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지막 금싸라기 땅'으로 불리는 용산정비창에 그려질 새로운 밑그림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토교통부가 용산정비창 부지에 미니 신도시 규모(1만 가구)의 주택을 공급하기로 결정한 상태지만 주민 반발과 서울시의 제동으로 국면 전환이 예상되고 있다. 특히 2007년 용산역 일대를 국제업무지구로 지정해 화려한 개발을 추진했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재임하면서 별도의 청사진을 예고해 다시 개발 기대감이 나온다.
이처럼 정부와 서울시의 구상이 다른 데다 '대장동 나비효과' 등의 변수로 용산정비창 부지가 어떻게 재탄생할지 주목된다.
'화려한 청사진'…금융위기 여파 첫 삽도 못 떠
서울 용산구 용산역 인근에 위치한 용산정비창 부지는 지난 2007년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 재임 시절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에 포함했던 곳이다. 이 사업은 용산정비창 부지와 서부이촌동 일대 56만6000㎡를 관광·IT·문화·금융이 집적한 '동북아 최대 비즈니스허브'로 조성하는 걸 목표로 추진했다.
민관이 공동으로 추진한 공모형 PF 사업으로 땅값만 8조원, 총 사업비 31조원에 달해 '단군 이래 최대 개발 프로젝트'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당시 투자자로 나선 27개의 금융·건설사 등이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이하 드림허브PFV)'라는 특수목적 회사를 만들어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서울시는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서울 한복판이자 강남, 광화문, 여의도 등 3각 비즈니스 벨트의 중심부에 자리잡은 만큼 화려한 청사진을 그렸다. 이를 위해 용산 국제업무지구 중심부에 제2롯데월드(555m·123층)보다 높은 최고 620m 높이(약 150층)의 랜드마크 건물 건립을 허가하기도 했다.
드림허브PFV가 2010년 공개한 마스터플랜은 더 화려하다. 최고 100층 높이의 메인 타워를 세우고 좌우로 각각 72층, 69층짜리 랜드마크 빌딩 3개를 비롯해 총 67개의 고층 건물을 배치하는 구상으로 '빌딩숲'을 연상케했다.
한강변과 용산공원이 맞닿은 구역엔 대규모 녹지축을 조성하고 한강로 지하를 가로질러 용산공원과 용산역을 땅속으로 잇는 거대한 지하 네트워크도 구축하기로 했다. 지하엔 코엑스몰의 6배에 달하는 상업시설 '리테일밸리'를 조성하고 친환경 교통수단인 트롤리(무궤도전차)도 배치하기로 했다.
그야말로 '미래 도시'가 떠오르는 개발 계획이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민관합동형 프로젝트 파이낸싱도 지속적으로 문제가 생기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나온 이같은 청사진은 첫 삽도 못 떠보고 백지화됐다.
2013년 3월 드림허브PFV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고 코레일이 같은 해 9월 드림허브에 판 정비창 부지 대금(1~3차)을 완납하면서 용산국제업무지구가 해제돼 지금까지도 허허벌판 빈 땅으로 방치돼 있다.
여의도·용산 통합개발→아파트 공급→?
용산 개발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8년부터다.
같은 해 7월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이 여의도·용산 통합 개발 구상을 밝히면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재추진 기대감이 나오기 시작했다. 용산에 광화문광장급 대형광장과 산책로를 만들고 서울역-용산역 철로는 지화하하는 동시에 철로 지상엔 MICE(회의·관광·전시·이벤트) 단지와 쇼핑센터를 짓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박 시장의 발언이 집값 상승 불씨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면서 결국 잠정 보류됐다. 그 사이 2013년부터 이어진 코레일(한국철도)과 용산개발 참여 회사 간의 소송전에서 코레일이 2019년 최종 승소하게 되면서 법적 분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후 국토부는 2020년 5월 수도권 공급대책에서 용산정비창 부지(51만㎡)를 이용해 8000가구의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집값 안정을 위해 서울 도심에 공공임대 등 주택공급을 확대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이어 같은 해 8·4대책에선 용산정비창의 용적률을 높여 주택공급량을 1만 가구로 늘리기로 했다. 1만 가구 중 3000가구 이상은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하고 나머지는 일반·공공분양으로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최근엔 김헌동 SH공사 신임 사장까지 가세해 용산정비창에 '반값 아파트'인 토지임대주택 공급을 검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계획은 벌써부터 흔들리고 있다.
용산정비창 부지가 공공임대를 포함한 '아파트촌'으로 조성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주민들은 용산정비창 원안개발을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용산정비창은 도시경쟁력 상승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라며 주택공급을 취소하고 원안대로 개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시도 힘을 보탰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용산정비창을 국제업무지구로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연말에 별도의 개발 계획(용산 마스터플랜)을 발표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오 시장 '민선 1기' 시절의 원안이 상당부분 반영될 것으로 예상돼 다시 개발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이 경우 국토부와 서울시의 갈등이 불가피한 데다, 최근 '제2의 대장동'을 막기 위한 도시개발사업 공공성 강화 관련 법안 추진 등의 각종 변수로 용산정비창에서 새 삽을 뜨기까지는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