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용산공원에 임대주택, 고?스톱?

  • 2021.08.20(금) 09:25

여당, 용산공원에 주택 8만가구 공급 구상
"상징성·도시경관 저해"…주민반발 점점 커

1만1303건.

용산공원에 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한 관련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제출 건수다. 대부분이 '반대' 의견이어서 입법 추진에 제동이 걸릴 것이란 기대감도 나왔지만 바통은 다음 단계인 국토교통위원회로 넘어갔다. 

그러자 주민들은 반발수위를 높여가고 있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거세다.

용산 미군기지 전경./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1만명이 고개 저었으나…입법은 '일단 고(go)'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달 3일 대표 발의한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의 입법예고 기간이 지난 18일 끝난 가운데 총 1만1303건의 의견이 제출됐다. 대부분이 '반대'하는 의견이었다. 

개정안은 용산 미군기지 반환부지를 공원 외 택지 등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예외 규정을 신설하는 게 골자다. 이를 통해 일부 부지에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구상이다. 최근 정부가 수도권 주택가격을 안정화하기 위해 공공정비사업을 활성화하고 서울 내 유휴부지를 활용해 주택공급을 확대하려 하지만 주택부지가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강병원 의원은 "반환예정 부지 약 300만㎡ 중 20%인 60만㎡ 부지를 활용해 택지를 조성한다고 가정하면 가구당 평균 공급을 전용 70㎡용적률을 1000%까지 상향할 경우 무려 8만 가구를 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구상대로라면 서울 한복판에 신도시급 규모의 주택 부지가 새로 생기는 셈이다.

용산주민들은 '애초 계획과 다르다'며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용산공원은 미군 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100여년만에 우리 품으로 돌아온 국토인 만큼 의미가 남다르다. 이에 정부는 2007년 용산공원 내 주택을 지을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을 제정해 국민들에게 공원으로 돌려주기로 했다. 이 법을 토대로 국토부와 서울시 등이 위원회를 꾸려 공원 조성 계획을 꾸려왔다.

그러나 계획과 달리 공원부지에 주택이 들어서게 되자 용산공원의 상징성 상실, 도시경관 저해, 국민적 합의 부재 등을 이유로 들며 주민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뉴욕 센트럴파크, 런던 하이드파크, 샌프란시스코 프레지디오파크 등 해외 유명 공원들 모두 녹지 중심으로 조성돼 있다. 

용산구를 지역구로 둔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도 "용산공원 부지에 임대주택을 짓겠다는 발상은 경복궁이나 북한산을 밀어버리고 주택을 짓겠다는 계획과 무엇이 다른가 묻고 싶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서 '입법예고 기간에 반대 의견이 1만건을 넘으면 입법이 철회된다'는 잘못된 정보가 퍼져나가면서 의견제출이 1만건을 넘어섰다. 이후 주민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지역구 국회의원실 연락처 등을 공유하며 개별 항의를 이어가고 있다. 

해외 랜드마크 공원들은 녹지 중심으로 조성돼 있으며 주거지와는 분리돼 있다./구글어스

주민 반발 거세고 현실성 떨어져

여당은 주택공급 해소방안으로 입법에 적극적인 입장이지만 실제 입법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국토교통위원회 심의를 통과하면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하고, 그 이후에도 주민공청회 등을 거쳐야 하는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8·4대책을 통해 과천청사부지에 4000가구를 공급하기로 했으나 주민 반발로 백지화한 바 있다. 용산공원에는 그보다 20배인 8만 가구를 조성할 계획인 만큼 주민 반발은 더 심할 것으로 보인다.  

법안이 통과된다고 해도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지금까지 반환된 부지는 전체의 2% 남짓에 불과한 데다 반환이 완료된다고 해도 환경 및 토양오염조사, 토지 정화하는데도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당장의 공급 부족을 해결하긴 어렵다. 

주거환경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현행법은 과밀개발‧경관훼손 등을 고려해 주거지역의 용적률을 최대 500%까지 허용하는데 용산공원 주택공급 구상에서는 1000%까지 내다봤다. 건물을 높게 올려 가구수를 많이 채워넣게 되면 '병풍 아파트', '성냥갑 아파트'가 불가피하다. 더군다나 8만 가구를 채워넣으면 용산구 전체 인구(22만5977명, 통계청 지난달 집계)의 35% 규모가 용산공원에 밀집하게 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이유로 용산공원 내 주택공급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도심에 택지가 워낙 없다보니 조금이라도 빈 땅이 있으면 섣불리 주택 공급을 시도하는 것 같다"며 "그러나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서 논란이 지속될 것이고, 정부가 밀어붙이더라도 서울시나 용산구의 행정적 도움(건축인허가 등)이 필요한 상황이라 추진하기가 어려워보인다"고 말했다. 

좀 더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주택공급 정책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진미윤 LH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은 "도심 역세권 내 주택공급을 늘리는 하나의 축으로서 근거를 마련한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시도"라며 "다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너무 큰 틀만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용적률 1000%를 주택으로만 채운다면 문제지만 기존 도시계획에 요구되는 엄격한 기준을 떠나서 외국처럼 건물 내 다목적 공간, 어린이집, 공원 등을 조성하는 등의 실용주의적 플랜을 짤 수도 있다"며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정책이 필요한 때이고, 정부와 서울시가 함께 이같은 주택정책방향을 잡아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