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15년째 제자리걸음인 '용산정비창' 부지의 개발을 또다시 시도한다. 용적률을 크게 올려 제2롯데월드보다 더 높은 초고층 복합업무지구로 탈바꿈한다는 게 이번 청사진의 핵심이다.
그동안 용산정비창 개발 추진에 있어 실패 요인은 제거하고, 이전 정부의 대규모 주택 공급 구상과 달리 '개발' 쪽으로 무게추를 옮기면서 도시 경쟁력 제고가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임대주택을 포함한 6000가구의 주택 공급이 있는 데다 지나치게 '오피스 타운'에만 치중했다는 점에선 주민 반발이나 성장 요인 부족 등의 우려가 나온다.
'이번엔 다르다'…실패 요인 없앤 개발 계획
서울시가 지난 26일 용산구 '용산정비창' 일대 약 50만㎡에 대한 개발 청사진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구상'을 발표했다.
서울시 최초의 '입지규제최소구역'을 지정해 법정 상한 용적률 1500%를 뛰어 넘는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도록 한다는 게 이번 구상의 핵심이다. 현재 가장 높은 제2롯데월드 555m(123층)보다 더 높게 지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지상부의 50% 이상은 녹지로 확보하고 지하도로, 미래항공교통(UAM), GTX 등 다양한 교통수단을 연계하는 복합환승센터를 마련해 '미래 신(新) 중심지'로써의 국제업무지구를 만든다는 청사진이다.
이번 계획은 그동안 용산정비창 부지 개발의 실패 요인들을 대부분 제거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용산국제업무지구는 지난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을 추진했지만 여러 이유로 번번이 실패해 왔다. 애초에 서울시는 용산정비창 부지와 인근 서부이촌동을 묶어 개발해 동북아 최대 비즈니스허브로 조성하기로 했다.▷관련기사:[용산정비창 개발vs임대]청사진만 벌써 몇번째?(2021년11월30일)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겪으며 시행사인 민간 PFV(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 '드림허브'의 부도로 2013년 개발 사업이 최종 무산됐다. 이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2018년 용산과 여의도를 통합 개발하는 '마스터플랜' 구상을 밝혔으나 일대 집값이 크게 치솟으면서 또다시 무기한 연기됐다.
그동안은 '개발'에 방점을 찍었다면 2020년부터는 '주택 공급'으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문재인 정부는 그해 5월 용산정비창 부지에 8000가구 공급 계획을 발표했다가 8월 3000가구 이상의 공공임대를 포함해 총 1만 가구로 공급 물량을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결국 주민 반발 등이 심해지면서 최종 지구 지정에 실패했고 오세훈 시장이 지난해 4월 보궐선거를 통해 재임하면서 다시 '개발' 쪽으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이미 여러 차례 청사진이 엎어져 온 만큼 이번 구상은 차질 없이 갈 수 있게끔 불안 요인을 사전 차단했다.
민간 PEV 주도의 개발 대신 공공기관인 코레일과 SH공사가 공동사업시행자(지분율 코레일 70%, SH공사 30%)로 나서면서 경기 침체 등에 따른 부도 위험을 대비했다.
또 용산국제업무지구에서 서부이촌동 부지를 제외하면서 보상 때문에 사업이 지체될 가능성이 사라졌다. 최근 서울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집값이 약보합세로 돌아선 상황이라 가격 상승 압력으로 인한 '백지화' 우려도 잦아들었다.
또 주택이야?…여전히 우려도
다만 개발 계획에 주택 공급 예정물량이 많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또다시 '잡음'이 우려되고 있다.
용산국제업무지구는 부지의 30%가 주거시설, 70%가 상업용도로 개발될 예정이다. 이중 주거시설엔 오피스텔 1000가구·순수 주거 5000가구 등 총 6000가구가 공급될 예정으로 그중에서 임대주택이 1250가구(법적 비율 25%)를 차지할 전망이다.
앞서 국토부가 2020년 8·4대책에서 발표한 1만 가구 공급보다 4000가구(임대주택 1750가구) 축소했지만 일각에선 '여전히 주택 공급량이 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에도 용산 주민들은 서울 핵심 입지를 임대주택이 포함된 대규모 '아파트촌'으로 만들 수 없다며 '용산정비창 원안개발을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한 바 있다.▷관련기사:[용산정비창 개발vs임대]국제도시냐 아파트냐(2021년12월1일)
용산의 지리적·기능적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선 주택 보다는 업무시설 위주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두성규 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용산은 서울에서도 지리적·기능적 중심지인데 그곳에 꼭 주거단지가 필요한지 근본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당장 주택이 부족하다고 주택을 대규모로 채워넣으면 도시발전 측면에서 봤을 때 기형적인 모습으로 전락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번 개발은 50~100년 뒤 먼 미래를 내다봐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주택보다는 업무시설 중심의 국제업무단지 성격으로 가야한다"고 덧붙였다.
더 나아가 용산의 도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혁신 기업과 인력을 끌어모을 수 있도록 '직주락(職住樂·일과 주거, 즐거움)'을 채울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현수 건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용산정비창 부지는 용산공원에 교통허브까지 혁신경제의 아이콘으로 만들기 최적의 장소"라며 "오피스타운에만 치중할 게 아니라 핵심 테마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빅테크, 플랫폼, 연구개발 기업을 육성하는 게 국가의 최대 과제인데 그러려면 혁신 인력이 모여들게 해야 한다"며 "미국도 큰 오피스는 뉴욕 맨해튼으로 모이는 것처럼 '직주락'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