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독자 A씨로부터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지난달 18일 보도한 기사('비거주 1주택' 실거주 유예…"제 계갱권은요?")를 읽고 연락을 줬다고 했다. 정부의 비거주 1주택자 실거주 의무 유예 확대와 관련해 세입자 계약갱신청구권 행사에 제한이 생길 수 있는 점을 짚은 기사였다.
A씨는 '서울 중구 ○○○○아파트에 거주 중인 세입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어 "기사에서 우려했던 일이 지금 저에게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자초지종은 이렇다. A씨는 지난해 3월부터 이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다. 계약은 2년 뒤인 내년 3월 만료될 예정이다. 계약갱신청구권을 고려하면 2년 더 계약을 연장해 최대 2029년까지는 이 집에서 살 수 있을 거로 예상하고 큰 틀에서 생활과 자금 계획을 마련해 놓았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집주인이 최근 매도 의사를 밝혀온 것이다. 한두 차례 매수 의향자가 집을 보러 오더니 곧 계약이 될 것 같다고 중개사무소는 귀띔했다.
A씨는 난감해졌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은 임대차계약 만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다. A씨 계약 만기는 내년 3월로 계약갱신청구권 행사가 가능한 시점은 올해 9월부터다. 즉 9월 전까지는 갱신 요구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만약 현재 집주인이 9월 이전인 7~8월 토지거래허가를 신청하고 10월 초 잔금·등기를 완료한다고 가정하면, 새 집주인이 실거주 의사를 밝힐 경우 그는 늦어도 내년 3월에는 집을 비워줘야 한다. A씨는 이를 중구청 담당자에게도 확인했다. 임대차법상 임대인(직계존속·직계비속 포함)이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 임차인의 계약 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주지가 토허구역인 만큼 새 집주인은 실거주할 가능성이 높다.
그의 계약 갱신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법적으로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가능 시점이 아닌 경우 매도자와 매수자 간 거래 과정에서 임차인이 개입할 권한은 없어서다.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여부를 미리 밝히는 것 또한 효력이 없다.
국토부 관계자는 "임대차법상 임차인에게 계약갱신청구권이 주어지는 시점이 '계약 만료 6개월 전~2개월 전'으로 명시돼 있기 때문에 이외의 범위에서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A씨는 "저는 (매도와 관련해) 아무런 동의도 하지 않았음에도 제도의 허점으로 인해 내년 3월 집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게 됐다"며 "전셋값이 급등하는 이 시점에 갑작스러운 이사를 강요받게 됐다"고 토로했다.
사실 이는 정부가 비거주 1주택자에게 실거주 의무 유예를 확대했기 때문만이라고 짚기는 어렵다. 명확히는 임대차법상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인의 거절권 사이의 간극이 드러난 사례다.
다만 정부의 비거주 1주택자 실거주 의무 유예 조치가 아예 영향을 미치지 않았느냐 하면 그건 '△(세모)'다. 지난달 9일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가 재개되면서 시장에서는 '매물 잠김'이 우려됐고, 정부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세입자 낀 주택'을 보유한 비거주 1주택자까지 실거주 의무를 유예함으로써 집을 내놓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관련기사:토허구역 '세입자 낀 주택' 연말까지 매수할 수 있다(5월12일)
정부가 추가 매물 유도를 위해 실거주 의무 등 규제를 완화하면서 매도에 나서는 집주인들이 늘어날 수 있게 됐고, 그 과정에서 이 독자처럼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을 하지 못하게 된 세입자들도 증가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또 비거주 1주택자의 세 낀 매물을 매수한 수요자의 경우 실거주 의무 유예기간이 지난달 12일 기준 체결된 임대차계약상 '최초' 계약종료일까지고, 늦어도 오는 2028년 5월11일 내로는 실거주를 위해 입주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해당 주택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은 사실상 무력화한 것이 맞다.
현장에서도 갈등을 전해 들은 적 있다. 지난달 '비거주 1주택자 실거주 의무 유예' 시행 이후 만난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일대 중개사무소 대표 B씨는 "비거주 1주택자 매도가 가능해지면서 주인이 집을 내놨는데, 손님을 모시고 집을 보려고 갔더니 세입자분이 문을 안 열어주더라"며 "임차인분들은 계약갱신청구권을 갖고 있어서 집이 매도되는 상황을 달가워하지 않고 협조해 주지도 않는다. 주변 전셋값도 많이 올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A씨는 "정부도, 집주인도 이 허점을 모르는 척 활용하고 있다"며 "저처럼 혼란스러운 세입자가 저 혼자만은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교롭게도 이 메일을 받은 8일,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다주택자 양도세 유예를 끝내고 그 기간 안에 팔라고 해서 원래 세주던 걸 팔았으니 전세 물량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며 "세 들어 사는 사람들, 즉 무주택자가 그 집에 들어가서 살기 위해서 산 것으로 수요가 그만큼 줄었으니 이는 정상화 과정의 일부"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앞서 지난달 20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런 세입자 문제를 강하게 부인하기도 했다. 그는 "비거주 1주택 소유자들도 집을 팔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발표 시점부터 2년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입주를 좀 늦게 해도 된다고 했더니 그게 세입자들의 계약갱신청구권을 침해한 거라는 식으로 (기사를) 썼던데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며 "무슨 기사를 그렇게 가짜로 조작질을 해서 쓰느냐. 명백한 조작·왜곡"이라고 했다.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시장 정상화'라는 대의명분에는 충분히 동의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주거 안정에 예상치 못한 공백이 발생한다면 이 또한 세심하게 들여다봐야 할 문제다. 시장 정상화를 위한 정책 실행이 불가피하다면,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세입자들의 불안을 줄일 수 있는 보완책도 함께 고민돼야 한다.
A씨는 "정부가 매물을 유도하기 위해 만든 정책이 세입자 주거 안정을 해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피해가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려달라"고 호소하며 메일을 맺었다.
A씨 이야기는 지나쳐도 될 작은 예외에 불과할까? 제도의 허점은 대개 누군가의 현실이 된 뒤에야 드러난다. 제도의 틈새 속 공백을 해결하는 것, 그 또한 정책이 답해야 할 영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