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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분양 명암]롤러코스터 탄 후분양

  • 2019.07.16(화) 16:13

정부, '집값 안정+소비자 선택권 강화' 노렸지만 무반응
고분양가 규제회피 수단으로 등장…분양가상한제에 무용지물

1년 만에 후분양이 다시 이슈로 부각했다. 이번에는 고분양가 규제를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정부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카드로 맞불(?)을 놓자 이내 사그라드는 분위기다. 후분양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과 후분양의 미래, 최근 거론되는 새로운 분양 형태 등을 알아본다. [편집자]

"후분양 되겠어?"

지난해 정부가 후분양을 독려하기 위해 여러 혜택을 제공하는 등의 도입방안을 발표하자 당시 업계는 코웃음을 쳤다. 공정률 60%가 실질적인 후분양이 되기는 힘들다는 지적과 함께 사업자들의 자금 부담이 커져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무엇보다 40년간 이어지며 소비자와 공급자 모두에게 익숙하게 자리 잡은 선분양을 몇가지 인센티브 만으로 전환시킨다는 구상 자체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1년이 지나 후분양은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했다. 수도권 주요 재건축‧재개발 단지에서 고분양가 사업장에 적용되는 규제를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후분양이 선택된 것이다. 정부의 애초 취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이다.

그러자 정부도 칼을 빼든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다. 결국 후분양은 다시 흐지부지 되면서 존재감이 사라지고 있다.

◇ 무시 받던 후분양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6월 '제2차 장기주거종합계획 수정계획'을 발표하면서 단계적으로 후분양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우선 공기업인 LH와 SH, 경기도시공사를 시작으로 민간으로 영역을 확대하겠다는 밑그림을 그렸다. 민간부문 후분양 활성화 유도 방안으로는 건축 공정률이 60%에 도달한 이후 입주자를 모집(후분양 기준)하는 자에게 공공택지를 우선공급하고 기금대출 지원강화, 대출보증 개선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신규 주택 공급은 선분양제도를 통해 이뤄졌다. 주택사업자가 집(아파트 등)을 짓기 전에 계약자를 모집하고, 이들이 낸 돈(계약금‧중도금 등)으로 공사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1970~80년대 주택사업자의 자금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대량의 주택공급을 위해 만들어진 특이한 구조다.

계약자들 입장에서는 완성된 집이 아닌 평면도와 견본주택을 보고 집 매입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완제품을 보지 못한채 구매여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선택권엔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다.

선분양이 집값을 과도하게 올린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분양 후 준공까지 2~3년의 기간 동안 완성되지도 않은 집의 주인이 수시로 바뀌는, 즉 분양권 거래로 인해 주택시장에 거품을 만든다는 것이다.

정부가 분양권 전매제한 등 규제를 강화하는 것과 함게 후분양제 정착에 적극 나섰던 이유다.

하지만 업계와 시장 반응은 냉담했다. 후분양을 위해 주택사업자들은 대규모 공사대금을 금융회사에서 빌려야 하고 이에 따른 이자부담도 커진다. 신용도가 낮은 중소‧중견 건설사들은 사업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심하게는 도산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 이런 영향으로 오히려 선분양보다 분양가가 더 비싸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소비자 역시 준공하자마자 집값을 한번에 치르거나 혹은 단기간에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이 큰 후분양보다는 준공까지 2~3년의 기간동안 중도금을 나눠낼 수 있는 선분양을 선호하는 경향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후분양에 대한 혜택에도 많은 사업장이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은 자금 조달에 대한 부담과 선분양을 통해서도 충분히 주택을 공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소비자들도 후분양이 낯선 까닭에 선호도가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 빛바랜 후분양

1년 뒤 후분양은 정부가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얼굴로 모습을 바꿨다. 서울과 과천 등 수도권 주요 재건축 사업장에서 후분양을 추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들이 후분양을 선택한 이유는 고분양가 사업장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다. 지난 6월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고분양가 사업장 심사기준을 강화했다. HUG의 분양보증을 받아야 분양을 시작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분양가를 주변 시세보다 낮게 책정해야 한다.

조합 입장에서는 분양가를 낮출수록 부담해야 할 분담금이 늘어나고, 사업 수익성은 떨어진다.

반면 후분양을 택하면 HUG의 분양가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어 조합이 원하는 가격을 맞출 수 있다.

후분양을 선택한 과천주공1단지 재건축 '과천 푸르지오 써밋'은 당초 3.3㎡ 당 3313만원의 분양가를 제시했다. 하지만 HUG는 분양가가 비싸다는 이유로 분양 보증 발급을 거부했다. 현재 과천 시세가 3500만~4000만원 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후분양 시 분양가는 4000만원 안팎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단지 조합이 후분양을 선택한 이유다.

이처럼 수도권 주요 유망단지들이 후분양을 통해 분양가 통제를 피하려 하자 정부도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라는 칼을 빼들었다. 이들 단지에 대한 수요자 관심이 집중된 상황에서 분양가 자체가 일반 단지와 비교해 크게 높아지면 최근 안정세를 보였던 주택시장이 다시 들썩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결국 재건축 조합들도 한 발 물러섰다. 후분양 도입에 무게추가 쏠렸던 '래미안 라클래시'(상아2차 재건축)는 선‧후분양 여부를 다음 달 결정하기로 했고, 강남 주요 재건축 단지들도 후분양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기로 선회한 상황이다. 일찌감치 후분양을 결정했던 과천 푸르지오 써밋 정도만 계획을 바꾸지 않은 상태다.

결과적으로 후분양을 독려했던 정부가 자발적으로 후분양을 선택한 사업장을 통제하는 상황이 됐다. 이로 인해 앞으로 후분양제도가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은 더욱 험난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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