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 가도 공급'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가 필요할 때마다 정부는 '공급 카드'를 내민다. 집값이 뛸 땐 공공 주도의 공급을 확대하고, 집값이 떨어질 땐 민간 공급자의 활력을 살리려 유도한다. 동시에 규제도 고무줄처럼 조였다 풀었다 하며 수급 저울의 영점을 억지로 맞추려 애쓴다.
부동산 침체기에 나온 이번 1·10대책 역시 각종 규제를 풀어 민간 공급을 활성화하는 게 주내용이다. 그러나 고금리, 자잿값 인상 등 외부 변수가 크게 작용하는 상황에서 공급만을 '만능 키'로 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렇다면 주택시장 안정화를 이루는 '수급 균형'은 어떻게 끌어낼 수 있을까.
공공주도냐 민간주도냐
그동안 정부는 부동산 시장의 불안이 찾아올 때마다 '주택 공급'을 해결책으로 꺼냈다. 실제로 국토교통부가 2021년 11월 집계한 수치에 따르면 연평균 주택 공급 물량은 △이명박 정부(35만7000가구) △박근혜 정부(45만가구) △문재인 정부(54만6000가구) 등으로 점차 공급 가구 수가 늘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집값이 크게 오르자 공급량을 확대해 가격 안정화에 나섰다. 다만 민간 공급의 핵심이자 집값 상승의 불씨가 될 수 있는 정비 사업은 틀어막고 공공 주도의 공급에만 힘을 줬다.
대표적인 정책이 2021년 2·4 대책으로 불리는 '공공주도 3080+, 대도시권 주택 공급 획기적 확대 방안'이다. 들끓는 매수 심리를 가라앉히고자 총 115만 가구의 역대급 공급 계획을 내놓은 것이다. 이를 두고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공급 쇼크' 수준의 대책이라며 주택 시장 안정세를 확신하기까지 했다.
대책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공기관이 직접 시행하는 개발 방식을 도입한 게 골자였다. 동시에 주거복지로드맵, 3기 신도시 사전청약 등을 통해 오는 2025년까지 총 205만가구의 신규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공급 늘리기의 발목을 잡는 규제도 남아있었다.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의 경우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등을 면제해 주는 대신 소유주는 초과이익금의 최대 30%만 가질 수 있게 했다. 2021년 12월엔 민관합동 도시개발사업에서 민간참여자의 이윤율에 상한을 두는 내용의 이른바 '대장동 방지법' 2건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후 민관 협력으로 진행되던 도시개발사업은 좌초되고 주택 공급도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정부는 두 달 만에 대책 재정비에 들어갔고 시장에는 혼란만 남았다. 결국 공급 불안감은 집값 상승 제동 실패의 원인이 됐다. 한국부동산원 주간아파트매매가격 시계열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초(1월4일) 대비 연말(12월27일)은 전국 집값은 12.94% 올랐다.
2022년엔 대선을 앞두고는 대권주자들이 앞다퉈 대규모 공급 확대를 목표로 내걸었다. '수백만 가구 공급'이라는, 현실과 먼 숫자들과 함께였다. 2022년부터는 금리 인상 영향 등으로 집값 상승세가 주춤하며 시장의 판도가 바뀌었지만 공급 확대 기조는 이어졌다.
윤석열 정부는 임기 내 '270만 가구+α' 공급을 예고했다. 초대 국토교통부 수장인 원희룡 당시 장관은 2022년 8·16대책을 통해 향후 5년간 270만 가구 이상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공공주도가 아닌 재건축 규제 완화 등을 통한 민간 주도의 공급으로 방향타를 바꿔 잡았다.
