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와 원자잿값 상승으로 국내 주택 시장은 물론 해외 건설 시장도 침체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수주 축소를 해외 실적으로 만회하려 했던 건설사들의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한 분위기다. 애초 연초에 예상한 수주 목표치를 채우지 못할 거라는 전망이 벌써 나온다.
국토교통부 등 정부는 민관이 힘을 합쳐 건설사들의 해외 사업 확대를 지원하는 '원팀코리아' 전력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이라크와 공동위원회를 재개하고 네옴시티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지속하는 탓에 올해 해외 사업 확대가 쉽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많지만 정부의 이런 움직임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거로 건설사들은 기대하고 있다.
경기 침체로…올해 해외 건설 수주 위축 전망
해외건설종합정보서비스에 따르면 22일 기준으로 올해 해외건설 수주 총액은 87억 9298만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114억 6480억 달러)보다 23% 줄어든 규모다.
특히 중동과 아시아 시장에서의 부진이 눈에 띈다. 국내 건설사들의 올해 중동 시장 수주액(22일 기준)은 15억 1477만 달러로 전년 동기(22억 3091만 달러)보다 32%가량 줄었다. 아시아 시장 실적은 같은 기간 67억 3403만 달러에서 34억 1921만 달러로 49% 감소했다.
정부는 지난해 말 해외건설 강국으로 진입하겠다며 오는 2027년까지 해외건설 연 500억 달러 수주를 목표치로 제시한 바 있다. 올해의 경우 연간 수주 목표치를 지난해(310억 달러)보다 많은 350억 달러 이상으로 잡았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 침체가 이어지며 아직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하반기에는 일부 대형 프로젝트 수주가 예상된다는 점에서 기대감이 있기는 하지만 정부 목표치를 채우기는 어려울 거라는 전망이 벌써 나온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지난 21일 내놓은 '2023년 하반기 경제 및 산업 전망' 보고서에서 연초 내놓은 해외 건설 수주 전망치 350억 달러를 300억 달러로 하향 조정했다.
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유가 약세와 고금리 상황, 인플레이션 장기화에 따른 공사비 증가 등 해외 수주 환경의 부정적인 요인이 우세한 상황"이라며 "하반기 수주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있지만 상반기 수주 부진의 여파로 연초 목표치 달성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건설사들은 올해 국내 주택 시장 침체에 대비해 국내 수주 규모를 대폭 줄이고 해외 사업이나 신사업을 공격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해외 시장 역시 더딘 경기 회복으로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관련 기사: 억! 주택사업 부메랑…해외·신사업에 사활(2월 7일)
박세라 신영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올해 1분기에 비해 2분기 해외 수주 소식이 잠잠하다"며 "(해외) 발주처들이 환율과 원자재 가격이 좀처럼 내려가지 않자 발주 시기와 규모에 신중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어 프로젝트 발주가 지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동서 원팀 코리아 박차…하반기 대형 수주 기대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자 정부도 해외수주 지원을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민관 해외건설 수주지원단인 '원팀코리아' 등을 통해 특히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발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우선 정부는 그간 중단됐던 이라크와의 공동위원회를 6년 만에 다시 열어 눈길을 끌었다.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양국은 21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한국-이라크 공동위원회'를 열어 인프라와 교통, 항공 등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특히 양국은 이날 지난해 10월 중단된 비스마야 신도시 사업을 재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한화 건설부문은 이라크 정부로부터 공사비를 제대로 받지 못해 이 사업 철수를 결정했는데, 이라크가 미수금 해결 의지를 밝히면서 조만간 재계약이 이뤄질 전망이다. ▷관련 기사: [인사이드 스토리]'중동 붐?'…한화건설, 이라크서 발 뺀 까닭은
이와 함께 정부는 이날 행사가 끝난 직후 원희룡 국토부 장관을 단장으로 한 원팀코리아를 사우디아라비아에 파견하기도 했다. 사우디 주요 정부 인사와 만나 건설 인프라, 플랜트 등 분야에서 실질적 협력방안을 모색하겠다는 구상이다.
건설 업계에서는 하반기 예정된 대규모 수주 프로젝트가 성과를 내고 정부 지원까지 더해진다면 점차 해외 사업 실적 반등이 가능할 거로 기대하고 있다. 당장 현대건설이 50억 달러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아미랄 프로젝트' 계약을 앞둔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끌고 있다. 이는 사우디 사토프 석유화학 단지의 핵심 사업으로 꼽힌다.
송유림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중순 이후 수주 결과를 기다리는 주요 프로젝트로는 사우디의 아미랄 프로젝트와 네옴 터널, 자프라2, 파드힐리 가스 프로젝트 등이 있고, 인도네시아 CAP2와 미국 텍사스 LNG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정부의 원팀 코리아가 당장 올해 단기적으로 실적을 내기는 어렵겠지만 향후 경기가 점차 회복하는 과정에서 수주를 확대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중동 등 계약 규모가 큰 프로젝트 입찰에서 성과를 거둬간다면 충분히 반등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