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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순살아파트는 아니라고요?

  • 2023.08.03(목) 06:30

원희룡 "철근 아닌 보강근 누락" 강조
보강 및 전수조사 나서지만 불안 여전
무량판 공법은 무죄…근본 해법 찾아야

"보강근이 빠져 있는 거지 철근 자체가 빠져 있는 게 아니다. 국민들이 잘못 받아들일 수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LH 무량판 구조 조사결과'를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순살 아파트'라는 표현을 자제해달라며 이같이 설명했습니다.

순살 아파트는 철근이 빠진 건물을 치킨에 빗대 표현한 건데요. 이 표현이 국민 불안감을 과도하게 키울 수 있다는 점 등을 우려한듯 합니다. 하지만 작금의 사태를 보면 그닥 과도해 보이지 않는데요.

다수의 철근이 누락된 양주회천 A15 단지가 보강 공사 중이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순살'이라는 표현이 붙기 시작한 건 지난 4월 GS건설이 시공한 인천 검단 아파트의 지하주차장 붕괴 사건 부터입니다. 조사 결과 '철근 누락'이 원인 중 하나로 밝혀지자 '순살 자이' 등의 오명을 얻으며 GS건설이 역풍을 맞았는데요.▷관련기사:철근 누락 콘크리트 미흡…인천 지하주차장 붕괴, 총체 부실(7월5일)

시간이 지날수록 어느 한 곳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국토부가 지난 2017년부터 LH가 무량판 공법으로 발주해 시공사를 선정한 91개 단지를 조사한 결과 15개 단지에서 기둥 주변 보강철근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거든요. 

설계 과정부터 철근이 누락된 곳이 있는가 하면 설계도대로 시공되지 않은 곳도 있었는데요. 그중 양주회천 A15의 경우 보강근 154개 모두 누락돼 충격을 안기기도 했습니다.▷관련기사:철근 빠진 LH 아파트 15곳 공개…원희룡 "완벽 보강할것"(7월31일)

아파트 바닥 구조는 벽식, 기둥식, 무량판 등으로 나뉘는데요. 벽식은 벽이 천장을 받치는 구조고 기둥식은 수평 기둥인 '보'가 천장을 받치고 하중을 견디는 구조입니다. 

무량판은 보 없이 바닥을 두껍게 만들어 슬래브(콘크리트 천장)를 바로 지지하는 구조인데요. 기둥과 맞닿는 부분에 하중이 집중되기 때문에 슬래브가 뚫리지 않도록 기둥 주변에 철근(전단보강근)을 여러 번 감아줘야 합니다. 

이번에 '철근 누락' 단지로 알려진 15곳은 모두 이 전단보강근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은 건데요.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이들 단지의 입주자 또는 입주예정자들은 안전상 불안함을 호소하고 있는데요. 

그러나 국토부와 LH는 철근 누락이 당장 안전에 위험을 끼칠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원 장관은 "이번에 문제가 된 LH 아파트는 무량판을 적용한 지하주차장의 기둥 부위에 해당하고, 지하주차장 상부에 건물이 없어 주거 부분에 대한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은 아니다"고 했는데요. 

그러면서 재시공이 아닌 보수·보강에 나섰습니다. 이한준 LH 사장은 "시멘트 강도가 기준치보다 상당히 올라가서 거기(전면 재시공)까지 갈 상황은 아니다"고 했고요.

아파트 대표적 바닥 구조./그래픽=비즈워치

보강은 보강근이 부족한 기둥 근처에 지지 기둥을 세우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데요. 그러자 입주민들은 "기둥 속에 철근이 들어간 것과 기둥 밖에서 기둥을 지지하는 건 차이가 있지 않겠느냐"며 그 효과에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나 안내 없이 보강 공사가 진행되는 바람에 오해가 더 커지는듯 합니다.

LH는 보강 공사에 대해 여러 외부 검증기관을 거쳐 진행하겠다고 밝혀왔는데요. 보강 원리나 효과 등에 대해선 상세한 설명이 없습니다.

심지어 경기 파주 '초롱꽃마을3단지'의 경우 LH가 '도색보수' 안내문을 걸고 철근 보강 공사를 진행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입주민들이 불안할까봐 사실을 숨긴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참 이상합니다. 국토부도 LH도 국민 불안을 염려하며 표현을 자제(?)하는 모습인데요. LH뿐만 아니라 무량판 공법을 적용한 민간 아파트 300여곳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며 부실시공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마당에 말이죠. 

이럴 때일수록 더 엄중한 진단과 적극적인 설명이 필요해보이는데요. 익명을 요구한 한 건축사의 설명을 들으니 이같은 대응이 더 아쉽습니다.  

이 건축사는 "보강근은 무량판 구조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철근인데 아무리 일부라고 해도 이게 누락됐다는 건 건물 신뢰를 좌우할만한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만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 할 때도 내진 등 기준 변경에 따라 철근 보강이 필요하면 기둥 밖에서 지지하는 방법을 이용한다"며 "기둥 밖에서도 충분히 보강하면 안전상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또한 '순살 아파트' 표현을 우려하긴 했는데요. 우선 철근 누락 단지에 대한 보강을 완료하고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 소비자 신뢰부터 되찾아야 한다고 봤습니다. 

그는 "무량판은 해외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공법이자 장점이 많은 공법"이라며 "일부 잘못된 사례가 제약이 돼서 국가 건설 기술 발전을 저해하지 않도록 소비자 불신부터 해소해 '순살 아파트'라는 오명을 지워 나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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