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채납 비율 축소, 인허가 절차 통합 심의, 재건축 의무거주 미적용, 재건축초과이익 부담금 미부과…….'
정부가 정비사업에서 '걸림돌'로 꼽히는 각종 규제들을 파격적으로 걷어냈다. 그동안 인센티브가 부족해 민간의 참여를 충분히 끌어내지 못했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재건축 공급의 물꼬도 트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공공' 주도 사업인 만큼 임대주택 공급, 이익공유, 1가구1주택 우선공급 등이 또다른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용적률·사업속도 '올리고' 기부채납 '낮추고'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4일 '2·4 공급대책' 발표를 통해 "사업 참여를 유도하고 충분한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다양한 인센티브를 부여하겠다"며 "이번에 제시된 개발 모델은 현재 조합원 및 토지주에게 기존 사업보다 유리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눈에 띄는 인센티브는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총 19만6000가구),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13만6000가구) 등에 담겼다. 공통된 인센티브는 ▲용적률 상향 ▲사업속도 단축 ▲기부채납 완화 등이다.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은 토지주·민간기업·지자체 등이 저개발된 도심 우수입지를 발굴해 LH·SH 등에 주택 및 거점 복합조성을 제안하면, 국토부·지자체 검토를 거쳐 해당 지역에 개발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하는 방식이다.
역세권, 준공업지역, 저층주거지로 나뉘는데 역세권 준주거의 경우 용적률을 700%까지 완화해주고 준공업지역은 공동주택 용적률 상향 시 공공임대 기부채납을 적용하지 않도록 했다. 그동안 산식방식으로 20~25%의 기부채납을 제공했던 것은 주택법령에 따라 15% 수준으로 개선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토지소유자는 기존 자체 사업 추진 방식 대비 10~30%포인트 높은 수익률을 보장받을 수 있다. 아파트·상가 우선공급(1가구1주택 원칙)도 보장받는다. 토지소유자가 장래 부담할 신축 아파트·상가 분양대금을 기존 소유자산으로 현물납부한 후 정산하는 방식(양도세 비과세)도 도입한다.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은 주민 동의를 거쳐 LH·SH공사 등이 재개발·재건축을 직접 시행하고, 사업·분양계획 등을 주도해 신속히 사업을 추진하는 제도다.
용도지역 1단계 종상향 또는 법적상한 용적률의 120% 상향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입지여건 상 종상향 또는 법적상한용적률 적용이 곤란해도 종전 가구 수의 1.5배 이상(재개발은 1.3배)을 보장한다. 재개발은 소형 평형이 집중되지 않도록 전체 가구 수 80%를 59㎡ 이상으로 계획한다. 필요 시 층수제한도 완화한다. 기부채납도 주택법령에 따라 재건축 9%, 재개발 15%내로 규정한다.
'통합심의'도 도입한다. 그동안 건축심의, 교통영향평가 등을 별도로 진행해 인허가에 과도한 시간이 소요됐는데, 앞으로는 사업시행인가 시 통합심의를 도입해 신속한 인허가를 지원한다. 이를 통해 평균 13년이 걸리던 사업을 5년 이내 이주할 수 있게 단축한다는 계획이다.
◇ '의무거주·재초환'까지 풀었다…흥행할까
초미의 관심사인 재건축 규제도 풀었다.
공공직접시행 정비사업 시 재초환과 재건축 2년 거주의무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재초환은 재건축을 통해 조합원 평균 3000만원 이상 개발이익을 얻으면 정부가 이익의 최고 50%를 부담금으로 거두는 제도다.
지난해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반포3주구가 가구당 4억2000만원의 재초환 폭탄을 맞는 등 '부담금 공포'가 확산되면서 재건축이 지지부진해졌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번 대책에서 재건축 사업 진행의 최대 걸림돌이 해소된 셈이다.
다만 재초환 미부과로 과도한 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추가 수익률 10~30%포인트를 보장하는 선에서 조합원 분양가 등은 조정한다. 나머지 개발이익은 생활SOC 확충, 특수상황 토지소유자 지원, 세입자 및 영세상인 지원, 공공자가 등으로 공유한다.
이번 대책에 나온 인센티브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파격적인 '당근책'을 쓴 만큼 공공정비사업이 흥행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졌다고 평가했다.
양지영 R&C연구소장은 "기존 공공재건축의 단점이던 사업성 문제를 재초환 및 2년 거주 의무 미적용, 용적률 상향 등의 혜택을 주면서 보완한 게 매력으로 다가가 과거보다 참여하는 재건축 사업자들이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공공재개발을 추진했다가 탈락한 단지나 소규모 단지, 비인기지역 단지의 참여 가능성을 예상했다.
일반 재개발·재건축 단지 중에서도 사업 진행이 더딘 곳은 공공직접시행 정비사업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해당사업장의 기존 시공·설계 업체나 그간 매몰비용까지 공공이 승계하기 때문에 사업 전환에 대한 부담도 적다.
다만 강남 등 서울 주요 지역 단지들의 참여는 여전히 저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공'이 주도하는 만큼 조합원의 자율성 확보나 단지 고급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은형 건설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택시장에서 상징적인 강남 등 부촌 아파트 소유주들이 보기엔 이번 혜택이 크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며 "고가 아파트의 경우 대부분 직접 거주하기 때문에 2년 의무거주 미적용 등이 강한 이점으로 작용하지 않고, 공공이 시행하기 때문에 고급화 단지를 만들기도 어려워 굳이 공공정비사업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구철 미래도시시민연대 재건축지원조합단장도 "강남4구역 대단지 재건축 아파트나 한강변 재개발단지 등 유망지역 정비사업 조합들은 공공정비사업에 대해 상당히 거부감을 갖고 있어 참여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다.
특히 은마, 잠실주공, 압구정 등 유망 단지들은 재초환 부담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김 단장은 "만약 이들 단지가 7~10년 뒤 입주한다고 가정하면 2018년~2021년이 재초환 부과 기산점이 되는데 2018년부터 현재까지 집값이 높은 상태여서 재초환 부담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고 말했다.
재초환 부과 기산점은 추진위원회 설립 승인일이다. 다만 이들 단지처럼 추진위 승인 이후 사업이 장기화된 곳은 사업 개시 시점을 준공 10년 전 시점으로 간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