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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표 정비사업]②법보다 서울시?…곳곳서 갈등

  • 2020.03.11(수) 16:08

역사‧문화 보존 명분으로 정비구역 묶었다 풀었다
사유재산 침해‧보존 가치 등 둘러싼 갈등 여전

"건물이 다 쓰러져가는데 무슨 보존이냐. 사유재산 침해하지 말라!"(사직2구역 정비사업 조합)

"서대문 형무소(일제시대 독립운동 탄압기관)도 아니고 범법자를 수감했던 구치소 건물이 무슨 문화유산이라고 남겨두는건지 이해하기 어렵다."(성동구치소 졸속개발반대 범대책위원회)

'박원순표 정비사업'에서 주로 보이는 갈등 양상은 크게 이 두가지로 함축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역사‧문화적 보전가치를 이유로 정비구역 지정을 '직권 해제'하기 시작하면서 사유재산 침해 논란과 갈등은 더 커졌다. 소송전으로 치닫기도 했다.

최근들어선 대규모 정비사업을 중심으로 아파트 일부 동을 남겨두거나 옛 구치소 담장을 보존하도록 하면서 '보존가치' 자체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 역사·문화 보존 앞에 '사유재산 침해' 목소리 커져

서울시 내 정비사업에서 지자체와 조합의 갈등을 키운 도화선 중 하나가 직권해제다.

서울시는 2016년 3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를 개정해 역사문화유산 보존 필요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곳은 서울시장 직권으로 정비구역 해제할 수 있도록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를 근거로 2017년 3월 한양도성 성곽에 인접해 있는 종로구 사직2구역, 옥인1구역, 충신1구역(현 충신윗마을) 등 3곳의 정비구역을 직권해제했다.

박 시장은 '뉴타운 출구전략'의 일환으로 같은 해 이들 3곳을 포함해 총 35곳의 정비구역을 직권해제했다. 이는 2015년 27곳 이후 최대 규모로 당시 서울시 내 전체 정비구역 683곳 중 절반 이상인 363곳이 해제됐다.

정비구역에서 해제된 이들 지역의 조합원 입장에선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다.

충신1구역은 2006년 조합이 설립됐고 옥인1구역은 2009년, 사직2구역은 2012년 정비사업의 '8부 능선'으로 불리는 사업시행인가까지 받은 상태였다.

결국 사직2구역은 서울시와 종로구청에 소송을 제기해 2년여 만인 지난해 4월 대법원에서 '정비구역 직권해제 무효' 판결을 받았다. 당시 법원은 "역사문화적 가치 보전이라는 사유는 재개발 추진과 직접 관계가 없다"고 판결했다.

같은 해 12월엔 감사원이 '지자체 주요정책·사업 등 추진상황 특별점검'을 통해 사직2구역을 예시로 들며 서울시의 부당한 직권해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사기가 오른 사직2구역은 다시 사업 추진에 나섰지만 진척이 안되고 있다.

종로구청이 조합설립변경인가를 안 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직2구역이 구역 해제된 동안 소유권을 넘겨받은 조합원 51명(전체 조합원 260명)에 대한 정비사업 동의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정영미 사직2구역 재개발 조합대표는 "이미 조합원 78%의 동의로 조합설립인가를 받아 추진하던 사업인데 지금 와서 다시 동의를 받으라는건 어떤 법에도 나와 있지 않다"며 "법치국가에서 법에도 없는 사항 때문에 행정(인가)을 하지 않는 건 엄연한 사유재산 침해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보존 가치' 모호…명확한 잣대 필요

보존 가치에 대한 공감대 형성도 쉽지 않다.

사직2구역의 경우 노후 불량주택이 밀집해 있어 현실적으로 보존·재생이 불가능하다는 게 지역 주민들의 얘기다.

정영미 조합대표는 "슬럼가도 아니고 폐허가라서 집이 절반은 비어있다"며 "지난해 구역 내 집 한 채가 무너지는 사고가 있었는데 워낙 오래돼서 개·보수가 안 된다더라"고 말했다.

이어 "오래된 건물은 폐인트칠 하고 문을 바꿘다는 정도로 안 되고 전면 철거가 답"이라며 "보존할 게 없다"고 덧붙였다.

사직2구역뿐만 아니라 옥인1구역, 충신1구역을 직권해제한 이유 중 하나인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등재가 불발됐다는 점에서도 명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는 2013년부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한양도성을 등재하는 것을 목표로 성곽마을 조성사업을 추진하면서 여러 구역들과 마찰을 빚어왔으나, 2017년 등재를 자진 철회했다.

전문가들은 정비사업에서 '보존 가치'에 대한 명확한 원칙과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현수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영국 런던의 버킹엄궁전이 있는 동네는 인근 건물들의 층수를 5층으로 제한하고 주택 개보수나 못질 하나까지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며 "서울도 600년된 수도의 국격을 나타낼 수 있도록 적어도 사대문이나 한양도성 성곽 인근은 강하게 컨트롤하는 게 맞다"며 방향성에 공감했다.

다만 "이런 원칙이 일관성있게 가지 못하고 자꾸 바뀌고 그 과정에서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곳(사직2구역 등)까지 직권해제를 하는 등은 재산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며 "사업시행인가를 받았다는 건 그 구역에 대한 권리가 확정됐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서울시도 지난해 10월 구역 지정 이후 역사·문화적 가치 보전을 이유로 직권해제 하지 못하도록 관련 개정조례를 공포했다. 

김 교수는 "논란이 됐던 을지면옥 등 노포, 재건축 1개 동(개포주공4단지, 잠실주공5단지 등) 보존 등을 보면 맥락이 다 다르다"며 "오래됐다고 다 보존가치가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원칙이나 기준을 구체적이고 명확히 세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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