분양권 거래 과정에서 시장이 혼탁해질 수 있다"며 "후분양제는 이를 차단한다는 면에서도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