올해 1·10대책에선 재건축 안전진단 등 정비 사업의 '대못'으로 작용했던 규제를 확 풀었다. 또 1기 신도시 재건축을 지원키로 하고 도시형생활주택 건축 규제도 대거 완화했다. 동시에 소형 주택 및 준공 후 미분양 주택 매입을 유도해 민간 임대 공급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일부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LH가 매입해 주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그런데도 민간 기업이나 주택 수요자들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고금리, 자재비 및 인건비 인상이 사업을 여전히 가로막고 있고, 부동산 경기 침체 우려도 가시지 않아서다. 오히려 지방을 중심으로 미분양이 해소되지 않는 상황에서 공급 과잉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고, 미분양 주택 매입 등은 기업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미분양 주택 수(12월 기준)는 2020~2021년만 해도 1만 가구대로 확 줄었으나 시장 침체가 시작된 2022년 말 6만8107가구까지 급증했다. 2023년 일부 해소되긴 했지만 연말 다시 늘어나면서(2023년말 6만3289가구) 1년 전과 큰 차이가 없어졌다 .
시장 안정 찾으려면…"일관된 정부 역할 필요"
이런 상황에 전문가들은 더 이상 '숫자놀음'이 아닌 현실적으로 공급 가능한 계획을 정부가 내놔야 한다고 제언한다. 공공 주도 혹은 민간 주도 어느 한 쪽에 치우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장기적인 철학과 원칙을 세우고 시장에 꾸준히 신규 주택이 공급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성규 목민경제연구소 대표는 "공급 목표를 터무니없이 높게 잡아놓고 공급을 계획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시장 불안을 더 키우는 폭탄"이라며 "3기 신도시 사전청약도 계획보다 공급 시점이 늦어지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금리 및 자재비 인상 등으로 분양가가 계속 오르고 있지 않느냐"고 짚었다.
그는 "가뜩이나 공공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 민간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불안 등으로 공급 여력이 많이 줄어든 상태"라며 "이런 상황에서 공급 계획 물량만 많이 잡아놓는 것은 숫자로 장난치는 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진미윤 LH 토지주택연구원 박사는 "신규 주택 공급에서 공공의 비중은 10% 정도만 차지해 왔기 때문에 사실상 시장은 늘 민간 주도 공급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라며 "결국 그 속에 규제의 영역이 수요를 좌우하는 거라 무엇보다 규제에 대한 철학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시장 안정을 위해선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지만 과도한 개입이나 정치적 이용은 지양해야 한다는 제언도 있었다. 정권에 따라 규제를 없앴다가 되살리기를 반복하는 극단적 운용이 아니라, 어느 때고 정부 개입 강도를 예측할 수 있는 '유연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두성규 대표는 "이전 정부가 부동산 시장에서 투기 세력을 배제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했지만 그다지 효과가 없었는데, 지난해엔 금리가 오르자 수요가 위축되면서 자연스레 시장이 위축됐다"며 "규제라는 정책 수단이 들어오는 순간 시장의 정상 기능과 질서는 왜곡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수요가 늘 때 규제를 새로 만들지 않는데도 (통화정책 등에 따라) 시장이 안정을 찾지만 우리나라는 오히려 부동산 규제가 시장을 널뛰기하게 하고 부작용도 야기해 왔다"며 "정책 입안자들이 집값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탈피해 수요와 공급이 시장의 원리대로 균형점을 찾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지금은 금리, 원자잿값 등 외부적 요소들이 시장에 충격을 주고 있어 이미 여러 형태로 부실이 터지고 혼란도 많다"며 "이럴 땐 정부가 완충 작용을 할 만한 조치로 적기에 방어할 필요는 있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정책의 대전제가 시장의 변동성을 낮추는 데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시장을 휘어잡으려 으름장만 놓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책이 시장에 효과로 나타나기까지 상당한 시차가 존재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경착륙을 막겠다는 부양책이 침체기엔 역할을 하지 못한 채, 과열기에 뒤늦은 가열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미윤 박사는 "집값 사이클에 따라 규제를 만들고 되살리고 할 게 아니라 유연하게 운영해야 한다"며 "가령 정부는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지자체 등 지역마다 실정에 맞게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등 자율성을 살리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시리즈 끝>