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의 주택 매수를 적극적으로 돕는다. 우선매수청구권(우선매수권)과 조세채권 안분 등을 통해 경매 낙찰 확률을 높이고 금융·세제 등 경락 자금을 지원한다.
피해자가 피해주택의 경매를 원활히 진행하는 동시에 비용도 크게 손해보지 않고 낙찰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그러나 구제 대상 요건이 까다로워 '사각 지대'가 불가피할 전망으로 실효성에 의문이 나온다.
6가지 요건 충족한 '피해자'만 지원대상
정부는 27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 지원방안'을 발표하고 종합 지원방안을 담은 한시(2년) 특별법을 발의하기로 했다.
특별법은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우선매수권' 등의 특례를 부여하고, 매수 의사가 없을 경우 LH를 통해 공공임대주택(피해주택)을 제공하는 내용이다.▷관련기사:전세사기 특별법 2년간 시행…사기범 가중처벌(4월27일)
전세보증금 반환보다는 '주거 안정'에 방점을 찍은 셈이다. 피해 임차인들이 살던 주택에 계속 거주할 수 있게끔 매수(경락) 또는 임대주택을 지원하는 게 핵심이다.
특히 주택 매수 지원에 주력했다. 구체적으로 △경·공매 유예 및 정지 △우선매수권 부여 △조세채권 안분 △낙찰자금 지원 △취득세 면제, 재산세 감면 등이다.
이로써 전세사기 피해주택에 선순위근저당권이 있어 경매 진행 자체가 불가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경락자금이 부족해 낙찰이 어려웠던 임차인들도 주택 매수가 가능해졌다.
다만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해서 모두가 이같은 지원을 받는 건 아니다. '6가지 요건'을 충족한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에게만 한정된다.
특별법 지원대상은 △대항력을 갖추고 확정일자를 받은 임차인 △임차주택에 대한 경·공매 진행 △면적·보증금 등을 고려한 서민 임차주택 △수사 개시 등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 △보증금의 상당액이 미반환될 우려 등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 자리에서 "전세는 사인 간의 채권·채무이고 물건 별로 권리 관계, 보증금 규모 등이 다르기 때문에 전세사기라는 매우 예외적 대상에 대해서만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고 지원대상 선정의 배경을 밝혔다.
전세사기 피해가 분명한 임차인을 우선 지원하기 위해 지원대상의 문턱을 높인 셈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모럴헤저드(도덕적 해이)에 가까운 사기 피해를 입은 피해자 구제에 집중하는 동시에 제도 악용을 막으려면 지원 문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얼마나 구제될까..."후속대책도 필요"
그러나 피해자 대상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워 실제로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임차인이 많지 않을 거란 우려도 나온다.
사회초년생이나 다세대주택 등 물건이 복잡한 경우 확정일자를 받지 못한 사례가 더러 있는데 이는 구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경·공매가 진행되지 않아도 지원이 안 된다.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만한 요건도 다수다. 요건 중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 △보증금의 상당액이 미반환될 우려 등이 그렇다.
이는 국토부 내 설치하는 '전세사기 피해지원위원회'(이하 위원회)에서 판단할 가능성이 높은데 인력과 시간 등이 충분한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나온다.
두성규 목민경제정책연구소 대표는 "위원회에 전문적인 인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지 미지수고, 주관적 판단에 따라 피해 대상에서 누락되거나 제한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서민 임차주택'의 기준도 모호하다. 국토부는 서민 임차주택의 범위를 내부적으로 '보증금 3억원, 전용면적 85㎡'로 정했지만 사례에 따라 '탄력적 판단'을 하겠다는 예외 조건을 붙였다.
원 장관은 "지역, 가족수 등에 따라 주택 면적이나 가액이 다른데 일률적으로 정해놓으면 경계선 효과 때문에 억울하게 배제될 수 있다"며 "피해지원위원회 의결기구에 탄력적 판단을 넘기겠다"고 말했다.
서민 임차주택 기준을 넘어도 위원회 판단 하에 지원대상이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전반적으로 지원 대상 요건이 까다로운 편이라 불가피하게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이번 대책이 전세사기 피해임차인으로 한정된 만큼 향후 '역전세난' 심화 등에 따른 대책도 추가로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두성규 대표는 "이번 대책은 전세사기 피해에 대한 응급조치로 전세시장 혼란을 대비한 첫 발자국 수준"이라며 "향후 역전세난 심화에 따라 전세보증금 미반환 피해가 확장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더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후속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