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전세대란은 없었다. 집주인들이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으로 못 올렸던 전셋값을 한 번에 올려 '대란'이 일어날 거라는 우려가 많았지만 상황은 오히려 반대로 흐르고 있다.
전셋값이 이미 너무 오른 데다가 금리 인상으로 대출 부담도 커지면서 월세를 선택하는 이들이 더욱 늘었다. 여기에 더해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입주가 크게 늘면서 수요는 주는데 물량만 쌓이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조차 예측하지 못한 흐름이다. 이제 일각에서는 '역전세난'을 우려하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당분간 전세 수요가 줄고 가격은 하락하는 흐름이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전세 물량 쌓이고 가격은 하락세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지난 30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물량은 총 3만 4271건으로 한 달 전에 비해 7.2%가량 증가했다. 지난 2년 전 1만 4733건에 비해서는 두 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전세 물량이 느는데 수요가 뒤따르지 않으면서 전셋값은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전셋값은 8월 넷째 주(22일 기준)까지 0.57% 하락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3.03% 오른 것과 대비되는 흐름이다. 여기에 더해 하락 폭은 최근 들어 더욱 커지고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시장에서는 임대차2법 시행 2년이 되는 8월에 가격을 올린 전세 매물이 늘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집주인들이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이 끝난 매물을 지난 4년 치 임대료를 한꺼번에 올려 내놓을 거라는 우려였다. 이에 따라 현행법을 개정하거나 보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다. 전세 수요가 자취를 감추면서 되레 집주인들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은 '역전세난'에 대한 우려마저 나오는 분위기다.
금리 부담에 월세화…입주 물량도 늘어
전문가들은 이처럼 전세대란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로 계약 갱신 시기가 분산돼 있다는 점을 꼽고 있다. 가격을 올린 물량이 8월에 집중적으로 쏟아지지는 않는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더해 여러 변수가 겹치면서 전세대란에 대한 우려가 '역전세난'으로 뒤바뀌고 있다. 먼저 올해 내내 이어지고 있는 금리 인상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 수년간의 집값 급등으로 전셋값도 오르면서 대출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늘었는데, 금리가 오르니 부담이 커졌는 분석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전세자금 대출이 일반화하면서 전세 역시 금리라는 변수의 통제를 받는 상품이 됐다"며 "최근 금리가 계속 오르면서 대출을 받기가 갈수록 부담스러워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전세보다는 월세를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7월 누적 기준으로 임대차 거래 중 월세 비중은 51.5%로 절반을 넘어섰다. 지난해 같은 기간 월세 비중이 40.3%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는 흐름이다.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입주 물량이 급증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직방에 따르면 9월 경기도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1만 4987가구로 전달보다 47%가량 증가할 전망이다.
집값이 급등하면서 서울을 빠져나가는 인구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도 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서울의 인구는 3.4% 줄었는데, 경기는 7.7%의 높은 인구 증가율을 보였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경기도와 인천 등 수도권 입주가 늘면서 서울 인구가 빠져나가고 있는 데다가, 서울 내에서도 아파트를 대체하는 주거용 오피스텔이 늘어나는 등의 영향으로 아파트 전세 수요가 빠르게 줄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이런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당분간 금리 인상이 예고돼 있어 대출 부담 역시 지속할 전망이다.
여기에 더해 전세 계약의 경우 '전세 사기'나 '깡통 전세' 등 위험성이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등 장기적 추세로도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송 대표는 "수요자들 사이에서 자칫 전세금을 뜯길 수 있다는 우려까지 더해지면서 차라리 전세보다는 월세가 낫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분위기도 있다"며 "또 거액을 집주인에게 맡기기보다는 차라리 투자를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인식도 늘어나는 등 전세가 임대차 시장을 대표하는 시대는 지나가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