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집값에 무력감을 느낀 A씨(30대)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역주택조합(지주택) 사업에 눈을 돌렸다. '위험한 사업'이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토지확보율도 높고 사업 진행도 순탄해 내 집 마련 꿈에 닿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사업계획 승인을 앞두고 갑자기 1억원에 가까운 추가 분담금 통보를 받고 눈 앞이 캄캄해졌다.
#B씨(60대)는 '준조합원' 자격으로 지주택 사업에 참여했다. 조합설립 전까지 조합원 자격을 갖추면 된다는 말을 철썩같이 믿었지만 추후에 가입 단계에서 임의가구를 분양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결국 B씨는 조합원 자격도 얻지 못하고 계약에 들어간 비용도 전액 환불받지 못했다.
'지주택 주의보'가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지주택 조합의 정보 공개가 제한적인 데다 조합원을 모집하기 위한 허위·과대 광고가 판을 친다.
소비자 보호를 위해 관련법을 개정하고 실태조사 등을 실시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허점 투성이다. 전문가들은 지자체 관리감독 강화 등 추가 제도 개선뿐만 아니라 지주택 사업의 존폐 여부에 대해서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눈 뜨고 '추가분담금' 베이기도
지주택 사업은 소유주 알박기, 금융비용 조달 부족 등으로 사업이 지연되는 경우가 다반사다.▷관련 기사:[지주택 바로알기]①반값 아파트냐 지옥주택조합 아파트냐(2월4일)
조합이 사업의 주체인 만큼 개발 절차가 간단하고 중간마진을 없앨 수 있다는게 강점이면서도 모든 갈등과 비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총 2908가구의 대단지로 조성돼 눈길을 모았던 경기 김포시 통합사우스카이타운 지역주택조합(이하 사우스카이지주택조합·총 2908가구)은 고지를 눈앞에 두고 예정에 없던 추가 분담금 문제가 터지면서 제동이 걸렸다.
이곳은 지난 2009년 재정비촉진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도시개발조합+지주택조합 방식으로 개발이 진행중이다. 지난 2015년부터 조합원을 모집해 현재 2500여명의 조합원이 가입돼 있으며 지난해 4월 사업계획 승인을 신청했다.
애초 예정했던 '2019년 입주'는 물건너갔지만 6년의 기다림 끝에 내 집 마련 꿈에 다가서게 된 셈이다. 그러나 '추가분담금이 없다'던 홍보와는 달리 조합이 분담금을 요구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지주택 조합원들은 그동안 사업부지 내 공공주택부지 매입을 위해 약 1900억원을 납부했으나 토지 매입비로 4100억원을 추가 납부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 과정에서 사업부지 매입이 조합 명의가 아닌 업무대행사의 명의로 이뤄진 점 등도 문제가 됐다.
결국 조합원들이 비대위를 구성해 '임시총회 개최요구서'(조합장 및 조합임원 해임 등)를 제출했고 해당 요구가 인용, 지난달 임시총회를 열어 안건들을 처리하면서 다시 정상화되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한 조합원은 "해임된 조합 임원들이 가처분 소송을 낼 수도 있고 갈등을 겪는 사이 시간도 흘렀기 때문에 추가 분담금을 내야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내가 조합원이 아니라니..
시작부터 단추를 잘못 꿰는 경우도 있다. 지주택 조합원 자격이 되지 않는데도 이른바 '임의세대' 또는 '준조합원'으로 가입한 사례다.
조합이나 업무대행사가 조합원 수를 늘리는데 급급해 허위·과장 마케팅을 하는 탓이다. 특히 조합 가입 시 내는 '업무대행비'의 경우 탈퇴할 때도 공제하기 때문에 업무대행사 입장에선 최대한 많은 조합원을 모집해야 돈을 더 벌 수 있다.
조합원 자격이 안 되는데도 조합설립인가 신청 전까지 조건을 갖춘다는 '조건부 계약'을 유도하는 이유다.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조합설립인가 신청까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그 사이에 보유하고 있던 주택을 처분하는 등의 방식으로 자격을 만들면 된다고 설명하고 준조합원 등 비공식적인 명칭으로 가입을 시킨다.
하지만 애초에 조합원 모집 단계에서 임의세대 분양은 불가능하다. 임의분양의 경우 조합원에게 분양하고 남은 가구가 30가구 미만이면 이사회 의결, 총회 결의를 거쳐야 효력이 생기고 30가구 이상이면 공개분양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끝내 조합원 자격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해도 보상은커녕 '전액 환불'도 어렵다. 계약 내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통 계약금, 중도금 이자 등을 모두 공제하고 남은 금액만 환불해준다.
'깜깜이 사업' 여전…"제도 근본 검토해야"
이처럼 지주택 사업 구조상 비슷한 피해 사례가 지속적으로 나오자 정부 차원에서도 움직이고 있다.
지난 2020년 7월24일부터는 해당 건설대지의 최소 50% 이상 토지사용권을 확보한 경우만 조합원 모집에 나서도록 법이 개정됐다. 아울러 해당 지자체에 모집신고가 수리돼야만 조합원 모집을 할 수 있게 했다.
조합설립 때까지 정보 공개가 제한된다는 점도 일부 개선됐다.
서울시는 지난해 10월부터 정보사업 종합포털인 '정비사업 정보몽땅'에 지주택 사업도 포함하기로 했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등에 따라 정보를 의무 공개하게 돼 있지만 주택법에 따르는 지주택 사업은 주먹구구식으로 부실하게 공개돼 왔다.
정보 공개가 '의무'가 아니라는 점에서도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현재 '정비사업 정보몽땅'에 정보를 공개한 정비사업 조합 총 539개 중 지주택 조합은 25개(4.6%)에 불과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직 지주택 조합은 정보공개가 의무가 아니라 독촉하고 있다"며 "의무화하기 위해 국토부에 법률개정 등을 건의한 상태로 국토부에서 용역한 다음에 차후에 실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주택 사업 과정에서 벌어지는 피해를 막기 위해선 관리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지주택 사업에 대한 지자체의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조합장 및 조합 임원들의 도덕성을 검열할 수 있도록 자격 요건을 높이는 식으로 제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주택 제도 자체를 전면 재검토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지주택은 사업 구조 자체가 개인(조합원)이 땅을 사서 아파트를 짓는 구조인 만큼 성공하기 어렵다"며 "제도가 도입됐던 1970년대에 비해 사회적·환경적 여건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미치는 득과 실을 점검해보고 제도적 필요성 등을 재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